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나는 왜 일을 그만둔 걸까?

마음속에 묻어 둔 생각들을 꺼내 정리하며

by FabFiftyBloom

나는 왜 일을 그만둔 걸까.


#1

큰 아이는 나와 달리 운동 신경이 좋다.

체력장 매달리기 3초 기록의 보유자인 나와는 달리,

구름사다리 철봉을 원숭이처럼 건너 다닌다.

이것만큼은 나를 닮지 않은 딸이 정말 고맙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말한다.

유치원 때 쉬는 시간에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 구름사다리만했다는 거다.

그래서 손에 굳은살이 배겼다고 했다.

워킹맘인 나는 아이를 픽업 갈 수 없어서, 아이를 대신 픽업해 줄 사람을 고용했다.

다른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서 플레이 데이트를 하고 간다는데,

큰 아이는 그런 기회가 없었다.

내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딸이 철봉을 정말 좋아한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도 아이가 직접 말을 하니하니, 엄마로서 마음은 너무 아프기만 하다.



#2

기억 속의 나도 유치원 또래이다.

엄마를 기다리는데, 엄마는 일이 끝나지 않으셔서,

나를 건물 지하에 있는 중국집에 보내셨다.

혼자 짜장면을 먹는 어린 나를 보시고,

직원분이 오셔서 짜장면을 맛있게 먹으려면

소스와 면발을 잘 섞어서 같이 먹어야 한다며

면과 소스를 정성껏 잘 섞어 주셨다.

나는 가끔 여섯 살의 나와 그분의 따뜻했던 마음이 생각난다.



#3

나는 워킹맘의 고충을 잘 안다.

워킹맘의 딸의 마음도 잘 안다.

그래서, 때때로 내 마음은 더 무겁게 내려앉는다.



#4

초등학교에서는 장래희망을 너무 자주 물어본다.

남몰래 숨겨놨던 나의 장래희망은 ‘가정주부’였다.

아이가 학교에서 오면 맛있는 간식도 만들어 주고,

비 오는 날에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가고,

도시락 반찬도 골고루 맛난 걸로 싸주는

그런 엄마….

하지만, 그런 장래희망은 적어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닥 마음에 있지 않지만,

대충 “사”자가 들어간 직업을 장래희망으로 적어내곤 했다.



#5

나는 회사에 나만의 공간이 있는 걸 사랑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할 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남몰래 숨겨왔던 장래희망은 가정주부였지만,

나의 본질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움직일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걸 점점 크면서 깨달았다.

크면서 부모님께 세상의 가장 중요한 밸류가 성실함이라고 배웠기에

나는 하루 두 잔의 카푸치노와 두통이라는 부작용을 안고도,

성실하게 내 자리에 있었다.

일하는 나는 당연하다.

일하지 않는 나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6

팬데믹이 왔다.

아이들은 집에서 원격수업을 하고,

나도 원격으로 일을 한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야 더 많이 일을 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일을 하면서,

내가 ‘발전’ 하지 않고, ‘소모’ 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 생각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7

내 안에는 가정주부를 꿈꾸던 자아와

일하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없는 자아가 공존하고 있었고,

나는 내가 만든 틀 안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8

커가는 아이들은 엄마의 존재를 더 원했고,

내가 옆에 있을수록 ‘자신감’이 붙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맡은 일을 잘 해냈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더 보상이 따라준 건 없었다.

그저 회사 한 벽면에 우수사원으로 내 이름이 붙어있을 뿐.


회사의 요구와 내가 느끼는 보상.

아이의 요구와 내가 느끼는 책임감.

머릿속에서 여러 저울추들이 오르내리다,

이제는 그만둘 때가 왔다는 사실이 맘속에서 선명해졌다.


겉으로는 ‘아이’가 이유라고 말했지만,

내 내면 깊은 곳에서 회사에서의 ‘소모’를 멈추고,

‘아이’와 ‘나’를 위한 시간을 되찾고 싶었다.


나의 마지막 날,

이십 년의 회사 생활을 종지부를 찍는 시점에서, 나는 퇴직을 자축하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알리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이게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 크게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조용히.. 나를 이십 년간 묻어두었던 회사란 곳이랑 작별을 했다.




처음으로 “왜 회사를 떠났는지” 글을 쓰다 보니, 이제 이유가 좀 더 뚜렷해집니다. 내가 가장 바라는 건, 아이들 바로 옆에서 성장을 지켜보면서, 저 역시 함께 성장하는 겁니다.

소모의 시간을 멈추고 아이들과 내가 함께 자라는 시간에 몰두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