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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감

#21 시아버지 작사, 며느리 작곡

by 비비안

예 감


남아있는 것들

두고 온 것들

보이려는 것들

허세 때문에

가슴 조이던 나날.

왜 모두들 그렇게 살았나


오랑캐꽃이 만발하였다

나비의 그리움은

겨울하늘을 훨훨

날아가는 일이지.


산이 너무 멀다

들녘 사막 어딘들

멀고 멀지 않으랴.


위험한 재능으로

긴장하며 올라간들

올곧은 사랑 없어라


삶에 대하여

추락에 대하여

여자에 대하여

자꾸 가벼워지자.



그 선명한 구름꽃들/ 이양복 시집/ 창조 문학사




짧은 거리 걸어서 가야 하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내렸다.


한 손에 우산을 한 손에 가방을 들고 축축이 젖은 보도블록을 걷다가 순간 미끄러졌다. 우산이 든 손으로 우산을 버리고 잽싸게 바닥을 짚었다. 미끄러진 다리를 접어 한쪽 무릎을 그대로 딱딱한 바닥에 콕 찍었다. 가방에서 쏟아진 물건들을 챙기고 우산을 챙기고 실내로 들어오니, 린넨 흰색바지를 뚫고 빨간 피가 솔솔 배어 나왔다. 그제야 바닥에 찍힌 무릎과 땅바닥을 짚은 손바닥이 모두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급하게 밴드로 무릎에 난 피상처를 틀어막고 회의에 들어갔다. 아플 겨를도 없이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오니 그제야 미끄져질때 철렁했던 순간이 밀려오며 내 마음도 일렁였다.


잘 입지 않던 흰색바지 그것도 피 얼룩이 살벌에게 번지는 마소재 린넨바지를 입었고

좀 전까지 해가 나더니 이동해야 하는 그 시간에 장대비가 그 순간 쏟아졌고

어쩜 이렇게 미끄러져 넘어지기 딱 좋은 날을 주셨을까...


요즘 너무나 평화로웠다. 모든 것이 질서 있게 돌아갔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밀려왔던 예감!


호루라기소리를 들은 기분이었다.

매사에 조심하라고,


딱밤을 콕 찍어 맞은 기분이었다.

매사에 겸손하라고,


알밤을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매사에 감사하라고,


바닥에 콕 찍혀 생긴 무릎팍의 상처가 딱지가 되어 다 나을 때까지...

되새겨야겠다.


이만하길 다행이지

알려주시니 다행이지

조심해야지 맘이 드니 다행이지


그런 예감이 들었다.




"시아버지 작사, 며느리작곡"은 영면하신 시아버님께서 남기신 시를 며느리인 제가 매주 수요일 새벽 5시에 브런치북으로 연재합니다.




오늘도 찾아와 글로 공감하여 주시는 글벗에게 감사드립니다


<비비안 연재>

일 5:00 AM : 나의 성장일지

월 5:00 AM : 직장인 vs 직업인

수 5:00 AM : 시아버지 작사, 며느리 작곡


사진 출처: 개인 소장

#겸손#감사#조심#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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