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를 읽고
소설을 읽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마지막까지 보고 나서 가장 슬픈 것은 그 주인공들과 이별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의 서사와 감정에 깊게 빠져들면 그들의 행복을 바라게 된다. 그들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 이야기를 읽는 동안만큼은 나와 제일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요, 그들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며, 그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인 양 나의 감정이 끊임없이 요동친다. 그렇게 모든 감정을 공유했던 상대가 엔딩과 함께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리면 나는 끝없는 상실감에 빠졌다. 어린 나는 그래왔다.
나이가 들어 소설, 영화, 드라마 속 주인공과 헤어질 때 더 이상 어린 나처럼 서러워하지 않는다. 또 다른 이야기로 또 다른 도파민을 찾아 헤매기만 한다. 그들과 헤어지는 그 순간에는 잠시 고통이 스미지만, 잠깐의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린다. 어린 나는 그들의 삶을 내 삶처럼 여겼다면, 지금의 나는 주인공들의 삶을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를 했으니 사라지면 잠시 공허하지만, 또 다른 소비할 것을 찾아 떠나버린다. 엄청난 명작을 읽어도 그 여운은 예전만큼 길게 가져가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들의 삶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스토너>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의 주인공은 큰 특징이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에게 그 어떤 도파민도 선물하지 않았다. 초반에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한 선택을 할 때 잠시 느꼈던 웅장함을 제외한다면, 윌리엄은 자신의 앞에 놓은 선택지에서 항상 소극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선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인공의 특별함이 하나도 없다. <스토너>는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용기 있고 결단력 있는 멋진 사람일 것이라는 통념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주인공에게 답답한 감정까지 생겨난다.
윌리엄 스토너는 나의 찌질함과 지나치게 닮았다. 우리는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주인공들처럼 멋지고 용기 있게 앞장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맞서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현실의 나는 정말 현실에 순응하고 사는 사람이다.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에게 억울한 상황이 발생해도 그냥 그렇게 넘긴다. 맞서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나서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렇게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어떨 때는 그 보다 내가 더 억울하다. 그런데도 나는 그가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그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을 때에도 원래라면 분노했을 내가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 한 사람쯤은 윌리엄을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를 통해 찌질해야만 하는 나를 만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게 현실의 나와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인내의 연속이지 않나? 윌리엄의 삶도 인내의 쳇바퀴 같아 보였다.
이 소설을 다 읽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자꾸 일상에서 그가 떠올랐다. 이상한 일이다. <스토너>를 읽으며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에 깊게 감동하지도 않았고, 그의 불행이 서글프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생각이 나는 것은 내 삶에 윌리엄을 이입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생각 없이 읽었던 그의 불행이 나의 불행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이 나의 선택과 닮았다. 나는 그렇게 나의 찌질함을 윌리엄을 통해서 위로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토너>의 주인공은 다시 나를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가져다 놓을 수 있게 해 준다. 윌리엄은 비범하지도 못하고 영웅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의연한 그의 모습에서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비범하지 않고, 모든 불의 앞에서 정의로울 수 없다. 내 인생에 한순간을 놓고 보면 찌질할 수 있지만, 모든 순간을 나열해 놓는다면 하나의 커다란 서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