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열기에 까맣게 탄 속이려나.꽃봉오리 맺힌 옆에 씨방이 검은 씨앗들을 뱉으려 입을 벌렸다. 나무는 씨를 버리지 않는다. 너의 삶을 위해 놓아주는 것이다. 단단한 씨는 떨어져 밟히려 한다. 밟혀도 깨지지 않을 단단함과 한 면을 각지게 깎아서 흙에 콕 박히려 한다. 땅 위에 구르면 벌레밥이 되거나 추위에 얼어 죽을 수 있다. 땅속에 파고들 만큼 작지 않은 씨앗이기에 자신만의 생존법을 가진 것이다.
어릴 적 외딴 초가집 뒤안에는 동백나무가 여러 그루 살고 있었다. 나무는 푸른 잎새들로 겨울바람을 막아주었다. 꽃이 한 아름 피는 날이면, 따사로운 햇살에 빨간 꽃잎과 노란 수술은 얼마나 아련하게 눈을 사로잡았는지 모른다.동박새들은 나뭇가지와 꽃봉오리 사이를 오가며 분주했다. 연두색 작은 날개를 퍼덕임은 겨울 속의 한가로운 봄날 같았다. 아이는 도시에 살게 되면서 문득문득 그날의 선혈 같은 꽃봉오리에 비치는 햇살이 떠오르곤 했다.
밟힐수록 생존에 집중하는 동백 씨야 너의 인내와 전략을 가르쳐 주렴. 그렇게 살아남아 싹을 틔우고 겨울꽃이 되어주니 그 지혜는 어디에 있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