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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part.1

안나

by 초이

톨스토이란 작가는 꼬꼬마 시절부터 들어봤던 이름이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도 종종 보았던 유명 작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되면서 [안나 카레니나]를 언젠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안나 카레니나]의 가장 유명한 첫 문장 번역 비교글을 보고 홀린 듯이 책을 사버렸다. 그렇게 구매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책을 펼쳤고, 고급 포장지를 낀 막장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기분으로 읽게 되었다. 처음 읽을 때 느꼈던 감정은 뜻밖에도 톨스토이 자웅동체설이다. 여자로 살아보았나 싶을 정도로 절절한 여자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머리로는 꼬임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마음은 만족감에 떨려 하는 안나의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 전달해 준다. 톨스토이는 잘생긴 남자의 꼬임에 넘어갈 것 같은 유부녀로 살아본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그의 성별에 대한 의문을 품으며 1,600쪽이 넘는 책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나는 모임에서 발제를 할 테니 다들 읽으라며 6개월 이상을 홍보하고 다녔다. 그렇게 올해 1월 발제할 날을 정했다.


읽은 지 약 반년이 지났기에 [안나 카레니나] 재독을 시작했다. 다른 두꺼운 고전 책 모임을 진행해야 했기에 시간에 쫓겨서 읽어서 그런가. 지난번보다 몰입감이 더 좋았다. 첫 번째는 안나의 감정에 휘몰아쳐서 같은 감정을 느끼며 보았다면, 이번에는 안나와 떨어져서 오히려 안나의 행동에 의문을 품으며 읽었다. 단지 6개월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도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과 결합되어 새로운 세계가 열린듯했다. 그 사이 도스토옙스키 책도 읽었기에 그와 비교하면서 읽게 되는 재미도 있었다.



안나는 참으로 안타까운 인물이다. 20살 많은 카레닌과 세료자를 낳고 카레닌의 아내이자 세료자의 엄마로 살아왔다. 그러다 오블론스키의 부름으로 모스크바로 넘어가서 매력적인 브론스키를 만나게 된다. 안나의 매력에 넘어간 브론스키는 계속해서 안나가 혼란을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 카레닌의 무심함을 무심함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안나에게 자상한 브론스키가 얼마나 달콤했을까? 그의 꼬임에 넘어가 사랑에 빠진 것은 안나의 탓이라고 할 수 없다. 성인이 되기 전에, 사랑이란 감정을 알기도 전에 아내가 되어버린 안나에게 불가항력의 순간이 아닌가? 나는 안나의 잘못이 불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브론스키와 살게 되며 자신의 자아를 버리고 브론스키에게 맹목적으로 매달린 것, 그것이 안나의 가장 큰 죄다.



안나는 왜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는가? 안나가 자신을 사랑하기만 했다면 브론스키에게 집착하지도 않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비참해 망가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안나는 왜 카레닌, 세료자, 브론스키가 아닌 안나로 살아내지 못했을까? 당시 모든 여자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오블론스키가 바람을 폈어도 그를 떠나서 살 수 없던 돌리도, 바람은 함께 폈는데 사교계에서 혼자만 낙인찍힌 안나도. 당시 여성은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생긴 비극이지 않나. 안나가 지금 시대로 다시 태어나면 안나 본인으로 당당히 살아 그런 결말을 맞지 않을 거라 생각해본다.



이 소설에는 안나말고도 여러 인물이 나오는데 가장 바람직한 인물은 키티라고 묘사된다. 톨스토이는 키티를 통해 성장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그 성장은 정말 바람직한가 하면 사실 의문이다. 당시 톨스토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그 인물을 보면 알 수 있다. 톨스토이는 아마도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가정적이고 헌신하는 여성을 그리는 것 같다. 키티는 레빈이 괴로워할 때마다 그를 위로해 주고 사랑으로 감싸준다. 그리고 돈 씀씀이를 걱정하고, 아픈 가족을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한다. 그 모습은 물론 어리기만 했던 키티가 매력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이라고는 생각한다. 다만, 키티 본인을 위한 일인가 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본연의 천진난만한 키티가 더 귀엽고 사랑스러우니 말이다.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안나가 아니라 키티와 레빈이다. 그들은 결국 성장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톨스토이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 책의 등장인물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안나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모든 이들의 마음에 안나가 이해는 안 될지언정 그녀를 모질게 내치지 못할 만큼의 안쓰러움이 생긴다. 그래서 그녀의 잘못이 명확함에도 그녀의 죽음을 애도한다. 소설 속에서는 그녀의 죽음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끝나지만 독자의 마음에는 그 죽음의 순간에 손을 내밀어주고 싶은 애정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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