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놓고 보니, 취향
나는 한 집에 오래도록 살았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이사한 번, 그리고 서른 무렵 이사를 한 번 했으니 돌이켜보면 한 집에서 이십년 간을 살아왔다. 문예창작과 수업을 듣던 시절, 동네가 재개발 되어 살던 곳을 떠나야만 하는 여고생의 상실감을 담은 이야기를 첫 소설로 써 냈으나, 그것은 소설이라기 보다 일기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여튼 그정도의 애정을 품을 정도로 방은 나의 흔적이 집약되어 있는 나 자체였다.
초등학생때부터 서른까지 나의 책상, 피아노, 서랍, 장롱은 그대로 였으니 주어진 가구와 공간을 잘 사용 하는 것은 내게 당연한 조건이 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름의 즐거운 일이었다. 조금씩 내가 원하는 것을 공간에 덧대고, 그 흔적들이 쌓이다 보면 공간의 분위기가 점차 바뀌어 간다.
낡은 집에 사는 것의 최대 장점은, 행여나 집이 상할까 벌벌 떨 필요가 없다는 것. 초, 중, 고 대학시절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창시절을 한 공간에서 보내며 나는 벽에 못이나 압정은 예사로 박아넣고, 장롱에 매니큐어로 무늬를 찍어넣기도 하며, 이사 말미에는 고양이가 벽을 긁어놓아도 겹겹이 발린 벽지 사이의 타일을 발견하고는 '방이 화장실이 었나보군. 어쩐지 습하더라.' 정도의 마음을 지니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낡은 집은 어느순간 벗어나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너무 많은 과거에 파묻혀 있자니 새로운 물건, 습관을 받아들이는 게 버거워짐을 느끼고 있던 차, 나는 드디어 이십 년 만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궁심해서 집의 디테일과 가구를 고르고, 물건을 사들여 꾸민 나의 방은 이전 집의 ver.2가 되어있었다. 이사는 내게 '취향'이 주는 아이덴티티에 대해 계속 떠올리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개개별의 예쁜 물건은 얼마든지 많고 다양하다. 하지만 공간에서 그곳에서 사람이 묻어나는 것은 예쁜 물건을 사는 것과는 별개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물건이라고는 거의 없지만 같은 사람이 사는 고로, 공간의 무드가 이렇게까지 비슷해 질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살다가, 이사를 하며 새로운 물건들을 공간에 들이며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생각하는 무드에 가까운 공간을 만들기 위한 나만의 절차 몇가지가 생겼다.
1. 물건의 상세 사이즈를 체크한다.
2. 물건을 둘 곳의 벽과 바닥에 포스트 잇으로 물건 사이즈만한 네 귀퉁이 꼭짓점을 표시를 해둔다. (대부분 이 과정에서 생각보다 스케일이 작거나 큰 물건들은 사지 않게 된다.)
3. 하루 이틀 동안 생활하며 그 위치에 놓인 물건의 쓰임, 색감과 전체의 조화를 머릿 속으로 시뮬레이션 해본다. (말이 거창하지, 눈에 포스트잇이 보일때마다 자연스레 '뭘 두려 했더라?' 생각하게 될 것이다.)
4. 이 모든 과정에 껄끄러움이 없다면 물건을 들이고 배치한다.
tip ) 가능한 큰 물건 부터 배치하고, 그 다음 소품 순으로 배치한다. (큰 물건이 주는 무드나 컨셉에 의해 전체 분위기의 상당 부분이 결정되므로, 큰 것->작은 것 순으로 배치를 결정 한다. 단순하지만 유용한 팁이다.)
한 공간을 채우면 자연스레 그 물건과 전체 공간의 균형 속에서 다음으로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공간들이 생겨난다. 그러면 그 다음 공간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공간을 채워나간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나는 맥시멀 리스트이며,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고,
동굴형 인간이며,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값 비싼 물건은 부담스러워하는(모셔야 하는 물건은 가급적 들이지 않는)사람이라는 점이다. 내가 즐길 수 있는 선에서의 아름다운 것에 한껏 둘러싸여있기를 원하는 나는 결국, 남들 보기야 어찌되었건 마음에 드는 편안한 공간을 꾸밀 수 있었다.
이제 새 공간에서 산지 딱 일 년. 시간이 흐르며 이공간에도 무언가 더해지거나 사라지고, 낡아질테다. 하지만 공간이 주는 '분위기'는 무엇보다 이곳에 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오래도록 나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