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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용두암

by 시인의 정원

아들 생일이다. 아들 나이에 아들을 안았다. 반나절의 가족여행. 서로의 오후를 비우고 만났다. 아들의 기억을 따라 명도암 관광휴양목장에 갔다. 어리고, 젊은 이들이 변한 것처럼 목장도 양도 사라졌다. 이른 저녁 식탁을 함께했다.


포만감을 식혀 줄 용두암에 갔다. 제주살이 스물여섯 해에 난 처음이다. 왜냐하면, 이유는 없다. 그냥 원함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어디인지 모른 것은 물론 아니다. 입구를 수 차례 지나치기도 했으니. 늘 번잡하여 피했는지도 모른다. 오후 늦게 다다른 주차장은 버스 한 대 없이 승용차 몇 대만 있었다. 한적한 길을 따라나선 발걸음 소리가 반질반질한 돌계단 위를 쓰다듬었다. 홀로 여행 여인, 몇 사람 외국인들이 어른거린다. 절벽 틈새를 내준 갯돌을 따라 아래를 사모한 발들은 거친 용암물이 흘러 화석이 된 바다에 이른다. 사진으로만 보던 돌멩이는 생각보다 컸다. 발치를 물에 담근 채 섬에 오르려 애쓰기를 수천 년. 그가 아직도 오르지 못한 땅을 마음대로 밟고 내려온 나는 오랜 짠물에도 씻기지 않은 검정을 본다. 소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스르르 사라진다. 깊은 밤의 적요마저 치켜뜬 불빛들이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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