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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bre Jan 15. 2018

24와2분의1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섯번째 달력이 나왔고 첫 전시를 끝마쳤다. 그 사이에 새해가 밝았다. 스물넷이었던 우리는 어느새 스물아홉이 되었다. 5년 전 우리는 스스로 즐거운 청춘이 되기 위해 고민했고 그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24와2분의1을 시작했다. 달력은 좋은 수단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열두장의 그림에 나눠 담을 수 있었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일상의 단순한 생산물에서 예술성을 발견하길 바랐던 마음에서는 미술작품 열두장을 파는 셈이었으니 제법 훌륭한 수단이었다. 점점 우리의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우리는 매년 작년보다 나은 달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사이에 우리는 돈주고도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얻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계속 달력을 만들어왔다.


 쉽지는 않았다. 올해는 특히 더 그랬다. 그저 즐거운 청춘으로만 포장되기엔 지독하게 힘든 시간이었다. 전시가 겹친 탓에 슬아는 몇 배는 많은 그림을 그려야했고 그 동안 나는 전시와 달력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해야했다. 둘 다 본업이 있으니 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을 줄였다. 근 한달동안 이틀에 한 번 꼴로 잠을 잤는데도 시간이 부족한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유난히 사건사고도 많았다. 인쇄사고는 기본이고 업체별로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없었다. 분노할 시간도 없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다음 것들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모든 것이 담담했다. 달력 1200개를 포장해서 보내고 전시장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동안에도 우리가 어찌어찌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시가 끝나갈때쯤 드디어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잠을 충분히 잘 수 있었고 자기 전에 내일 할 일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정리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힘들었던 것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서러움인지 후련함인지 알 수 없을 눈물이 펑펑 났다. 말은 안했지만 마지막날 전시장에서 이슬아가 코가 빨개지도록 울며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냥하지 못하지만 수없이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에도 서운하고 미안한 순간에도 그 다음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올해도 그렇게 해냈다.


 그림을 그리며 절망과 희망에 반복해서 빠지던 고흐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써두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그러니 나도 계속해서 달력을 만들어야겠다. 계속해서 우리의 즐거움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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