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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 Lee Jan 29. 2019

[미술] 이중섭을 회상하다

《이중섭, 백년의 신화》를 다녀와서.

미도파화랑 개인전에서 이중섭, 1955


폐관시간을 앞둔 평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해질녘이 되어서야 슬며시 전시장에 도착한 나는 그를 찾는 수 많은 인파에 감탄하며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전시관은 이중섭의 생애를 좇는 일대기적 흐름에 따라 전시 되어 있었다. 그가 아내와 아이에게 보낸 편지와 그의 그림들을 보며, 고뇌하던 화가 이중섭의 예술가적 면모와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삶을 버텨낸 한 인간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모두 살필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게는 그 두 모습이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이중섭의 작품들은 그가 생애동안 껴안은 사랑과 질곡들을 그가 어찌 체화시켰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붓과 마음 사이가 흠 없이 가까워, 내게는 그것이 맑고도 시큰하게 느껴졌다.


<봄의 아이들>, 1953-1954


이중섭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그림


“나는 세상을 속였어! 예술을 한답시고 공밥을 얻어먹고 놀고 다니며 후일 무엇이 될 것처럼” 

– 시인 구상의 “이중섭의 발병전후”(1974) 중 – 


생활고와 예술가로서의 고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점차로 심화되어 이중섭은 심신이 쇠약해졌다.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던 이중섭은 길에 나가 그의 자식 또래의 어린 아이들 손과 발을 씻겨주고는 했다.

1955년, 이중섭은 미도파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성황리에 마쳤다. 하지만 작품 값이 제대로 수금 되지 않아 아내와 아이를 보러 일본에 가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크게 상심하였다. 이중섭은 정릉으로 거처를 옮겨 화가 한묵, 소설가 박연희, 시인 조영암 등과 함께 생활하다가 이듬해 가을 병세가 악화되어 작고하였다. 이중섭이 죽은 뒤 생전에 그와 동고동락하던 한 화가의 아내는 이중섭에 대해 이렇게 회상하기도 했다. 


어느 날, 남편이 종이에 싼 가루를 주면서 잘 놔두라고 했다. 뭔지 궁금해서 펴보니 하얀 가루였다. 손으로 찍어 먹어봐도 별맛이 없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뒤 남편이 그때 맡겨둔 종이를 찾았다. “무슨 종이?” 했더니 “중섭이 말이야”라고 했다. 이중섭을 화장해 3분의 1은 일본 가족에게 보내고 3분의 1은 산에 뿌리고 나머지를 가져왔던 것이다. 뼛가루란 말을 듣고도 어떤 역겨운 기분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았다. 그 가루를 항아리에 담아 놓고 제사상을 차렸다.


그리고, 그와 절친했던 시인 구상은 그를 그리워하며 <초토의 시 14>를 남겼다.     

               

초토의 시 14 _ 구상

자네가 간 후에도 이승은 험하기만 하이. 나의 마음도 고약만 하여지고 첫째 덧정없어 이러다간 자네를 쉬이 따를 것도 같네만 극악무도한 내가 간들 자네와 이승에서듯이 만나 즐길겐가 하구 곰곰중일세./깜짝 추위에 요새 며칠 감기로 누웠는데 망우리 무덤 속에 자네 뼈다귀들도 달달거리지나 않나 애가 달지만 이건 나의 괜스런 걱정이겠지. 어쩧든가 봄이 오면 잔디도 입히고 꽃이라도 가꾸어 줌세./밖에 나가면 만나는 친구들마다 어두운 얼굴들이고 이석이만은 장가를 들겠다고 벌쭉이지만 그도 너무나 억차서 그래보는 거겠지. 몸도 몸이려니와 마음이 추워서들 불대신 술로 난로를 삼자니 거진 매일도릴세./자네는 이제 모든 게 아무치도 않어 참 좋겠네. 어디 현몽이라도하여 저승소식 알려 줄 수 없나. 자네랑 나랑 친하지 않었나. 왜.



<돌아오지 않는 강>, 1956


마지막 전시관에 들어서자 그가 죽기 전 해인 1955년부터 1956년까지 정릉에서 생활하며 그린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천진하게 뛰노는 어린아이들과 꿈틀거리는 황소를 그려내던 손으로, 이중섭은 정릉에서 마지막 작품을 그려내고는 마침내 붓을 거둔다. 작품의 이름은 <돌아오지 않는 강> 이다. 멀리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다. 남자는 여자가 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를 등지고 오도카니 먼 밖을 내다보고 있다. 남자는 결국 여인을 만났을까?


짧은 생애를 마치고, 이중섭은 40세에 세상을 떠났다.




*본 리뷰는 정릉동의 역사, 문화, 사람, 이야기, 맛집 등을 소개하는  아카이브 미디어 '신나지'에 기고하였던 글입니다. (원문링크 : http://story.sinna.us/3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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