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hwa Lee Jun 13. 2018

[한 술] 밥 먹는 사이

언제 밥 한번 먹을까요?

언제 밥 한 번 먹자, 라는 말 만큼 흔한 인사가 있을까?

주로 이 인사는 남은 아니되, 아직 막역하지는 않은 사이에서 헤어짐의 인삿말로 자주 쓰인다.

"언제 밥 한번 먹자"

건네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인사 뒤에는 

미소지으면서 깔끔하게 헤어질 수 있는 적당한 관계가 남는다. 


나는 말주변도 없거니와 뭐랄까, 아직 긴장감이 유지되는 사이에서 느껴지는 짧은 분절들을 잘 견디지 못한다. 처음보는 누군가와 밥을 먹을때는 신경 쓰이는 게 왜이리 많은지. 먹을때 서로 민망하지 않을 만한 메뉴를 골라야 하고 (뜯거나, 굽거나, 발라낼 필요가 없는지) 너무 정적이 흐르면 안되니, 상대방이 음식을 씹고있는 타이밍을 잘 피해서 적절한 질문들을 던져야 할테고. 티슈나 물병이 나의 옆에 있다면 상대방이 무엇을 흘리지는 않는지, 물잔이 비지는 않았는지 이따금 살펴보아야 할테고, 계산 할 때는 누군가 살것인지 혹은 각자 나눠낼 것인지 어색하지 않게 순간을 넘겨야 한다. 휴. 밥 한번 먹는데 이렇게나 많은 신경이라니. 


소개팅이 끝나고 비빔밥을 벅벅 비벼 먹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내숭을 위해 식욕을 참았다기 보다는 필연적인 어색함의 순간들을 넘기고 난 뒤 무방비 상태에서 밀려오는 허기를 그제야 느낀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이십대 초반, 소개팅 자리에서 파스타를 돌돌 말아 밀어넣고 나면 식사를 마칠 때 즈음 명치가 턱 막혀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땐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여러모로 적당하다는 이유로 먹었던 것 같다. (사실 상대도 그렇지 않았을까?) 대학교때 친구 한명은 강의실에서 호감이 가는 남자애 한명이 등산을 좋아하고 국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잘 맞을 것 같아!'  라며 한동안 설레여 했었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지만 허례허식 없는 한끼를 마음 편히 나누는 일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느정도 이상의 안정감과 친밀감을 느껴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언제 밥 한 번 먹자, 

안부에 가까운 나의 말을 소중히 담아 뒀다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은 무심한 나를 부끄럽고 따듯하게 만든다. 

이미  많은 끼니를 나눈 이들은 언급할 필요도 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 한 가까운 이들일 테고,

특별하지 않은 말에 기다림을 싹튀우게 하는 하는 이는 되려 내가 가까워지고 싶은 이 일테다. 


나의 밥 한 번 먹자는 인사는, 당신에게 어떻게 가 닿을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한 모금] 월플라워부터 프란시스 하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