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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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원래는 헬스장도 가고 이것저것 계획은 많았지만 짐을 싸야 할 게 너무나도 많았기에 아쉽지만 모두 포기했다. 많이 산 내 탓이지 어쩌겠는가. 그래도 조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것저것 먹어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니까. 이 호텔 후기에 조식은 비추후기가 많았는데 나는 나름대로 만족했다. 조식은 원래 지나치게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평균 정도의 괜찮은 음식이 많이 있는 것이 매력이니까. 그렇게 배가 터질 때까지 위장에 차곡차곡 쟁여놓고 올라갔다.
본격적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나는 짐 싸기의 달인이다. 여행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유럽여행 때 툭하면 이동을 하느라 매일 저녁 짐을 싸는 것에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그때의 실력으로 짐 테트리스에는 매우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다른 친구들이나 엄마도 나의 짐 싸는 실력에 깜짝 놀라곤 했다. 나의 꿀팁을 공유하자면 면세로 산 것들에서 에어캡은 꼭 챙겨놨다가 내가 산 물건 중에 깨질 위험이 높은 물건을 박박 감아서 보관한다. 큰 포장들은 다 뜯어서 버리고 옷 사이사이에 넣어서 보관해도 괜찮다. 그렇게 짐 테트리스를 다 하니까 동생은 아직 멀었다. 그래도 동생이 브랜든에서 산 압축 파우치를 하나 대여해 줘서 더 편리하게 짐을 줄일 수 있었다. 타이항공은 인천으로 돌아갈 때 위탁수화물 무게 제한이 30kg였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지만, 캐리어 자체가 그리 크지 않은 것과 왠지 30kg까지도 넘을 것 같은 압박감에 일부 과자는 기내수화물용 가방에 담았다. 나중에 재보니 26kg이라 다행이긴 했지만 참 나도 한결같은 쇼핑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고치냐고 이 쇼핑 습관.
짐을 맡기고 또 쇼핑을 하러 갔다. 사실 무언가를 사러 갔다기보다는 구경하러 갔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물건을 사고 싶은 자아와 집에 놓을 때가 없는 자취러의 자아가 계속 싸우고 있었다. 복싱이 취미인 인간이자 코끼리를 사랑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무에타이 착장을 한 코끼리를 보면 군침이 흘렀다. 인형을 살까 하다가 겨우 이 마음을 접고 산 것은 무에타이 착장의 코끼리가 그려진 에코백 하나를 구입했다. 아주 귀엽고 좋았다. 원래는 태방이를 사러 갔는데 작은 태방이(일명 소방이)를 사고 싶었는데 큰 태방이(일명 대방이) 밖에 없어서 고민하다가 대방이는 사치인 것 같아서 눈물을 머금고 내려놨다. 태방이가 입소문이 나서 중국 여행객이 쓸어간다고 한다. 이거 사러 방콕 왔는데 포기하게 되어 눈물이 났지만 나는 너무 다 큰 어른이니까 얼른 집어넣었다.
구경을 하다가 배고파서 뭐 먹을지 고민하다가 램자런을 가기로 했다. 램자런에 대표 음식은 농어튀김인데 궁금하기도 하고 맛있게 생겨서 주문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볶음밥과 함께 농어튀김을 먹으면 방콕에 온 이유가 이거로 바뀌기도 한다. 태방이가 아니라 농어튀김 먹으러 온 방콕이 되어버린 것이다. 함께 시킨 마지막 땡모반도 매우 맛있었다. 수박도 안 좋아하고 과일주스도 안 먹는 내가 왜 땡모반은 맛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방콕에 가면 수박 귀신이 빙의된 기분이다. 배가 터질 만큼 넣어준다. 동생은 방콕에서 많은 음식을 못 먹어서 아쉽다고 했다. 나도 방콕을 많이 못 즐긴 것 같아서 아쉬웠다. 나름대로 5일씩이나 잡아서 온 여행인데 5일도 짧다. 한 달 동안 살고 싶지만 그러기엔 시간도 없고 돈도 없는 직장인 인생이다. 언젠가 더 부자가 되면 더 길게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번에 많은 것을 털어서 캐리어를 꽉 채웠으면서도 아직 부족했던 우리는 빅C 마트를 한 번 더 돌기로 했다. 그 와중에 동생은 쇼핑리스트를 재 점검하여 더 필요한 물건을 챙겼다. 나보다 훨씬 계획적인 친구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게 맞나 싶지만 기가 막히게 싫어하는 음식이 똑같아서 놀라운 유전자의 신비. 그렇게 마지막까지 박박 털고 차마 못 산 것들에 아쉬워하면서 또 방콕 재방문을 다짐했다.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찾고 공항으로 갔다. 왜 이렇게 아쉬운지 모르겠다. 한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못한 것도 참 많다. 공항도로를 달리면서 못 가본 것들에 미련을 풀풀 남겨본다.
공항에서 수화물 무게를 재보고 정신을 차린다. 나는 더 사면 캐리어도 부시고 나도 부서질 것이다. 이제 그만 사도록 해야겠다. 수화물을 보내고 공항 안쪽으로 들어왔다. 마지막 쇼핑 성지가 남지 않았는가. 그것은 바로 면세점이다. 엄마를 사주고 싶었던 짐톤슨 머플러를 드디어 샀다. 가격은 백화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을 아까 못 산 태방이, 태방이는 원래 방콕 시암 파라곤에만 판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면세점에서 샀다는 딱 1개의 후기를 찾았다. 나는 믿지 않았는데 거기 댓글에 덕분에 자신도 샀다는 후기를 남겼다. 도합 2개의 후기를 믿고 면세점을 이 잡듯이 뒤졌다. 있을 것 같은 곳에 가도 짭태방이들만 있었다. 그렇게 지쳐서 다리가 너덜거릴 쯤에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곳에 헬스 앤 뷰티라는 간판이 달려있는 곳에 진짜로 태방이가 있었다. 사고 싶던 미니 사이즈나 소방이는 없었지만 중방이와 대방이가 있었다. 중방이는 꽤나 여러 마리가 있었고 시암 파라곤에는 엄청 많이 전시되어 있던 대방이가 딱 한 마리 남아있었다. 대방이는 안 살 거라 다짐했던 자아는 중방이를 품에 안고 고민에 빠졌다. 한 마리만 있는 대방이 이 녀석 왠지 나랑 운명 같았다. 대방이 눈이 나에게 데려가라고 말했다. 나는 귀여운 것들에 매우 약했기에 중방이와 대방이를 모두 품에 안아 들었다. 동생도 중방이를 하나 품에 안았다. 그렇게 우리는 태방이를 면세점에서 찾은 무용담이 너무 뿌듯해서 들떴다. 소방이까지 찾으려고 더 돌아다녔지만 헛수고기는 했다. 그래도 신나서 돌아다니고 동생은 친구를 준다며 다른 코끼리 인형(일명 미나)을 하나 샀는데 계산해 주던 직원이 빨리 게이트로 가라고 했다. 우리는 비행기 게이트 오픈 시간까지 박박 돌아다니고 잠시도 안 앉고 화장실만 갔다가 비행기에 탑승하게 되었다. 그래 비행기에서 계속 앉아있을 텐데 돌아다니면 잠도 잘 오고 좋지 않나. 휴식과 맞바꾼 태방이들은 내 소파 위에 나란히 앉아있는데 그들을 볼 때마다 행복하니 기분이 좋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비행기에선 타자마자 동시에 잠이 들었다. 매우 바쁘게 돌아다녀서 열심히 받아둔 영상은 고대로 삭제를 했다. 의미 없는 일이었다. 밥 먹으라고 깨울 때 빼고는 진짜 하염없이 자서, 6시간 비행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편안한 비행이었다. 타이항공 최고!
이번 여행은 태국을 처음 가본 여행이었는데 태국 정말 좋았다. 가까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동남아 중에서는 쾌적한 편에 속하기도 하고 음식도 다 맛있게 먹었다. 볼 것도 많고 살 것도 많은 여행지라 나중에 친구들과도 또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물론 쇼퍼홀릭 우리 엄마도 좋아할 여행지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이 참으로 힘든 시기에 간 여행이었는데 현실의 고통을 다 잊고 돌아올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에게 여행이란 가기 전에는 간다는 자체에 설렘을 느낄 수 있어서 좋고, 가서는 새로운 것들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다녀와서는 그 추억을 팔면서 행복했던 그 시간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10년 전에 갔던 여행지를 생각하면 행복했던 그 시간으로 아직도 되돌아갈 수 있다. 여행이란 그 기억만으로도 힘을 얻는다. 그러니 앞으로 열심히 돈을 벌어서 또 여행을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