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의 도전

어쩌다 주먹질?

by 초이

어릴 때 다닌 유치원은 태권도장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었다. 자연스럽게 태권도를 같이 배웠다. 겁이 너무 많아서 몸이 움츠러들기만 했던 그 시절에는 관장님이 박살 내주는 나무판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도 무서웠다. 유치원 졸업과 동시에 나에게 운동은 딴 세상 이야기일 뿐 내 세상에 가져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몸이 너무 뻣뻣하고 체력이 지나치게 부족해서 스스로를 저질체력이라 부르며 살았다. 여행이 취미가 되면서 그 체력의 한계는 이제 분노로 변했다. 이 체력으로는 여행을 할 수 없으니 당장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 운동 저 운동을 시작하며 나는 20대보다 30대에 더 체력 좋은 여성으로 성장했다.


복싱을 배우면서도 겁쟁이가 남아있기 때문에 대회나 스파링 얘기만 꺼내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복싱을 배우는 건 오직 취미일 뿐 대회에 나가서 성장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체력을 키우고 그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인데 재밌어서 계속하는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남들보다 덜떨어진 운동신경으로 코치님이 들고 있는 미트를 치는 것만이라도 다행인 수준이었다. 그렇게 복싱을 배우는 약 3년의 기간 동안 스파링은 남 일 같은 존재였다.


내 첫 스파링은 우습게도 태국의 무에타이 코치다. 여러 명이 참여하는 수업을 신청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은 덕에 1 대 1 수업을 듣게 된 행운을 누리니 스파링을 하자는 말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물론 코치님이 해주는 거니까 내가 다치지 않을 것 같은 강렬한 믿음도 있었다. 거의 내가 주먹질하는 걸 막아대는 수준이었으니 정식 스파링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렇게 한 번 해보고 나니까 의외로 엄청 재밌고 신났다. 그 후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미트를 치면서 스파링에 대한 즐거움은 깡그리 잊었다. 그러다 최근에 복싱 코치님이 본인을 때려보라고 하면서 막고 가볍게 나를 툭툭 치는 정도로 스파링을 교육시켜 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맞아주더니 이제는 내가 느끼기에 날카로운 공격까지 들어온다. 맞으면서 배우는 복싱은 생각보다 재밌고 무섭지 않았다. 그렇게 스파링에 대한 겁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체육관에 나보다 1년 정도 먼저 복싱을 배운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나보다 복싱을 훨씬 잘하는 친구다. 복싱에 대한 관심도도 높고 장비 욕심도 높고 무엇보다 자세가 엄청 좋다. 나보다 부족한 건 체급이 작은 것밖에 없는 친구. 그 친구가 점점 스파링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냈다. 사실 나랑 하는 것은 체급이 다르니 본인에게 매우 불리한데도 우리는 종종 서로를 향해 툭툭 주먹을 겨눴다. 그렇게 나는 홀린 듯이 마우스피스를 샀고 드디어 우리는 정식으로 스파링에 도전했다.


체급 차이는 생각보다 깡패다. 기술력이 훨씬 좋은 친구를 상대로 기본적인 기술만 써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정정당당한 게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그마저도 즐거워서 기회가 생기면 계속 스파링을 하기 시작했다. 체육관에 갈 때 아예 마우스피스를 지참해서 간다. 아직은 겁쟁이라 맞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 고개를 돌리는 나쁜 버릇이 있다. 무섭다는 생각은 사라졌는데 겁쟁이 본능이 아직까지는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겁쟁이를 깨고 언젠가는 주먹을 마주하며 요리조리 피하는 멋진 스파링을 하고 싶다. 현실은 아직 앞을 보기도 힘든 엉망진창의 모습이지만.


세상에 나만큼 심각한 겁쟁이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안전 불감증이 확실한 어린이 시절에도 남들이 펄쩍 뛰어내리던 그네에서 한 번도 뛰지 않았고 철봉에 매달려 빙빙 도는 것도 못해봤다. 생존 본능이 얼마나 강하면 어린이가 몸을 다 사렸을까 싶다. 10대, 20대에도 깨지 못했던 겁쟁이 본능을 30대가 훌쩍 넘은 지금 그 한계에 도전해 본다.

첫 스파링이었던 무에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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