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기, 나, 그리고 포용
둘째는 화가 나있다. 내가 친척들 앞에서 언니 얘기만 했다는 거다. 언니가 좋은 오케스트라에 들어갔고, 연주를 잘한다고 칭찬을 했는데, 왜 자기 얘기는 안 했냐는 거다.
나는 정말 그런 의도가 없었다. 두 아이가 나이 차이가 있으니, 실력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하다. 친척들이 물어봐서 대답해 줬을 뿐이다. 그런데, 동생 입장에서는 속상했나 보다. 그러면서 엄마는 그런 입장에 처해 보지 않아서 자기를 이해 못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나는 형제가 많았고, 다들 예체능에 특기가 있었다. 누가 봐도 특출 난 재능이 있던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며 속상함이 많았다. 명절 때면 집에 손님이 삼사십 명 정도 오셔서 식사를 하고 가셨다. 그때마다 형제들은 손님들 앞에서 장기 자랑 했지만, 별다른 특기가 없는 나는 조용히 밥을 먹고 담담히 앉아 있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가 자기 마음을 몰라 준다고 화를 내는 둘째를 보니, 오히려 내가 더 억울하게 느껴졌다. 둘째는 어떻게 해야 자기의 속상한 감정을 다스릴 수 있냐고 묻는다.
음… 어떡해야 하지….
나는 “Embrace (포용)” 해야 한다고 대답해 준다.
그렇게 돌아 서서는 자꾸 내 대답이 마음에 걸린다. 그냥 포용하면 되는 것인가. 나는 어떻게 나의 속상함을 포용했었나. 사실 나는... 극복하지 못했다.
엄마는 종종 나에게 “나중에 네가 제일 잘 살 거야”라고 말하셨지만, 그건 부모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다정한 위로였고, 내게는 근거 없는 말처럼 들렸다. 자라나면서 채워지지 않았던 인정 욕구는 부모님과 할머니에 대한 서운함으로 오래 남았다.
시간이 지나며 크는 동안 나는 여전히 ‘특기’가 없었다. 음악도, 미술도, 운동도 어떤 분야에도 남들보다 특출 난 재능은 없었다. 내가 밋밋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남들보다 좀 더 잘하는 게 있다는 걸 조금씩 느끼게 된 분야가 있었다. 나는 숫자와 이재에 밝다. 투자나 절세 같은 분야를 잘 이해하고, 내가 이해한 걸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도 잘해준다. 나는 생각보다 쉽게 터득하는 내용인데, 어려워하는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대하면서, 이게 나의 특기가 아닌가 싶다.
나는 특별히 그림을 잘 그리거나, 악기를 잘 다루거나,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갖춘 건 아니다. 대신 음악과 영화를 즐길 줄 알고, 멋진 걸 보고 감탄할 줄 알면 된다. 나는 실용적인 사람이니, 실용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한다. 이게 나의 특기인 거다.
나도 모르게 쪼그라들었던 어린 나의 마음을 달래며,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특기가 있다.
그리고 내 자신을 온전히 포용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