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 앞에서
엄마는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신다.
늘 FM 93.1을 들으시고, 이태리 가곡을 배우시고,
동창회에 가시면 친구들 앞에서 배운 이태리 가곡을 부르신다.
엄마는… 가끔 말하신다.
본인이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피아노를 배우셨을 거라고…
대신, 엄마는 공부를 하셨다. 엄마가 공부하던 시절은 여자들은 대학에 잘 보내지도 않는 시절이었는데, 엄마는 그 시대에 어렵게 공부하여 전문직 여성이 되셨고, 여든이 되신 던 해에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하셨다.
엄마는 이제 그동안 미뤄 두었던 취미 생활을 하신다.
노래를 배우러 다니신다. 그런데… 목소리가 잘 안 나온다고하신다.
“엄마, 한번 불러보세요.”
들어보니, 우리 엄마의 예전 그 목소리가 아니다. 폐활량이 적어서인지 목소리도 흔들리고 고음도 부르기 어렵다.
엄마는 성경 공부도 하러 가신다. 예전처럼 글씨가 잘 안 써지고 눈이 침침해서 필사도 어렵다고 하신다.
사람들은 “인생에는 무엇이든 해야 할 때가 있다”라고 한다.
나는 오래도록 그 말에 크게 동의하지는 않았다. 각자에게 본인에게 맞는 “고유의 시계”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도, 어른도, 각자에게 맞는 속도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인생에는 각 시기마다 즐겨야 할 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에게도 큰 후회거리들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잘한 후회가 더 마음에 남는다.
동생이 일본어를 열심히 튜터까지 구해서 배울 때, 나도 같이 배웠더라면 일본 마트에 갈 때마다 물건 라벨을 보며 매번 당혹스러워하진 않을 텐데. (일본 상품들은 이상스럽게도 영어로 된 라벨을 잘 안 붙인다.)
회사에서 연말 경품에서 일등으로 탄 앙코르 와트 여행권을 부모님께 드렸을 때, 엄마는 같이 가자고 하셨지만, 나는 “다음번에”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동남아는 내가 사는 곳과 너무 멀어져서 내 인생에서 동남아를 여행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가 좋아하시던 파바로티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후회스럽다. 이태리 가곡을 사랑하시는 엄마를 모시고 같이 콘서트를 갔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몇 년 후 그는 세상을 떠났고, 더 이상 공연장에서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은 총각 시절, 그때만 가능한 즐거움을 누렸다고 한다.
금전적인 면에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남편은 즐거웠고, 후회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 철학 또한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나의 시간과 돈을 '핑계'로 하지 않았던 일들이 제일 후회스럽다.
이제야 비로소,
마흔아홉을 지나가며,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이해할 것 같다.
그 말은…
남들과 똑같은 시기에 같은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이미 늦었으니 그만두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바로 오늘, 나를 즐겁게 해 줄 일,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일,
이런 일들을 핑계를 두면서 미루지 말라는 뜻이다.
지금의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시간 역시 나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의 후반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보려 합니다.
‘해보지 않아서’ 후회되는 소소한 일들을 줄여나가고,
조금씩 용기를 내어보는 마음을 챙겨 ‘쉰’으로 가는 가방 속에 넣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