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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늄 그 혼으로

#22 시아버지 작사, 며느리 작곡

by 비비안

제라늄 그 혼으로


시야에 스며드는 한 떨기

붉은 혼으로 피어나

원시의 땅이 못내

그리울 터이다.


언제나 먼저 깨어서

발돋움하고

창 밖의 세상을 기웃거린다.


살며시 옆에 서면

초록빛 행복

떨리는 손.


이파리마다 열려 있는

꽃등불이 한 시절

그리 타오를 터이다.



그 선명한 구름꽃들/ 이양복 시집/ 창조 문학사






제라늄.png


우리 집 베란다 한자리에, 철이 되면 어김없이 붉은 꽃을 피우던 제라늄.
그저 익숙한 풍경이라 생각했는데, 오늘, 이 시를 보고서야 그 꽃의 이름이 ‘제라늄’이었음을 알았다.

오.늘.에서야!


그리고 그 시처럼, 아버님이 키우시던 제라늄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색으로, 향기로, 한 떨기 붉은 혼으로.


생전에 아버님은 맞벌이하는 아들, 며느리를 대신해 어머님과 함께 손주들을 돌봐주셨다.
그렇게 낮에 우리 집에 머무신 날이면 집안 곳곳에 아버님의 흔적이 남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베란다, 제멋대로 자란 화초를 다듬고, 분갈이하고, 제라늄에도 손길을 얹으셨다.

그 손길은 단순한 정리가 아니었다.


꽃을 돌보는 마음,
가족을 돌보는 사랑,
그 모든 것이 제라늄의 붉은 꽃잎에 스며 있었다.

지금도 베란다 한켠에서 그 꽃은 피어난다.

아버님의 손길처럼,
조용히, 따뜻하게,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색으로, 향기로, 한 떨기 붉은 혼으로.




"시아버지 작사, 며느리작곡"은 영면하신 시아버님께서 남기신 시를 며느리인 제가 매주 수요일 새벽 5시에 브런치북으로 연재합니다.




오늘도 찾아와 글로 공감하여 주시는 글벗에게 감사드립니다


<비비안 연재>

일 5:00 AM : 나의 성장일지

월 5:00 AM : 직장인 vs 직업인

수 5:00 AM : 시아버지 작사, 며느리 작곡


사진 출처: 개인 소장

#제라늄#화분갈이#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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