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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 Lee Jan 29. 2019

[문학] 빛의 호위_조해진

사소함과 찬란함의 사이



소설을 읽으며 문득, 누군가를 살아가게 해주는 것들이, 저 편에서 보면 정말 사소한 호의 같은 것 들로 이뤄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쓸쓸해졌다. 무심코 손을 건넨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 손 잡은 사람에게는 평생의 온기가 되어, 이윽고 그것을 간직하고 살 수 밖에는 없는 노릇이 된다. 반장이 건넨 카메라를 통해 세상과 만나게 된 권은이 그러하였고, 평생 아버지라 부를 수 없던 무명의 호르니스트에게서 받은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구호차량을 꾸린 노먼 마이어가 그러했다. 그것은 감동적이지만 동시에 쓸쓸한 일이었다.


눈 속에 우두커니 서있던 권은과, 자신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아버지를 둔 노먼 마이어를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과연 그들에게로 전해진 온기가 무슨 의미일지 생각하다 보니,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온기를 전한 사람은 그들의 존재 조차 모르거나잊고 지내는 데, 그들만이 따뜻함을 기억한 채 살아간다는 건 어쩐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점차 지워졌다.


'빛의 호위'를 읽는 동안,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여주인공 조제는 하반신을 쓸 수 없어 집에 사람이 오면 어두컴컴한 장롱 안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인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츠네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점차 세상 밖으로 나오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사랑의 열정이 지나가자 츠네오는 점점 현실적인 문제들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항상 돌봐줘야하는 그녀가 부담스럽고, 가족들에게 그녀를 소개할 자신도 없다. 결국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는 조제가 혼자 의자에 앉아 요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머리를 질끈 올려 묶고 요리를 마친 그녀는 휠체어로 몸을 옮겨 털썩 주저 앉은 뒤, 홀로 세상을 향해 나간다. 그 장면의 여운이 너무나도 길어서 영화를 다섯 번은 더 봤던 기억이난다. 비록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누군가와 진심으로 사랑했던 기억만은 각자에게 남아 그들을 새로이 살아가게해주는 것이다.


<빛의 호위>도  이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누가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었고, 그것을 누군가가 알아채지 못하거나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들 그것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사랑하거나 사랑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주 찰나 같은 빛의 호위일지도 모르겠으나, 기꺼이 사랑을 ‘겪은’ 존재의 전과 후는 달라질 수 밖에는 없다.


이상할 건 없었다. 태엽이 멈추고 눈이 그친 뒤에도 

어떤 멜로디는 계속해서 그 세계에 남아 울려퍼지기도 한다는 걸, 

그리고 간혹 다른 세계로 넘어와 

사라진 기억에 숨을 불어넣기도 한다는 것 역시, 

나는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사뭇 쓸쓸할지도 모르겠다고 느낀 그 모든 사소함이야 말로 사랑의 가장 위대한 얼굴이 아닐까. 사랑이 깃든 순간, 사소한 것들은 위대해 진다. 캄캄한 식료품 창고에서 알마를 살아가게 했던 연주된 적 없는 악보들, 주인공이 권은에게 건낸 카메라, 누군가를 기억하는 이가 전 재산을 털어 실어보낸 구호물자는 누군가의 마음이기에 사람들을 살아가게 한다.           


태엽이 멈춘 후에도 멜로디는 남는다. 불 꺼진 방 안에서 캄캄하게 울려 퍼졌던 멜로디는 그것을 함께 듣던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생명을 얻는다. 헬게 한센의 <사람,사람들>을 보고 맨해튼 거리로 나와 악기상 앞에 멈춰선 내가 보는 풍경은 사뭇 눈부시다. 거리의 햇빛들을 죄 빨아들여 눈부시게 빛나는 악기들, 그 중에서도 바이올린과 호른을 보며 우뚝 멈춰선 나는 권은을 생각한다. 모두의 기억 속에 멜로디로 남아있던 권은, 나, 알마, 노먼, 장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빛의 호위 속에서 조우한다. 그리고, 활이 닿지 않게 소리 없이 연주하던 바이올린과 스노우볼의 아스라한 멜로디는 한데 합쳐 그 어떤 음악보다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빛에 눈이 먼 듯, 들리지 않는 이들 멜로디의 잔상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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