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행동의 시작점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면 단단한 사람, 멘탈이 강한 사람,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러한 단어들이 나를 따라다닌다. 특별히 무엇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물어본다면 고민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나요!”
인간은 살면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만난다. 부모, 형제자매, 친구,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사랑을 한다. 사랑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랑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랑인가? 사랑을 떠올리면 여러 가지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결국 누굴 사랑하는가가 사랑의 형태를 결정짓는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의 기본 요소를 언급한다. 사랑의 요소는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이 있다. 보호는 모성애처럼 자연스럽게 대상을 지키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책임은 누군가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동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상대에게 응답할 수 있고, 응답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이다. 존경은 상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고, 상대의 개성을 존중하는 행동이다. 존경도 책임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지식은 상대를 ‘나’의 관점이 아니라 ‘상대’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즉, 상대에 대한 파악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사랑의 요소들은 상호 의존한다.
사랑의 요소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은 누구인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바로 자기애이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상대를 보호하고 책임지고 존경하고 알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전에는 그 어떤 것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었다. 나 자신에게 자신감이 부족해 항시 남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 느끼면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럴수록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소심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소극적이고 소심했다. 그렇게 나를 정의 내렸고, 그럴수록 나는 작아졌다. 나는 생각이 많았지만 그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타인에게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당당하고, 할 말을 다 하는 사람이 되었다. 계기가 될 만한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먼저 신경 쓰기 시작하고 난 이후의 변화였다. 나를 먼저 신경 쓰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다. 당연한 권리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나를 보호하고, 나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사랑할수록 나는 상대도 보호하고, 상대에 대한 자발적인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될수록, 타인의 인생에서 타인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깨우쳤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래서 그만큼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을 존중한다. 즉, 사랑의 요소 중 존경의 형태가 발현된다. 그러면서 타인을 더 잘 이해하고,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지며 산다. 나는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은 곧 정말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그만큼 나는 노력한다. 노력하기 위해 나를 다그친다. 그 다그침은 타인과 나를 경쟁상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경쟁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발전하는 나를 인지할수록 나는 나를 더 사랑하게 된다. 그렇다고 실패하는 나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실패는 좋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준다. 그러니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데 첫 단추가 된다.
나는 하루를 꽉 채워 살고 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사는 내가 좋다.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고 사는 내가 멋있다. 내가 멋있고 사랑스러울수록 나는 더 노력한다. 더 열심히 행동한다. 그러니 모든 것의 원동력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