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터 아이작슨 - 스티브 잡스를 읽고
고백하자면 나는 애플 제품을 다수 소유하고 있다. 아이폰, 에어팟, 애플워치, 아이패드, 맥북 등을 1N 년 이상 사용하고 있다. 한 사업가의 일대기를 읽는 것을 즐기진 않지만 스티브 잡스의 책은 궁금했다. 내가 도대체 뭐에 홀려 이토록 많은 애플 제품을 쓰는 건지도 궁금했고, 이런 제품을 만들어 낸 그의 인생과 머리 속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는데, 초반을 읽을 때 아이폰을 버릴까 고민했다. 그의 성질머리가 너무 더러워서 내가 이 사람이 만든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고민까지 왔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는 내가 왜 애플 제품을 홀린 듯이 사 모았는지 이해가 됐다.
애플은 사피엔스 역사상 한 획을 그은 기업이다. 애플과 아이폰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스마트한 세상은 아직 안 왔거나, 더 늦게 왔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티브 잡스를 멋진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에게는 고집불통의 현실왜곡장으로 가득한, 내가 생각한 멋진 리더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모르고, 자기가 선택한 답으로만 기억하는 그런 사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실망했다. 왜 자기 자식을 부인하고 모욕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훗날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라고 했지만 잡스의 그런 모습은 결코 좋은 사람처럼 볼 수 없었다.
나는 잡스에게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아이폰 같은 멋진 제품을 만들었을까? 그 점을 정말 알고 싶고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내가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타고난 사업가 그 자체였다. 그에게는 아이폰 같은 제품이 눈앞에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확신을 가지고 모두가 안된다고 할 때 된다고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독불장군 같은 모습에 얄밉다가도 그의 확신은 애플 전 직원들에게 신뢰로 이어졌을 것이다. 일반적인 인간에 불과한 나는 할 수 없는 어찌 보면 똘끼 가득한 믿음이 애플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디자인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가 가진 디자인에 대한 감각은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타고난 부분인 것 같다. 그가 주장하는 디자인은 논리적 근거로 과학적인 굴곡을 가지고 만든 것들이 아니다. 그냥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직관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강조하고 내가 좋아하는 둥근 모서리의 사각형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준다. 그 매력에 빠지면 애플 제품에 대한 구매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잡스가 주장하는 디자인 요소 중 가장 핵심은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내가 애플 제품에 빠진 이유도 결국 단순함으로 가장 큰 정교함을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잡스는 디자인에 집착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그는 아파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본인이 써야 할 의료 마스크가 못생겼다고 타박하며 안 쓰겠다고 한다. 기운도 없으면서 의료 기기에 대한 디자인 조언을 참지 않았다. 계속 그를 미워하면서 보다가 이렇게 디자인에 집착하는 그를 보며 사실 질리면서도 미운 정까지 들었다. 어떻게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도 똑같을 수 있을까? 이런 집착은 그를 성공하게 하는데 가장 큰 힘으로 작용했다.
애플 제품의 매력은 잡스가 주장한 과학기술을 인문학과 결합에서 나온다. 보통은 과학과 인문학은 전혀 다른 분야도 다루게 되는데 잡스는 그 두 분야가 근본적으로 하나라고 생각하며 제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칼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에서도 과학에 대한 내용을 인문학적으로 서술해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코스모스> 뿐 아니라 많은 베스트셀러 저서들이 그 두 분야를 따로 보지 않고 하나로 엮는다. 인간을 매혹시키는 것은 과학기술도 인문학도 아니다. 그 두 분야의 결합이다. 잡스는 그 생각으로 제품을 기획하고 성공시켰다.
그의 제품들은 굉장히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이다. 그 누구도 손바닥만 한 기계에 손가락만 사용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의 성격은 굉장히 보수적이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두 가지 모두를 손에 거머쥐고 놓지 않았다. 본인이 만든 소프트웨어는 본인이 만든 하드웨어에서만 구동할 수 있도록 굉장히 폐쇄적으로 접근했다. 첫 단추도 본인이 끼워 넣고 마지막 단추도 본인 손으로 채워야 하는 end to end 방식을 고수한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그의 성향은 굉장히 보수적인 시스템을 만들었다. 보수적이며 동시에 진보적인 사람. 나는 보수와 진보를 이렇게 조화롭게 사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전혀 다른 것을 하나로 합치는 그의 집착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성공에는 다양한 조건들이 있을 것이다. 보통은 성공한 사람들의 장점을 언급하고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잡스의 장점과 단점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 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잡스의 성공 비결은 하나도 획득하지 못했다. 다만, 어떤 것을 향한 무서운 집념이 결국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교훈은 얻었다. 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더 위로 향할 수 있는 집념과 나를 향한 확신이 성공의 기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