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과 살아가기
처음 강아지와 가족이 되고, 처음 그 가족을 잃었다. 다시는 강아지와 살 자신이 없었다. 강아지의 존재는 나의 행복이자 삶의 원동력이지만, 강아지의 부재는 내 인생의 색채를 빼앗긴 것처럼 외롭고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사실 다른 강아지를 키울 생각을 처음부터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이 매일 울고 집에 있기 힘들어하는 시간이 반복되고 무엇으로도 그 부재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헛헛한 마음에 유기 동물을 위한 플랫폼들을 돌려보며 그들의 사연을 읽어보았다.
시설에서 보호하고 있는 강아지들 중 귀엽거나 품종이 있는 아이들은 일찍 입양 문의가 들어온다. 하지만 믹스견 아이들이나 몸집이 크고 나이가 많은 친구들은 입양되지 못하고 그대로 안락사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의해 강아지들을 무한정 태어나게 해 놓고, 그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오래전 강아지 공장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은 혹시 내가 강아지를 또다시 만나게 된다면 유기된 아이들 중에서 만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뜻하지 않은 꼬비의 부재로 나는 그 결심을 떠올리게 된다. 꼬비의 대용품으로 여길까 두려웠던 마음도 있었지만, 그 마음이 시작이더라도 새로운 반려견에게 진심을 가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러다 만난 아이가 바로 루이다. 루이의 사진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를 끌림을 느꼈다. 루이가 구조된 사연은 우리 가족을 울렸다. 루이는 생후 1개월 불법 판매업자에게 끌려가서 매일 길거리에서 판매를 위해 전시되던 아이다.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본 동네 할머니에 의해 3만 원으로 구조되었지만, 불법 판매업자는 할머니에게 돈을 더 달라며 루이를 빼앗아갔다. 형편이 어려웠던 할머니는 루이를 그렇게 뺏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믹스견에게 큰 관심이 없었고 아이는 다시 방치되었다.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한 불법 판매업자는 루이를 길거리에 유기했고, 귀엽다고 데려가서 키우려던 사람도 돈이 많이 든다는 생각에 다시 유기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맨 처음 구조하고자 했던 할머니께서 다시 루이를 데려갔다. 이렇게 약 4개월 동안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며 방치되었던 루이는 구조된 그날, 굶주려 왔던 탓에 밥을 먹고 또 먹고, 먹고 또 먹고 했다고 한다. 이 공고를 보며 나는 바로 연락을 했고, 다음 날 루이는 우리 집으로 왔다. 이렇게 나는 한 번 더 강아지의 가족이 되었다.
루이가 처음 온 날은 잊히지 않는다. 5~6개월령의 강아지가 그렇듯 힘차고 발랄한 탓에 몸이 불편한 할머니는 루이를 묶어 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 만난 루이의 목에는 목줄이 걸려있었다. 그 목줄부터 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몸집이 더 작을 때 찼던 목줄은 이미 풀 수 없을 만큼 팽팽해서 끊어낼 수밖에 없었다. 목줄은 루이의 힘든 초년 시절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끊고 루이는 이제 다시 태어났다고!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고급스러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루이는 시고르자브종답게 한쪽 귀는 세워져 있고, 한쪽 귀는 접혀 있었다. 그 귀가 너무 특별하고 귀여웠다. 루이는 웰시코기의 생김새를 닮았다. 얼굴이 크고 다리가 짧고 엉덩이가 통통했다. 그래서 그런지 불법 판매업자는 루이의 꼬리를 잘라 놓았다. 그 꼬리를 보면 아직까지도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성격은 아픔이 있는 유기견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애교가 많고 사랑스러웠다. 근데 그 모습조차 사랑받기 위해 생긴 특징 같아서 속상하기도 했다. 꼬비는 아기 때부터 우리와 가족이 되어서 큰 고생은 하지 않았다. 꼬비는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워서 사랑받기 위한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고 오히려 새침했다. 그런데 고생만 하던 루이는 오히려 애교가 철철 흘러넘쳤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에서 강아지는 살아남기 위해 다정한 성향으로 진화를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가? 루이는 정말 다정한 아이다. 우리 가족은 루이에게 모두 루며들었다.
루이는 참 말괄량이다. 온 집을 헤집고 다니고 틈만 다면 모든 것을 물어뜯어 놓았다. 꼬비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이라 우리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그 모든 행동도 사실은 불안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강아지에게 4개월은 인간의 그것과 같지 않다. 강아지 평생에 정말 큰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학대를 당해왔던 아이가 치는 사고는 화가 나는 것보다는 안쓰러웠다.
루이에게 따뜻함을 주고 싶었는데 이 작은 아이는 나와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해 준다. 내가 주는 사랑보다 훨씬 큰 사랑을 나에게 준다. 루이의 눈을 보고 있으면 맹목적인 사랑이 느껴져서 마음이 이상하다. 그 마음을 내 평생 보답할 수 있을까?
강아지는 참 특별하다. 존재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존재만으로도 큰 기쁨이 된다. 어느새 옆에 와서 내 다리에 비비고 있는 강아지를 보면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순은 나에게는 행복만 존재한다.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따뜻한 위로이자, 행복이다. <행복의 기원>에서는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강아지는 나의 빈도 높은 행복이다. 나는 신은 믿지 않지만 강아지는 믿는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사랑은 신의 그것보다 더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