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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여행기 본편- (3-2)

무에타이 고수와 단독 수업하게 된 사연

by 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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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차라 무에타이 체육관 > 빅C마트 > 호텔

무에타이 체육관 앞은 굉장히 주유소 같은 이미지였다. 선뜻 들어가기 어려운데 마침 어떤 아주머니께서 불을 켜고 에어컨을 켜고 있어서 들어갔다. 나를 힐끔 보시곤 다시 볼 일을 보러 나가시고 나는 체육관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오히려 잘됐다고 카메라를 켜서 맘껏 찍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거의 다 되어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한 남자분이 들어왔다. 예상대로 그분이 나의 1일 스승님이었다. 나에게 스트랩을 내밀었지만 나는 이미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무에타이를 해봤냐고 물었고 나는 킥복싱을 깔짝대고 있다고 순순히 고백했다. 그때까지도 아무도 안 와서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냐고 물었다. 응 없어. 너뿐이야. 이렇게 대답했다. 이 수업은 단체수업이라 $13.65에 예약을 했다. 다른 후기를 봤을 때 8명 정도는 항상 있길래 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당황스러웠다. 원래 한 명만 예약하면 취소가 되기는 하는데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천사처럼 보였다.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내가 사우스 포(왼손잡이)라고 고백을 하면서 몸을 풀었다. 친히 몸 푸는 방법도 알려주며 같이 풀었다. 킥복싱할 때는 쳐다도 보지 않는 줄넘기도 시켜서 울면서 했다. 할 말은 다 하는 성격이라 굳이 덧붙여 말했다. 나 줄넘기 싫어한다고.

킥복싱과 무에타이는 비슷한 동작이 많지만 세세하게 들어가면 많이 달랐다. 특히 가장 기본이 되는 가드 자세부터 지적을 했다.(복싱은 가드를 딱 붙이고 하는 편이면 무에타이는 킥을 많이 쓰기 때문에 얼굴과 팔 사이에 간격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킥복싱에서 배우긴 했지만 자주 쓰지 않던 엘보 기술을 계속 알려주셨다. 업 엘보, 사이드 엘보, 백스핀 엘보 등 다양한 엘보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킥을 계속 시켰다. 수업이 끝나고 보니 다리가 너덜너덜해지고 멍이 많이 들었다. 그 정도로 많이 시키는 편이다. 기본 동작을 익히고 본인이 미트 도구를 착용하는 동안 나보고 샌드백을 치라고 하더니 자세를 보고 또 지적을 했다. 나름대로 킥복싱 2년 차인데.. 명예가 실추됐다. 명예 회복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몸을 풀었다.


드디어 난생처음 링 위로 올라갔다. 우리 체육관은 링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역사적 순간이다. 링 위에서 드디어 미트를 쳐주기 시작했다. 기본 동작은 나름대로 잘 소화하는 편이지만 무에타이 스텝을 밟은 부분의 영상을 보니 완전 갓 태어난 기린보다 못 걸었다. 특히 가운데를 명중해야 하는 푸시킥은 엉망진창이다. 나 혼자 샌드백을 찰 때는 잘 됐는데 선생님과 동시에 하려니 엉망진창 난리난리 자세가 나왔다. 선생님 눈에 당연히 차지 않는 그 동작에 무한 피드백을 들으며 미트를 이어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단체 수업이니 미트를 돌아가면서 칠 테지만 나는 정말 킥복싱 일주일 이상 가는 것보다 더 긴 미트 지옥을 맛봤다. 다행히 체력은 좋은 편이라 한을 푸는 사람처럼 미트를 진행했다. 중간에 갑자기 어마어마한 태국풍 노래를 틀어주며 파워 미트를 쳐주시는데 너무 신났다. 나 이런 거 좋아하나 봐.. 사실 심박수 폭등하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온몸에서 도파민이 흘러넘쳤다. 이 수업을 예약할 때 후기를 보니 클래스를 듣는 사람끼리 스파링을 시킨다고 했다. 나는 킥복싱을 하면서도 스파링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때리는 것도 맞는 것도 싫어서였다. 그래서 스파링은 안 한다고 우겨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왔다. 그런데 나와 스파링을 할 사람은 눈앞에 있는 왕 고수 선생님뿐이었다. 차라리 다행이지 않나 싶었다. 선생님은 잘 놀아주실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덥석 물었다. 그리고는 신나게 맞아가면서 열심히 따라다녔다. 나름대로 쨉쨉 거리면서 킥도 차대면서 졸졸 거리자 선생님도 나름 즐기는 것 같았다. 물론 전지적으로 내 생각 시점이기 때문에 아닐 수도 있다. 실력은 없지만 체력은 넘치는 1일 제자가 좀 지치셨는지 몇 번 진짜로 넘어뜨리기도 하셨다. 그래도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 녹화된 영상을 보니 내가 껄껄 웃으며 선생님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진짜 즐거웠나 보다.


그렇게 나만 신난 스파링을 마치고 끝난 줄 알고 스트랩을 풀어서 때려 넣는데 다시 와보라고 했다. 그러고는 미트를 집어와 킥을 20개씩만 쳐보자고 했다. 그렇게 다시 나머지 공부처럼 시작된 20개 킥은 무한 반복되었다. 이거 원래 지치면 잘 못하는 건데 지나치게 즐거웠던 나머지 에너지가 넘쳐서 나름대로 계속 따라갔다. 그러자 열정 스승님은 나에게 다시 엘보까지 시켰다. 그리고 아까는 알려주지 않은 백스핀 엘보까지 하사하셨다. 끝나기 10초 전에 일이다. 그렇게 열정 넘치는 티칭을 1대 1로 받는 행운. 오늘 택시로 망쳤던 기분을 하나도 남기지 않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

무에타이를 끝내고 가장 중요한 일정인 빅C마트를 가기로 했다. 동생과는 거기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고 혼잡했다. 미친놈처럼 운동을 하고 왔기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어 장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동생 눈치가 보여 괜찮은 척 돌아다녔다. 사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담으니 다시 체력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동생의 쇼핑리스트를 함께 염탐하며 나도 따라 구매했다. 가장 기대하는 과자인 쿤나 코코넛 초콜릿 과자, 매우 비싸지만 쓸어 담았다. 조금 사가면 후회할 거 같았다. 사고 나서 짐을 쌀 때는 왜 이렇게 많이 샀나 싶었지만 집에 오니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내내 생각이 들었다.


나와 동생은 둘이 왔어도 마치 엄마도 함께 온 것처럼 엄마 물건까지 꼭 3세트로 담았다. 또 다른 기대템인 하이진도 계속 담았다. 그래도 정리할 때 보니까 담았다고 생각한 것보다는 적어서 놀랐다. 홀스도 우리나라 보다 싸서 잔뜩 담고, 차트라뮤 밀크티도 담다 보니 카트가 가득 찼다. 계산을 했더니 한화로 38만 원 정도의 돈이 나왔는데 여행에서 마트를 처음 털어본 동생의 멘탈이 살짝 흔들렸다. 농담처럼 내가 캐리어에 안 담기겠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살짝 살벌해졌다. 그래도 택스리펀까지 야무지게 하고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또 택시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이 날은 택시가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날인가 보다. 택시 타고 돌아오면서 멘탈을 회복한 동생은 어차피 언제 또 올지 모른다며 사고 싶은 것을 다 사겠다고 다짐하면서 마음을 풀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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