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by 김영훈

나는 2025년부터 소득이 없다. 그리고 나의 직업은 소위 ‘미파’라고 불리우는, 즉 교회에 파송받지 못한 목사다. 목사를 직업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명이나 소명, 혹은 부르심과 같은 멋진 말도 있겠으나, 나는 그냥 담백하게 직업이라는 일반적인 말을 선호한다. 신학을 시작한 후로 목사가 누구인지 수도 없이 고민했으나, 요즘처럼 목사가 누구인지 절절하게 느껴지는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최근에 나는 전세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갔다. 요즘 대출을 받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출을 받으려면 소득이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무소득이며, 심지어는 목사다. 게다가 파송받지못한 목사다. 나를 바라보던 은행원들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무언가 위태롭게 바라보던 경멸섞인 그 눈빛들을. 나는 그 눈빛들 속에서 비로소 목사가 누구인지 몸으로 깨달았다. 물론 그것은 몇몇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옳고 그름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목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고, 그 시선을 피해 살아갈 방법은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소원은 내가 생각할 때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이왕 목회를 시작했으니 나의 목회를 한번 펼쳐보자는 것뿐이다.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솔직히 그 성공과 실패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재정적으로 독립하면 성공이고 못하면 실패인가? 사람을 많이 모으면 성공이고 못 모으면 실패인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실패 확률이 현저히 높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내가 하면 남들과 다를 거라는 이상한 생각을 할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그러나 미래는 모르는 것이다. 이것만은 확실하다. 모르기 때문에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왕이면 재정적으로 넉넉해지고 싶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좋겠다. 이게 잘못된 욕망인가? 나는 일부러 작은 교회를 추구하고 가난한 교회를 지향할만큼 윤리적이고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교회가 많은 데 개척을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생각이 얼마나 바보같은 것인지 안다. 목회는 예술과 비슷한 점이 있다. 나의 세계를 펼쳐보이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 나라를 위해, 온 인류를 위해 목회한다는 말은 못하겠다. 나는 하나님을 완전히 대리할 수 없다. 그저 하나님을 믿는 한 사람일 뿐이다.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목회에는 자신이 없다.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 그러나 나만이 할 수 있는 목회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걸 하겠다는 것이다.

목회를 쉰지 일년이 넘어간다. 물론 그동안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던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그러나 잘 안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절절하게 느낀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잘하고 못하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어렵고 힘들고는 그 다음 이야기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있어도 안 된다. 물론 반대로 아무것도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이 목회이기도 하다. 요즘 큰 교회 하겠다 작은 교회하겠다, 이런 교회하겠다 저런 교회하겠다하는 말들이 얼마나 우스운 말인지 깨닫는다. 교회론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무슨 대단한 방법론이나 비결이 있는 것처럼 하는 말들은 얼마나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가?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하는 것이고 안 도와주시면 못하는 거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 스스로 올해 안으로 하나님과 승부를 볼 작정이다. 하나님과 승부를 본다는 게 부적절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올해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고, 안 되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른 직업에 도전해야할 것이다. 목사로 파송받지 못한다고 해서 버려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라는 사람으로, 나라는 인간의 삶으로 이미 파송받았기 때문이다. 목회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나라는 인간에, 주어진 이 삶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비록 그 길이 내 맘에 들지 않고 비루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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