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상승과 신의 하강

창세기 11:7-9

by 김영훈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 역사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신의 자리를 향해 상승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신은 인간의 자리로 하강하여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창세기의 신은 상당히 주도적이고 적극적입니다. 우리가 종교적으로 기대하는 신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요청에 응답하는 신을 원합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종교적 수사처럼, 신이 항상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신이 인간이 되거나 인간의 자리에 내려오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신은 그냥 그 자리에서 인간이 요청할 때마다 그 요청에 응답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기이하게도 세상을 창조한 신이 긴 시간을 들여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며, 인간의 역사에 개입해들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은 왜 일을 복잡하고 번거롭게 만들까요?

바벨탑 이야기는 오페라의 서곡(overture)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곡은 짧은 시간 안에 이야기의 대략적인 얼개를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줍니다. 바벨탑 이야기가 바로 그런 효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의 이야기에서, 끊임없이 힘을 합쳐 바벨탑을 쌓아올리는 인간들과 그 인간들 안으로 개입해들어오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인간은 늘 자신들의 힘으로 영원한 안전을 만들어내려고 하지만, 그들의 쌓은 탑은 결국 신에 의해 무너집니다. 이것은 역사의 반복이지만, 결코 의미 없는 공전은 아닙니다. 그 속에서 신은 믿음의 사람을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와 신의 입장에서 볼 때가 다릅니다. 물론 인간이 신의 시각을 소유할 수 있다거나 신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창세기는 인간이 하려는 것과 신이 하려는 것을 날카롭게 대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뿐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내기위해 자신의 힘으로 이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하고, 신은 이 세상을 통하여 인간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이 놀라운 긴장과 역동의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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