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신되는 인류애 상실과 내로남불

우리 정말 '어른'이 되어 가자구요

by dinguri

"나는 전국민적으로 도덕교육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갑작스레 진지해진 나의 톤에 친구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나는 굳은 의지를 선보이는 듯 다시 강조한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공공장소에서는 시끄럽게 굴면 안 된다!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한다!

당연한 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말을 늘어놓을 때마다 점점 목소리가 높아져간다.


요 근래 계속 강력하게 떠오르는 이 일명[전 국민 도덕 재교육 희망] 의견은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서 더욱 확실해져 가는 일종의 나의 사상이다.

니가 뭔데 스케일을 '전 국민'으로 잡고 맘대로 이래라저래라 하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작은 불씨 같았던 나의 작은 불만은 이제는 마음 한가득을 다 불 싸지를 만큼 커져있었다.






왜 사과를 안 하지?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일상적으로 받을 수 있는 사과가 뭘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이 필요한 때는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


길을 지나가다 상대방과 부딪혔을 때

나도 모르게 공공장소에서 목소리가 커지거나 큰소리를 낼 때

가벼운 정도의 무례를 저질렀을 때 (경중을 따지기 어렵지만 알아서 생각한다면)


이 정도의 상황에서 사과에 말을 전하는 것은 정말 지극히 상식적이다.

이건 물러날 수 없다. 상식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고 알 수 없는 상황 투성이었다.

매일 지하철 내에서는 갈대풀을 지나는 것 같은 무례한 밀고 당기기가 계속되고

남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당당했으며 (심지어는 화도 내기도 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기를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일상 속에서 들끓는 무분별한 분노만이 조용히 넘치는 듯했다. 최근에 이 분노는 모르는 사람들을 특정하는 것이 아닌 내 주변 지인,

심지어는 가족들에게도 점차 번지게 된 것이다.


대체 왜 사과들을 안 하십니까?






오랜만에 동창친구를 서울에서 보기로 했을 때였다.

친구가 약속시간이 늦은 지 30분이 넘어갈 즈음에 나는 점점 굳은 표정으로 홀로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막 40분이 지나갈 찰나 멀리서 어색한 표정으로 친구가 다가왔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거라 늦었다는 사실보다는 만난 반가움이 더 컸으나 미묘하게 작은 불만덩어리는 내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았고 그런 생각을 떨치고 싶었던 나는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지금이 몇 십니까~사장님~"


이런 식에 농담반 진담반 섞인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보통 두 가지이다.


1."미안해. 생각보다 차가 많이 막히더라. 많이 기다렸지?"

2."아~차가 너무 막혀서 진짜 답답하더라"


결국에는 차가 막혀서 늦었다는 점은 다르지 않지만 한 대답은 사과로 시작되고 다른 대답은 자신의 심정이 녹아있다. 글쎄 혹자들은 친구사이에서 미안하다는 감정을 일일이 말할 필요가 있느냐

약속시간에 맞춰 일찍 나왔어도 사정으로 늦은 건데 굳이 사과까지 해야 하느냐 언쟁까지 벌인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기다린 사람과 늦은 사람만 있을 뿐!

그 애매한 불편한 상황을 사과 한 마디로 녹아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요 돈 안 드는 관계적금이 아닌가? 뭐 아닌 사람들이 있다면 있겠지만 대부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친구는 1."미안해. 생각보다 차가 많이 막히더라. 많이 기다렸지?"을 택했고

나는 "너도 차 안에서 답답했겠다~"로 끝나는 행복 우정 사랑 결말을 맞이했다.


인간사는 복잡하지만 단순하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 클리셰 같은 말들은 항상 어려우면서

간단하게 우리의 관계를 관통한다. 참을 인 세번이면 살인을 면한다지만 그것은 나혼자만이 아닌 상대방의 진심어린 사과가 동반되어야만 이뤄지는 말이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단순한 두 가지 말을 적절하게 남발(?)하는 것만으로 세상은 좀 더 부드러워질 것이다.

물론 서로에게.







그래요 다들 힘들죠


뉴스만 틀면 나오는 경제의 어려움들, 세상 살기에 퍽퍽함만 늘어 다들 자기 밥그릇 챙기기 역력한 것이 마냥 잘못된 것이라고 말 못 하겠다. 내가 친절한다고 해서 상대도 친절하게 맞아주지 않고 내가 좀 더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처음 다짐하는 그 뜨거운 열정과 기세가 나날이 꺾이고 깎이고 굴러 굴러 덩그러니 내속에서 식어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남도 똑같이 힘들다는 사실이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굳게 이어주지 못한다. 왜냐면 제일 하기 쉬운 건 내로남불이기 때문에.


내로남불이란 말이 그냥 보기엔 무슨 사자성어 같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 남들이 보면 불륜이라는 아주 날카로운 자아성찰의 말이란 걸 알았을 땐 누가 만들었는지 진짜 평생 써먹을 말이다 싶었다.


누구나 쓰레기를 잘 분류해서 버리는 게 귀찮은 일이고 누구나 아무 데서나 신경 안 쓰고 떠들고 누워있고 싶다.

하지만 다들 말은 안 해도 안다. 모두가 그렇게 되면 누구 하나 편하지 않을 거란 걸.


내가 중학생 때 한창 욕이 입에 붙기 시작했을 무렵 친구가 지나가듯 왜 이렇게 욕을 많이 해?라는 말을 들었다. 시레 부끄러워져서 그 이후는 욕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나 한 명이 조심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도 나 같은 한 명이 주변과 서로를 바꾸는 것이 분명히 크게 작용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새로운 사람보다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욱 오래 함께 할 이 세상에서 적지 않은 모두와 함께 새겨가고 싶다.


부끄러운 '나'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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