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향연>, 그리고 신형철 <인생의 역사>를 읽고
플라톤의 <향연>은 에로스에 대한 예찬이 나온다. 사랑에 대한 각자의 관점을 에로스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들 생각과 전혀 다른 주장을 한다. 어떤 것을 간절히 원하고 사랑하면 그건 자기가 그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한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가진 정의로운 생각들에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동의를 했지만, 이 주장은 모순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크라테스 관점에 따르면 내가 결핍된 부분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즉, 누군가를 좋아할 때 내가 결핍된 부분을 가진 사람을 좋아할 거란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다. 나는 이 의견에는 반박을 100가지 이상 댈 수 있을 정도로 공감하지 못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이 주제를 가지고 생각이 정 반대였던 분과 논쟁을 펼쳤다. 그분의 주장은 결핍은 나쁜 것이 아니고, 결핍을 채워줄 누군가를 만나면 비로소 내 결핍을 자연스럽게 채우지 않겠냐는 거였다. 나는 그분의 주장에 결핍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결핍을 누군가로 꼭 채워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내가 가진 결핍을 많이 갖춘 사람을 좋아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분은 또다시 그건 나의 착각이며 본능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결핍에 끌리게 된다고 말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럴 수 있으나 그게 온전한 사랑을 만들 수는 없다고 답했다. 세상에 나의 결핍을 똑바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사랑을 한다는 것조차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결핍을 갖춘 상대라는 것이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 분과 나의 의견은 좀처럼 합쳐지지 않고 평행선을 내달렸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시작은 나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안달 나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과의 결합이 서로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향연>에서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를 탁월함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훌륭한 일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즉, 위선을 행한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주장에 완벽히 동의한다. 누군가를 의식해서 본능을 거스르고 계속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결국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보일 수 있다. 그러니 나에게 선함을 이끌어내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에서는 ‘사랑의 발명’이란 시를 소개하며 무신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한다. 신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결핍이 가득한 인간을 만나면 누구도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에 빠진다고 한다. 내내 그 사람이 저러다 죽을까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하다가 이내 나라도 그를 챙겨줘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 그게 사랑의 발명이라고 말한다. 나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하는 해석이다. 나의 결핍만 생각하느라 결핍은 절대 사랑이 될 수 없다고 확언했던 나에게 그 발언을 수습하게 했다. 결핍도 사랑이 될 수 있다. 그 결핍을 가진 자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일 때!
나의 주변 친구들은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의 이유로 결핍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결핍이 인간관계를 맺을 때 드러나는 나쁜 속성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변인이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힘들어할 때면 각자의 가정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친구들의 결핍이 단 한 번도 불쾌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결핍을 마주할 때면 속상하고 슬펐다. 그 심정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얼마나 많은 고통의 순간을 지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쓰렸다. 그래서 나라도 그 결핍을 잠시 잊게 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들이 필요할 때 달려 나갔다. 따뜻한 말은 못 해도 옆에 있어주는 건 나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상대의 결핍을 내 것처럼 아파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나의 사랑의 시작점과도 결이 맞다. 결핍을 가진 상대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나의 존재를 통해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나의 마음은 나의 선한 행동을 유발한다. 나만 위하는 나의 이기적 유전자를 잠시 잊고, 상대의 곁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상대의 결핍은 나를 성장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나의 결핍을 채우려고 하는 것은 이기적인 본능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상대의 결핍을 채워주고 싶어 하는 이 마음은 본능을 거슬러 이미 상대에게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결핍이 나로 인해 채워질 수는 없어도 나로 인해 위로가 된다면 나는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