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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bre May 23. 2017

서면 가릉빈가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는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며 흐른다

 서면 나이키매장과 그 옆건물 사이에는 2평 남짓한 가게 하나가 붙어있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틈만 나면 들락날락 거리던 '가릉빈가'라는 악세사리 가게다. 7년전쯤 이 곳으로 옮겼던가 그 전에는 부전도서관쪽 작은 골목에 2층짜리 공간을 가득 채웠을 정도로 큰 가게였다.
 가릉빈가에는 없는 게 없었다. 정비공 출신인 아저씨(사장님)가 뻰치로 철을 꼬아 만드는 독특한 악세사리가 가득했고 아시아 곳곳을 여행하며 사시는 아저씨의 동생분 덕분에 다른 곳에서는 구경도 못하는 특이한 목걸이, 귀걸이, 옷, 가방이 잔뜩 있었다. 고딩 시절 '최윤경스러운' 이상한 스타일의 시작이 바로 이 곳이었다. 나염된 인도원피스를 입고 코끼리 상아로 만든 목걸이를 하고 씨앗에 구멍을 뚫어 고무줄로 엮은 팔찌를 차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양이 수놓아진 천가방을 멘 나의 모습은 가릉빈가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었는지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가릉빈가의 또다른 매력은 2층에 있었다. 아저씨는 오는 손님들마다 '위에 올라가봤어?' 라며 능청스럽게 묻고는 '아주 대단한게 있어 올라가봐' 하고 뒷쪽에 숨겨진 계단으로 안내했는데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말그대로 대단한 세상이 펼쳐졌다. 만지지 말라는 문구가 따로 없어도 만지면 안될 것 같은 비주얼의 고미술품들이 여기저기 무심하게 놓여져 있었고 한쪽 방에는 수천장은 족히 될 LP앨범들이 가득했다. 나는 나뭇바닥으로 된 큰 마루가 있는 공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저씨가 LP를 틀어주시고 매장으로 다시 내려가시면 나는 차 한잔을 내려서 그 곳에 앉아 숙제를 하거나 창문을 열고 밖을 구경했다. 가끔은 친구들을 데리고가 한참 수다를 떨다오기도 했다. 그러다보면 아저씨가 중간중간 올라와 그 곳에 있던 물건들을 하나씩 소개해주었는데 그럼 자연스럽게 역사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이 재밌었다. 매주 토요일에는 부산에 사는 외국인들이 이 곳에 모여서 기타도 치고 한국문화에 대해 주제를 하나씩 정해 몇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다 가기도 했다. 가릉빈가는 문화 그 자체였다. 옛 것으로 꾸며진 공간이었지만 이야기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스무살이 되어 상경 후 오랜만에 부산을 찾았을 때 그 공간은 더 이상 없었다. 턴테이블은 망가졌고 기타줄은 끊어졌고 마루는 더러워졌고 임대료는 아저씨가 감당할 수 없을정도로 올랐다. 오래가지 않아 가릉빈가는 2평도 되지 않는 작은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자리는 술집, 밥집을 거쳐 고깃집이 생겼다. 누군가의 탓이라기엔 모두가 그 공간을 소중히 대할 줄 몰랐고 그렇게 지난 시간동안 수 많은 가릉빈가들이 사라져갔다.
 해시태그로 트랜드를 요약할 수 있는 시대에 나의 20대를 살고 있다. '핫'한 것들은 계속해서 쏟아지고 '세련된 것'에 대한 욕구는 끊임이 없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지금 시대에게 아쉬운 것은 먼 미래에 우리의 문화가 이야기가 아닌 키워드로만 기억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시간이 바랜 냄새는 수많은 자본과 뛰어난 센스로도 만들어낼 수 없다. 비교적 나의 생각을 글 혹은 이미지로 표현하는 일을 자주 하는 젊은 세대로서 꼭 지키고 싶은 가치관이 있다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늘 고려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며 흘러갔으면 좋겠다.
 아저씨는 여전히 뻰치로 철을 꼬아 악세사리를 만들어 팔고 계신다. 나를 포함한 10년 넘은 가릉빈가의 단골손님들은 아직도 아저씨에게 들러 안부를 전한다. 좋은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 요즘 그 때의 그 바랜 냄새가 종종 떠올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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