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hwa Lee Feb 03. 2021

다른 모든 눈송이와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요즘은 부쩍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학교를 잠시 쉬는 기간 동안 나는 일년이 좀 넘게 일을 했었다. 우연한 계기로 내 위로 열살 정도 까지 차이가 나는 이 삼십 대 청년들 열명 가량이 모이게 되어 지역을 기반으로 문화 활동을 하는 조합을 만들었는데, 아무튼 그렇게 시작한 일은 강도를 떠나서 나름대로 즐거웠다. 일이라고는 하지만, 일반 회사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으므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함께 있더라도 상하관계는 없었으며, 누군가 일을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도 아니었다. 모두는 모두의 일들 돕고, 모두가 번 돈은 한데 모아 동등하게 나눠가졌다. 물론 일을 그만둔 지 몇 달이 지난 아직까지도 월급은 다 받지 못하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아직도 친구들은 남은 월급 30만원은 네가 학기를 마치고 언젠가 돌아 올 것에 대한 담보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돌려주지 않고 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입만 열면 얼굴이 빨개진 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었다. 누군가가 주목만 하면 잔뜩 긴장해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는데, 신기하게도 일년 동안 동료들과 동고동락하며 지내는 동안 어느 샌가 얼굴이 빨개지는 일은 점차 줄었다. 아무래도 이들 앞에서는 무언가 보여줘도 긴장할 필요 없단 것을 몸이 먼저 알아챘나 보다. 아무튼 학교 생활을 잠시 쉬고, 다른 이들과 만든 일자리에서도 모두가 모두의 친구였으므로,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혼자 있을 때 어떤 상태인지 알 기회가 드물었던 것 같다. 고백하자면, 나는 스스로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할 때에도 종종 혼자 카페에 가거나 산책을 나가고는 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것은 반대로 항상 곁에 누군가가 곁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가끔, 필요에 넘치지 않게 나는 혼자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고독과 달갑게 포옹할 줄 안다고 착각해왔다.


예전과 비하면 지금은 비교적 많은 게 바뀌었다. 학교에 오면 늘 얼굴을 보던 동기들은 지금은 각기 다른 일자리에 가 있고, 그들이 하는 말들을 나는 어디까지나 어렴풋하게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자주 만나던 동네친구들은 야근으로 만나는 횟수가 줄었다. 몇 달 전까지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대화방에서 나누는 말들을 이제 나는 잘 알아 들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그들과 함께 체감했던 일들을 요즘에는 한발자국 떨어져서 전해 듣고 있는데, 이 모든 게 자연스러운 변화인줄은 알면서도 나는 상경한 안나의 마음이 되어 루시아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때때로 나는 나의 허전한 마음을 구원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요한을 찾는다. 나에게 호의적이었던 과거의 어떤 사람, 아직 만남에 있어서의 긴장감을 주는 낯선 지인들, 나에게 구원이 되어 줄 요한은 때로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허영심을 채워줄 소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안나가 요한에게 고백하지 못했듯, 나는 어떤 이유에서 인지 그들에게 나의 고독을 이야기 할 수가 없다. 나는 나의 허룩함이 애초에 그들로부터 연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호출한다. 하지만 그들 요한은 나에게 입을 맞춰 줄 수가 없다.


혼자 있는 내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전시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가까운 친구나 동료들에게 연락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가까운 학교의 운동장에 나가서 몇 바퀴고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것이다. 일단 네 바퀴가 넘게 달리기 시작하면 숨이 차오르면서 생각하는 것 조차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몸에 집중하다 보면 잠시 잡생각이 달아나고는 한다. 나는 쳇바퀴 도는 스스로가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방도가 없어 달린다. 그래도 건강하고 좋은 습관이니까, 생각하며 말이다. 나와서 쏘다닐 수 있는 계절이라 그래도 다행이지만 피할 수 없는 시간은 찾아온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아무도 만날 수 없고, 아무도 연락을 받지 않는 새벽이 오면 나는 뜬눈으로 천장을 보고는 한다. 그러면 깨있는 동안 그렇게나 떨치려 했던 잡생각이 침대 위에서 속절없이 머릿속으로 파고 든다. 나는 내가 어쩌면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많은 것들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사실들과, 만남 뒤에 찾아오는 허무함에 대해서 떠올리며 몸을 뒤척인다. 혹시 깨어있는 사람이 있을까 연락을 해보려 하다가도 스스로가 우스워져서 그만두고는 하는데, 뒤척이는 대신 멜로 영화나 한편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도 결국은 그 모든 일들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고는 한다. 그럴 때면 창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의 수십 개의 캄캄한 창문들이 일제히 나를 비웃는 것만 같다.


계단을 타고 흘러 내리는 안나의 오줌줄기처럼, 나는 내 게 아닐 거라 생각한 캄캄하고 끈적한 나를 뒤쫓는 존재로부터 도망치며 추격전을 벌인다. 내게 아니야.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다 보니, 나는 그것이 얼마나 캄캄한지 어떤 부피로 자리하고 있는지, 혹은 얼마나 뜨겁고 냄새 나고 적나라 할지 아직까지 제대로 본적이 없다. 다만 계속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 보면 창 밖은 어슴푸레 밝아오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피워 올리는 아버지의 담배연기가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의 눈꺼풀은 주체할 수 없이 감겨온다. 이겼어, 생각하며 말이다.


한밤 중의 캄캄한 추격전에서 승리한 나는 해가 중천에 떠서야 피곤을 쫓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피할수록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찜찜하게 부피를 더해가고, 나를 위로해주는 많은 목소리들은 생기를 잃어간다. 요 몇 주 새 나의 수면 패턴은 크게 바뀌었는데, 수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이른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을 청하고, 낮 시간이 될 즈음에야 잠에서 깬다. 완벽한 올빼미 형 인간이 되었는데, 아마 올빼미와 다른 점은 나는 아직 이 고요하고 캄캄한 시간을 나의 시간으로 껴안을 날개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겠다.


그리하여 밝은 눈을 가지지 못한 채 밤을 맞는 이 시간에 나는 또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궁리를 하고 있다. 수화기 너머 누군가의 목소리는 나를 잠시 캄캄한 아귀로부터 구해 줄 것이며, 또 그럼으로써 오히려 그것의 존재를 더더욱 각인 시킬 것이다. 어쨌든 계속해서 고개를 돌리고 내달리는 일은 여러모로 몸을 굳게 만든다. 허나 앞으로는 이러한 시간이 계속해서 찾아 오리라는 것을 안다. 가끔은 달리기를 해도 좋을 것이지만 언제까지고 달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천천히 걸음을 늦추고 마주 하는 법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둠과 자연스럽게 포옹하고, 외로움 뒤에 찾아오는 많은 깃듦을 기껍게 맞아들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술] 이중섭을 회상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