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를 당하는 인간

종교에 대하여

by 초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 이름을 말하면 한결같이 반응한다. “기독교 신자인가 봐요?”, “아버님이 목사님이세요?” 어릴 때도 지금도 나는 개명을 꿈꾸지만, 사실 귀찮아서 아직 유지 중이다. 나는 내 이름이 싫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목사님이 아님을 해명해야 했고, 다 커서는 기독교가 아닌 것을 해명해야 해서 귀찮다. 이제는 익숙하게 받아치지만 이름 때문에 놀림도 많이 당했다.




나는 이름과 달리 기독교가 아니다. 아니, 종교가 없는 무신론자이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종교가 있었다. 모두가 추측했듯, 기독교신자였다. 물론 부모님의 영향으로 교회를 다녔었다. 그것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남들보다 자주 출석했다. 다니면서 나는 기독교 교리에 반발심이 들었다. 창세기부터 이해가 안 됐다. 학교에서는 분명히 우리는 진화된 사피엔스라고 배웠는데, 성경에는 마치 신이 요술을 부리듯 인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말하는 교리마다 앞뒤가 맞지 않다고 느꼈고, 그럴수록 신뢰성이 떨어졌다.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인이라는 사람들은 모범적이지 않았다.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십계명은 내로남불 그 자체다. 그래서 나는 20년 가까이 강제적으로 믿었던 종교를 때려치우고, 무신론자가 되었다.






나만의 무신론자 선언 후에도 나는 아주 오랫동안 기독교식 세뇌가 빠지지 않았다. 무신론자가 되고 몇 년 후, 나는 불교와 관련된 직장에 다녔던 적이 있다. 그 회사는 월요일마다 모여서 예불을 해야 했다. 그냥 무교이거나 불교 신자인 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예불하는 동안 절을 한다. 하지만 기독교 물이 단단히든 나는 십계명의 첫 번째 조항,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그 구절에 잠식당해서 절을 하는 행위가 두려웠다. 마치 큰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어 무서웠다. 나는 그냥 불상 앞에서 절을 했다. 그 누구도 괴롭히지 않았고, 그 누구의 기분도 상하게 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버린 하나님의 심기를 상하게 했을 뿐이다. 신의 존재를 수백 번 부정하면서도, 그에 반하는 행위는 왜 두려웠을까? 살아오는 동안 강요당했던 죄악이었기 때문일까?




우리 인간에게 종교의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믿는 참된 도리는 기독교가 정한 것들이 많다. 조지프 헨릭의 <위어드>에서는 일부일처제, 근친상간처벌 등 현재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기독교가 만들어 낸 제도라고 한다. 현대인의 가장 많은 가족 형태인 핵가족도 기독교에서 시작된 가족 형태이다. 종교는 이렇듯 우리 심리, 사회 규범, 도덕관념 등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들이 정말 옳은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말했다. 나의 신도 죽었다. 신이 없다는 표현보다는 죽었다는 표현이 맞다. 나에게 아직 신의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신이 삶의 의미이자 구원이라는 믿음은 죽었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오직 나의 행동이다.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불평등과 불행은 왜 존재하는가? 이러한 의문은 왜 회피해야 하는가? 신의 가치가 무엇이길래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뛰어넘는 것인가? 종교는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세뇌하고 다루고 싶었던 도구에 불과하다. 권력자는 신의 종이란 타이틀을 무기로 자신들의 원하는 방식으로 세뇌를 일삼았다. 우리가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그 세뇌는 사라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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