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배제

창세기 4:3-5

by 김영훈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오늘 말씀은 인류의 첫 번째 살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살인은 형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인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본문은 가인과 아벨이 각각 신에게 제물을 바쳤으나, 신은 아벨의 제물만 받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제물을 거부당한 가인이 분노한 나머지 아벨에게 화풀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면 마치 가인이나 가인이 바친 제물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가인이나 가인의 제물에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신은 아벨과 아벨의 제물만 받고 가인은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현실로 가져와보면 이렇습니다. “왜 저 사람은 되고 나는 안 되는가”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하는 생각입니다. 이 세상은 결코 조화롭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자리가 마련되어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가 선택되면 누군가는 배제됩니다. 누군가가 밀려나지 않는 이상 저절로 자리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 선택받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선택이 불합리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선택받을만한 사람이 받았다면 납득하겠지만, 나와 별반 차이가 없거나 나보다 못한 사람이 선택을 받는 일 앞에서 우리는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창세기는 가인이 선택받지 못한 이유나 아벨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즉, 창세기는 어떻게 해야 선택받고 어떻게 하면 배제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초점은 “그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까”에 있습니다. 창세기가 고발하듯이, 우리는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죽여 내 자리를 확보하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스스로의 행동이 매우 정당하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물론 신은 결국 가인에게 살인에 대한 형벌을 내립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보게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인의 생명을 빼앗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신은 가인의 생명을 보호합니다. 마치 이것이 인간의 실력이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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