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의 나와 화해하기
꽉 채운 이민 가방 두 개를 보내고 나는 엄마와 함께 서 있다.
엄마는 너무 슬퍼하시지만, 나에게는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있었다.
이제 드디어 가는구나….
지난 마흔아홉 해을 돌아보면서 나에게 가장 기억나는 장면이 뭐였나 생각하면, 공항 터미널에서 엄마와 작별하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유학을 가려고 고군분투하던 나는 주말에는 학원에서 시간을 보냈고, 주중에는 회사 끝나면 독서실로 달려가 공부했다. 친구들은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고, 월급으로 명품을 사고, 유럽, 동남아로 여행을 다니기도 했지만, 나는 나의 스물아홉을 일과 유학준비에 시간을 보냈다.
스물아홉의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회사에서는 분명 내 승진 차례인데, 다른 사람에게 나의 공이 넘어갔다. (나를 물 먹인 그 보스는 몇 년 후 회사에서 짤렸다.)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던 그들은 나보다 더 먼저 각자의 인연을 찾아 새로운 삶을 꾸렸다. 무엇보다도 나를 지치게 했던 건, 주위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헤어진 연인의 새 소식을 내가 제일 늦게 알았을 때, 그것도 내가 잘 아는 사람과 만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그들 중 누구도 나를 배신한 적이 없지만, 나는 혼자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온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그들 속에서 나를 분리해 냈다.
이십여 년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나의 대학생활 대부분을 보낸 단체였지만, 내가 쏟은 시간과 노력과 상관없이 나는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 왜 나는 그 단체 하나에만 그렇게 시간을 쏟았을까 하는 후회와 회의가 나를 종종 괴롭혔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내가 그들 중 누구의 도움이 절실했던 적이 있던가? 아니.
그들의 부재로 내가 불행하게 된 적이 있던가? 아니.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긴 인생에서 그 단체에서 보낸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이제는 그때를 떠올리며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고 속상했는지 반복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에게 진짜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서, 자책하고 후회 많던 스물아홉의 나와 조용히 화해했다.
마음속에 감춰뒀던 미움을 하나 지우는 건
다른 행복감을 하나 더 저장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오십이 된다는 건 삶보다 죽음에 좀 더 가까워지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떠나는 날이 올 때 나는 감사와 행복함을 간직하고 떠나고 싶다.
혹시 나에게 또 다른 미움이 자라기 시작한다면, 다시금 나의 글을 읽고 미움을 지워내는 노력을 할것이다. 오십을 향한 여정에서 가져가야 할 것은 비움과 화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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