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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10. 2020

어릴 적 우리가 배웠으면 좋았을 마음 교육, 심학

우리 인생은 우리의 생각이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서 무언가를 가져가려 하기 전에 스스로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영어교육을 연구하면서 내가 깨닫게 된 사실은 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나보다 영어를 더 잘 가르쳐줄 수 있는 훌륭하고 뛰어난 선생님들이 너무도 많았고, 내가 그들보다 아이들에게 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아이들이 그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난 어릴 적부터 그 무엇보다 영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고, 영어만이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었다. 영어를 배우는 것은 내 목표를 성취하는 것에 있어서 중요했지만, 그것이 내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우선시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것을 배우기 이전에 내 마음을 보살피는 법을 알 수 있었더라면 나는 이렇게 먼 길을 둘러오지 않았을 것이라 늘  생각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내가 경험한 것을 또 다른 아이들이 경험하지 않도록, 손을 뻗으면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믿는다. 영어는 나에게 그랬듯이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영어가 아니라, 그 어떤 것일지라도 말이다.




지방의 작은 동네 초등학교에서 1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세 학교를 순회하면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세 학교는 교육 수준과 생활환경이 우연찮게도 세 단계로 나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소중한 것을 깨닫기 위해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다.


첫 번째 학교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너무나도 수월한 환경이었다. 아이들은 바르게 행동했고, 내가 무엇을 설명하든 쉽게 이해하고 잘 따라주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듯했다. 

두 번째 학교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고자 하는 욕구는 있었으나, 인성 교육이 많이 필요로 하는 환경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고, 선생님들 또한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힘을 가지고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다.

세 번째 학교는 수업 자체가 진행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아이들에게는 학습보다는 기본적인 의, 식, 주가 잘 해결되고 있는지를 챙겨주어야 했다.

교육 수준과 환경은 다 달랐지만, 아이들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을 그때의 나는 깨닫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왜 영어를 가르치는 데 있어 회의감이 왜 드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가르치는 것은 나의 적성이 아니겠거니 생각했고, 나는 학교를 떠났다.


내가 그 당시 아이들에게 가르쳐줘야 했던 것은 영어가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보살펴주는 것이었다.


긴 방황 끝에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회의감이 들었던 이유는 감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교육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아서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었다면, 지금쯤 목표를 좇는 입시생이 된 아이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나조차 내 마음을 보살피는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직도 가끔 떠오르는 그 당시 9살이던 지윤(가명)이는 엄마의 부재와 가난에 허덕이며 힘들어했는데, 그 아이에게 혹독했던 세상이 덜 힘들 수 있도록 마음을 보살피는 법을 알려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아이의 환경을 내가 바꿔줄 순 없지만 적어도 그 아이가 앞으로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마음을 챙길 수 있도록 알려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지윤이에게 당장 필요했던 것,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영어 공부가 아니었다.


교육 철학과 교육사를 들여다보면, 지식을 받아들이고 학습하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우선시 되는 것이 스스로의 마음을 보살피고 다스리는 것, 즉 마음에 대한 공부이다. 특히 동양의 유교, 불교, 도가가 그러한데 최근에는 유불도의 마음 챙김 기반의 현대적인 논의가 교육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배우는 자가 스스로의 마음 세계를 이해하고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마음을 주체적으로 쓸 줄 알아야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일들에 휩쓸리지 않고 '배움'을 지속시켜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지식을 습득하기 이전에 먼저 바른 몸과 마음가짐,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교육을 근본적인 교육이라고 보았다. 이제는 그런 교육을 살펴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손을 뻗으면 알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보살피는 법을 알려주는 곳은 없는 것 같다. 아직은 더디지만, 마음이 불안하여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내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루하루 글을 쓰며 계획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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