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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 Lee May 25. 2018

[한 잠] 잠이 쏟아지는 이유

견딜 수 없는 졸음

뒤늦은 춘곤증이 오는지 몸 전체를 미적지근한 물에 담근듯한 무거운 졸음이 온다. 아침은 몸이 덜 깨 졸리고, 점심은 식곤증이라 졸리고, 저녁은 일과 후라서 졸리다 하면 내게 하루 중 정신이 맑은 시간은 대체 언제 있는 걸까? 희한하게도 못 이길 것 같은 잠이 엄습해 오는 시기가 몇 년에 한 번씩 있다. 열아홉 여름방학, 수준별 이동수업에서 나는 전교에서 가장 이쁘다고 하는 아이와 짝이 되었더랬다. 자리에 앉으며 그 아이와 대충 눈인사를 나누면서도, 그와중에 언뜻 보이는 콧날의 실루엣이라든가, 투명하고 팽팽해 보이는 목덜미의 살결에 감탄했던 것 같다. 어떤 아이일까 궁금했지만 왠 걸, 잠이 몰려오는 탓에 방학 내내 그애와 나눈 대화라고는 '안녕'이 다 였다. (오죽하면 담임선생님이 걱정스럽게 불러내어 상담을 요청하셨을 정도였다. 하지만 난 정말 다만 이해할 수 없이 졸렸을 따름이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나는 스트레스를 잠으로 푸는 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방어 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몰려오면 불현듯 모든 것에서 다 회피하고 싶어지며 잠이 쏟아지는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와 심각하게 싸우는 와중에도 나는 퓨즈가 툭 끊어지며 극심한 피곤과 함께 잠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생각을 멈춘 동면 같은 잠.  

   

어느덧 올해 상반기가 다 지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게 나의 호시절이구나 싶었을 정도로 탈 없고 무난했던 시기였다. 정시 출퇴근, 저녁이 있는 삶, 정해진 돈이 들어오고 적당히 딴짓을 할 여유가 있는 딱 십 개월의 약속된 일자리 덕이었다. 여러 변수 덕에 저금이라고는 거의 하지 못했다. 일이 끝나 갈 때 쯤, 다른 일을 벌렸고 나는 다시금 울타리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꿈같은 삶이라기엔 소박한 몇 개월이었지만 적은 돈을 받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일을 하는 삶에 익숙했던 탓에 오히려 지금의 일은 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고작 몇 십 만원과 몇 시간의 여유가 내 삶을 얼마나 더 숨 쉴 수 있게 만들어 주는지에 대해 나는 실감했다. 그리고 가끔은 그 고작 그것 때문에 내가 이리도 불안했음을 깨달으며 씁쓸하기도 했다.  

  

이제 꿈에서 깨려니 더 잠들고 싶은 건가 생각한다. 

십 개월 전만 해도 나는 치킨마요를 먹을까 도련님도시락을 먹을까 고민하면서, 하루에 만원도 안 쓰고 살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야릇한 뿌듯함을 느끼며 생활의 폭을 줄이고 있었더랬다. 사십 만 원으로 교통비, 식비, 핸드폰비까지 내고, 남는 돈을 모아 두 달에 한 번씩 고양이 사료를 사는 삶. 일을 시작한 첫 달에는 고양이가 아파서 피검사를 했는데 병원비를 보고는 고양이가 지금 아파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돈에는 별 미련이 없는 편이지만 돈이 없어서 지킬 수 없는 게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두렵다.     

어떤 삶에서 내가 만족을 느끼는지 아직 더 알아가야 하는 걸까, 생각한다. 원하는 일을 하는 삶은 안정감과는 거리가 많아서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새롭게 벌린 일에 발을 담그며 나는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일을 해보겠답시고 판을 벌려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그 안에서 함께 고민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말로, 이런 대화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중압감도 만만치 않은데, 초대한 사람들이 모두 만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결과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처음 모든 것을 책임지지만 처음과 같이 미숙해서는 안된다는 생각,  즐겁고 고무적이지만 너무 힘든 일이라는 생각, 모든 것이 지나 가고 난 풍경들을 생각하면 밀려올 공허함. 그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종종 숨도 막히고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게 버거워 달리는 지하철 안의 갑갑함 마저 견디지 못하는 상태로 치닫기도 한다. 한 패턴에서 다른 패턴으로 급히 방향전환을 하며 나타나는 적응 일 테지만 어떠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걸 지는 울타리를 넘어서도 몇 리는 더 걸어야 풍경이 되어 보일테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잠이 오는 건, 


밤이 늦어서라고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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