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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 Lee Mar 08. 2021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버튼을 몇 개나 가지고 있나요?

행복은 크기보다는 빈도니까요.


불현듯 이 매거진을 써야지, 하고 마음먹은 것은 민음사에서 이토 준지의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이토 준지가 만화책으로 펴냈다.) 출간 기념 인터뷰를 읽게 된 것이 계기였다. 그의 말이 나를 뒤흔들었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내가 흥분한 지점은 전혀


이토 준지의 만화를 좋아하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애정 하는 내게 둘의 콜라보는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설레는 일이었다. '보지 않아도 어울리겠지'하는 막연한 믿음과 더불어, 이토 준지의 손끝을 거쳐 소설이 어떻게 각색될지 상상해보는 것은 이미 짜릿했다. 재작년 말에는 이토 준지의 <인간실격 2>가 발행되는 날이 마침 나의 생일이어서, 홀로 의미 부여하며 남모를 팬심을 가져왔던 터였다.


그런데(!) 이토 준지의 인터뷰를 읽다가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그의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판의 미로>, 그리고 <쉐이프 오브 워터>를 좋아한다.) 순전히 끼워 맞추기 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꾼들이 서로의 팬이라니. 인터뷰를 읽으며 나는 글의 요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취향의 고리'를 발견해 내고 싶어 들뜬 마음이 되었다.


하지만 들뜬 마음도 잠시, 밀려드는 일과 핑계에 나의 취향 매거진 기획은 저 깊이 가라앉고 말았는데, 그것을 일 년 정도 지난 지금 꺼내 드는 이유는, 오히려 어느 때보다 가라앉고 여유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간 하던 일이 끝이 났다. 근 십 년 가까이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보니, 좀 더 긴 호흡으로 적을 둘 곳이 찾고 싶어 졌다. 혼자 대학원을 썼다가, 붙었다가, 취소했다가, 마음을 잡고 이력서를 몇 번 써보니 세상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치열한 자기 증명의 세계인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들은 당연하게도 '진짜 내'가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다. 더불어 재작년과 작년에 연달아 겪은 조부모 상은 내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자려고 눈을 감으면 나는 속절없이 떠오르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 아니 그보다는 그러한 식으로 마무리되는 삶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느 날은 눈을 감으면 숨이 아주 얕아지며 체온이 사라지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심호흡을 하며 눈 떠야 했고, 어느 밤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던 한 팔로 기저귀를 가느라 관절이 비틀어지는 고통에 내 손을 움켜쥐던 외할아버지의 악력이 떠올랐다. 함께 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은 터라 그들의 죽음은 내게 애상보다는 실질적인 차원의 상실에 대해 자꾸만 떠오르게 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존재에 대한 허무감에 쉽게 휩싸여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내게 '취향의 발견'은 쓸모를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를 재단하고, 생생한 삶의 순간을 끌어안지 못하고 저 멀리 흘러가는 스스로를 그러모으기 위해 나의 조각들을 다시금 들여다 보고 연결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좋아하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것, 왜 좋은 지 모르겠지만 좋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 가다 보면 그것들에 녹아들어 있는 나를 발견하지 않을까.


좋아하는 감정은 순간의 반짝임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통로이니, 나는 그 조각들로 말미암아 다시 한번 지금의 나를 모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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