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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인적인 체험 May 30. 2018

[한 모금] 월플라워부터 프란시스 하까지

그 시절의 갈증 - 성공담 아닌 성장담

* <월 플라워>, <프란시스 하>. 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하시지 않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1. 10대에는 10대의 고민이, 20대에는 20대의 고민이 있다. 

   지금 내가 고3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난다고 해도, 수능이니 대학이니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중요하지 않으니 마음 편하게 먹으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로또 번호를 알려준다거나 니가 앞으로 몇년 간 준비하는 것은 결과가 좋지 않을테니 빠르게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라든가 하지도 않겠다. 그냥, 뭐랄까. 그 시절의 나는 그 시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어릴 적부터 꿈꾸던 방향과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왔지만, 과거에 대한 후회는 되도록 안하는 쪽으로 나아왔다. 그러니까 이미 성공담의 주인공이 되기는 틀렸을 지도 모르지만, 성장담의 주인공은 되어가고 있다고 속 편하게 생각해본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에 대한 후회가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둘 중 하나라도 좀 덜 해졌으니까 또 한 10년 쯤 지나면 이제 미래에 대한 불안도 어느 정도 수그러들어있지 않을까.) 

  고민이라는 것도 결국 어느 순간 내가 그것에 대해 고민하기를 멈추고 해결이든 타협이든 무시든 어떠한 형태로든 결론을 내야지 다른 관심사로 넘어가는 것이라서, 실은 나이대로 고민을 딱딱 끊어내는 것도 우습기에, 시간이 해결해줄것이라는 착각보다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고 고민을 해소하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지해야만 한다.



 #2. 10대에서 20대로 - <월플라워>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큰 감흥은 없었다. 마약이나 파티 같은 소재가 나오면 잘 이입이 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봤다는 것은 기억하는데 내용은 전혀 기억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프란시스 하>를 보고 나서 다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게 느꼈다.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큰 트라우마를 가진 찰리가 고등학교에 들어가 역시나 상처를 가진 샘과 패트릭 남매를 만나 환희와 절망을 오가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아마 처음에 봤을 때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찰리가 샘과 패트릭 남매와 너무 쉽게 친해지는 것이 별로 와닿지 않아서 였을 것 같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남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찰리는 트라우마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다. 

  10대에게는 역시 또래 집단이 제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각기 다른 고민이지만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그들은 서로에게서 자신을 보고, 나 자신이나 가족과 같이 일종의 '사랑해야 할 의무적인 대상'이 아닌 완전한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품지 못하고 외면했던 자기 자신도 다시 마주하고 사랑하고자 한다. 이모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족들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한 것은 가족들을 사랑하기에 그들이 충격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의심 없이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는 아닐까. 그들은 그런 고통을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날리 없다고 믿는 상식의 세계에 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까 이 시기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을 비슷한 파장을 지닌 완전한 타인과 얽히면서 찾아가는 것 같다.

 

 

#3. 20대에서 30대로 - <프란시스 하>

  <프란시스 하> 같은 경우에는 꽤 오래전에 추천 받았지만, 집에 늘어져 있던 최근에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보는 내내 힘들어서 세 번에 끊어 봤다. 친한 친구 소피에게 느끼는 서운함, 모임에서 내내 겉도는 느낌, 어설픈 재능, 경제적인 문제, 적당한 타협까지. 주인공이 사랑스럽게 느껴지지도 않고 엔딩이 새드 엔딩으로 느껴졌다. 최근에 봤던 영화들 중에 나한테는 제일 슬펐다.

   영화는 그야 말로 뉴욕에서, 자신의 꿈 자락에서도 아둥바둥 버티고 있는 무용수 프란시스의 냉혹한 현실에의 타협담이다. <월 플라워>의 찰리와 달리, 프란시스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답해야만 하는 상황에 자꾸 놓인다. 렌트비에 압박을 느껴 벤지 앞에서 횡설수설할 때, 무용단 견습단원인 그녀에게 교수가 사무직일을 권유할 때,  절친한 친구인 소피가 일본을 떠나갈 때 자신만 사람들에게서 동떨어져 있는, 뒤쳐져 있는 느낌을 받는다. 

"제 직업이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진 않거든요." 

   프란시스 뿐만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시기의 타인은 나와 닮아도, 너무 달라도 어떤 방향에서든 나를 주저 앉히고 시험하는 것 같다. <월 플라워>가 어린 시절의 나 자신과 가족들과 분리되어 타인과 결합하는 경험을 그렸다면, <프란시스 하>에서는 가족은 물론이고 타인과도 분리되어 이 사회와 결합하는 체험을 그린다. 소울 메이트 같았던 소피와 멀어지는 과정이랄지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I'm good.'만 말하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이 영화를 보며 웃을 수 있게 되는 날에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4. 성공담보다는 성장담.

  성공이란 단어보다는 성장이란 단어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성숙이라는 단어는 좋아하지 않는다. 몸은 이제 자라기를 멈추고 쪼그라들기를 시작한지 오래지만, 마음은 언제까지고 자랄 수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낙관이 내 삶을 지탱한다. 

  성숙해지지 말고, 성장하자. 그러면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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