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문명에 없는 9가지

아시아, 유럽에는 있었지만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에 없는 9가지

by 바다의 역사



a) 글자


구대륙은 페니키아 글자에서 파생된 "알파벳"이나 아시아의 "한자어", 몽골제국이 개발한 세계 패권에 사용한 "파스파 문자" 등 고도로 체계화되고 표준화된 문자 체계를 통해 정보를 축적했습니다.


하지만 정반대로, 라틴 아메리카 문명들은 글자가 없었어요. 마야 문명은 상형문자(로고실라빅)가 있다곤 하지만 이는 글자라기보단 그냥 구석기인들의 흔적에 가까웠으며, 잉카 문명도 글자가 아예 없었고, 아즈텍 문명은 글자라기보단 구석기인들의 그림에 가까웠지요. 여기서 얘기하는 "부재"는 "정보의 대중적 확산과 추상적 개념을 빠르게 기록할 수 있는 효율적인 알파벳 시스템의 부재"를 의미해요.


아메리카 대륙은 지리적으로 혼자 고립되어 있어, 메소포타미아나 중국에서 발생한 문자 혁명의 영향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라틴 아메리카의 문명들은 독자적으로 생존해야 했으며, 이는 글자가 아니라 시각적이고 의례적인 형태(마야, 아즈텍)나 물리적인 매듭(잉카)으로 밖에 하지 못했지요.


잉카 문명은 아마존 열대 처녀림을 따먹은 왕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왕의 얘기를 입에서 입으로 얘기하거나 "기껏해야 매듭"으로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 왕국의 탐험자인 삐사로가 잉카 문명의 국왕인 아따왈빠에게 성경을 주면서 "성경 말씀에 어쩌고 저쩌고" 얘기하자 아따왈빠는 "성경이 말씀을 한다면서 어째서 책이 말을 하지 않느냐"며 바닥에 던졌습니다.


이는 잉카 문명이 글자라는 개념을 전혀 모르던 구석기~신석기 수준이었기에 빚은 웃픈 오해의 상징적 사건이었어요.


스페인 병졸들은 문자를 통해 잉카 문명이나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에서 보고 들은걸 기록할 수 있었으나, 잉카 문명이나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과거의 패배 기록이나 자기들의 역사를 축적하여 기록으로 남기는게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스페인인들이 오기 전까지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이나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알수가 없어요.


그래서 다른 문화권을 공부할 때는 사료들만 읽으면 간단히 알 수가 있지만, 예외적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권(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자기들만의 기록이 아예 없기 때문에 고고학으로 알아낼 수밖에 없어요.


글자의 부재 혹은 비효율성은 "지식의 독점"을 낳았지요. 사제 신분만이 일부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잉카 문명이나 아즈텍 문명이 죽자 문명 전체의 기억이 빠르게 소실되었지요.


b) 인쇄&출판 (Mass Printing)


인류 역사상 최초의 활판 인쇄술인 "직지심체요절"이나 먼 훗날에 탄생하는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은 한반도나 유럽에서 정보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반면 라틴 아메리카 문명은 이렇게 대량으로 복제하여 배포하는 기술 자체가 없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에는 대량 인쇄된 책이 없었기에, 스페인의 사제들이 "악마의 그림"이라며 마야와 아즈텍의 야자수 잎으로 그려진 느슨한 그림을 불태웠을 때, 수천 년의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이 한순간에 연기로 사라졌습니다. 디에고 데 란다 주교의 마야 그림 소각 사건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지식 전파의 단절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조선이나 유럽은 인쇄술로 기록을 공유했지만, 라틴 아메리카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옆 마을이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도 알지를 못했지요.


대규모 출판 시스템의 부재는 스페인인들이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다스리는데 교육과 법적 권리에서 소외되는 이유가 되었지요. 문해력은 권력이었고, 인쇄술을 독점한 스페인 왕국의 통치자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을 비웃었지요.


c) 농사


유라시아 농업 혁명의 핵심은 가축의 힘을 이용한 "쟁기(Plow)"였습니다. 쟁기는 농토를 깊게 갈아엎어 지력을 회복시키고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늘렸습니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의 3대 문명(잉카, 아즈텍, 마야)에는 가축이 아예 없었기에 가축이 끄는 쟁기가 없었습니다.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오로지 신석기 시대처럼 사람의 힘으로 땅을 파는 막대기(Coa 등)에 의존했어요.


이것은 기술력의 부족도 있지만 끌 짐승(가축) 즉, 소 같은 대형 포유류 자체가 없었기에 쟁기를 발명할 이유 자체가 없었지요. 신대륙의 그나마 유일한 가축이라는 잉카 문명의 라마는 쟁기를 끌 만큼 힘이 세지 않았어요.


아즈텍 문명의 "찐암빠(Chinampa, 수상 농경지)"나 잉카 문명의 "안데스 계단식 논밭"은 사람의 노동력을 극도로 투입한 결과물의 농사였어요. 이는 워낙 먹을게 풍요로운 습하고 무더운 열대 지방인 라틴 아메리카였기에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좋았으나 1인당 생산성은 쟁기 농업에 비해 현저히 낮았어요.


쟁기 농업의 부재는 농업에 종사하지 않아도 되는 "전문가 집단(장인, 싸움꾼)"을 대규모로 부양하는 데 한계를 주었어요. 그래서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늘 군사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지요.


물론 현대 고고학은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이 습하고 무더운 열대 기후 탓에 쟁기 없이도 4모작이 가능하여 옥수수, 감자 등을 생산하여 수많은 인구 밀도를 부양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러다가 스페인인들이 오면서 유럽풍 쟁기 농업이 도입된 후 라틴 아메리카의 토양은 침식되거나 변화했지요.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의 농법은 토양 보존에 유리했으나 생산성 경쟁에서 밀려났고,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 사회가 유럽인 농장주(Hacienda)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어요.


d) 질병과 면역 (Immunity to Old World Diseases)


이것은 "부재"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어째서냐면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이 죽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거든요. 구대륙의 아시아인들과 유럽인들은 가축과 수천 년간 공존하며 홍역, 인플루엔자 같은 인수공통돌림병에 대한 면역력을 획득했습니다. 그러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이러한 면역 유전자가 전무했습니다.


신대륙에는 가축화할 수 있는 포유류가 아예 없었기에, 가축으로부터 유래된 바이러스에 노출될 기회 자체가 아예 없었습니다.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의 깨끗하고 고립된 환경은 역설적으로 최악의 생물학적 취약성을 만들었지요.


에르난 꼬르떼쓰와 쁘란씨쓰꼬 삐사로의 탐사꾼들이 신대륙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들이 가져온 천연두 바이러스가 먼저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 퍼졌어요. 잉카 문명의 왕인 우아이나 까빡도 이로 인해 붕어하며 힘든 시기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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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 후 100년 이내에 잉카와 아즈텍 원주민 인구의 90% 이상(약 8000만명 추산)이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해요. 총보다 세균이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을 붕어하게 만든 주범이었지요.


죽을 위기에 처한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 여자들은 생존을 위해, 혹은 남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스페인인들의 첩이 되거나 창녀촌에 몸을 파는 길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았어요. 이를 단순히 "매춘"이 아닌 "생존적 성 착취"로 봐야해요. 그리고 특히 "브라질과 페루의 아마존 열대 지방의 알몸 원주민"들은 스페인인들이 성폭행과 번식 성노예로 만들면서 수많은 라틴 아메리카의 알몸 원주민 여자들은 1년 365일 내내 억지로 스페인인들의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하고를 반복해야 했으며 잦은 임신과 출산으로 결국 몸이 약해져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죽게 되자..


노동력이 급감하자 스페인 왕국은 남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수입하기 시작했어요. 질병에 대한 면역 부재가 결과적으로 대서양 노예 무역과 인종 혼합이라는 라틴 아메리카의 독특한 인구 구성을 초래했어요.


e) 유럽-아시아 스타일의 교통 인프라 및 문명적 확장성


유라시아는 고대 중국 한나라의 주도 하에 로마까지 진출하면서 세계 역사상 최대의 ㅁ역로인 실크로드가 설치된 이래, 아시아의 저끝에서 유럽의 저끝까지 동~서를 잇는 세계 네트워크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아메리카는 남북으로 긴 세로로 된 지형이기에 교역을 하는게 불가능하며, 열대 섬인 파나마 지협과 같은 열대 구간, 처녀림과 이상 지역으로 인해 문명 간의 교류와 인프라 연결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지리적 축(Axis)의 최강점을 가진 유라시아는 동서로 세계를 일주하는 가로로 뻗어 있어 위도가 비슷해 기후와 작물, 기술 전파가 쉬웠습니다.


하지만 반면 아메리카는 지리적 축의 최약점이었기에 남북의 세로 축이라 기후대가 급격히 변해 잉카 문명의 감자가 아즈떽 문명(멕시꼬)으로 전파되는 데 수천 년이 걸리거나 아예 전파되지 못했어요.


그래서 마야 문명, 아즈텍 문명, 잉카 문명은 망할 때까지 서로의 존재를 아예 몰랐기에, 그렇기에 교류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만약 이들이 연합하거나 기술을 공유했다면 스페인군을 막아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는 미국 학자도 있어요.


잉카 문명의 "까빡 냔(Qhapaq Ñan)"은 도로였다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미끈한 도로가 아니라 그냥 돌다리 수준이었기에 사람과 라마를 위한 계단식 도로였지, 수레가 다닐 수 있는 도로는 아니었어요. 애초에 라틴 아메리카에는 "수레"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21세기의 파나마 지협(다리엔 갭)은 여전히 육로 연결이 끊겨 있는 구간으로 남아 있어요.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지리적 단절이 21세기인 현대 시대까지도 완전히 해소된게 아니라는걸 보여주는 사례에요. 21세기인 현대 시대까지도 지리적 단절을 해소를 못할 정도니 16세기는 오죽할까요?


이러한 확장성의 부재는 스페인 왕국이 "각개격파" 전술을 사용하는 것을 가능케 했습어요. 라틴 아메리카의 각 문명은 고립된 채 개별적으로 스페인 왕국에게 토벌되었고, 통합된 저항을 만들지 못했어요.


f) 총 (화승총, Gunpowder Weapons)


중국 송나라에서 발명되어 유럽까지 전파된 흑색 화약과 총포 기술은 아메리카에는 아예 없었습니다.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흑요석 돌멩이(Macuahuitl) 등을 사용했어요.


물론 화약의 원료인 초석, 유황 등은 신대륙인 아메리카에도 있었으나, 이를 화학적 폭발 에너지로 변환하여 무기화하려는 화학적, 공학적 생각 자체를 못했습니다.


초기 전투에서 스페인 왕국의 아르께부스(조총)와 화기 소리는 잉카 문명, 아즈텍인들에게는 "천둥의 여신"과 같은 공포를 주었어요. 살상력 자체보다 굉음과 연기가 주는 심리적 효과가 전열을 무너뜨렸지요.


총의 부재는 단순한 문명 차이를 넘어 "화학 에너지의 통제"라는 과학 기술의 격차를 의미했습니다. 스페인인들이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을 따먹은 후에도 총기 소지는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금지되었고, 이는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다스리는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지요.


g) 바퀴와 수레


라틴 아메리카에는 바퀴가 없었기에 수레도 없었고, 말이나 소 자체가 아예 없었던 총체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사람이 끌기엔 험준한 산악 지형(안데스, 멕시꼬 고원)에서 수레보다 등짐이 효율적이었습니다.


열대 처녀림과 계단으로 이루어진 잉카 문명의 도로망에서 바퀴는 무용지물이었지요.


잉카 문명은 모든 식량을 사람이 직접 져 옮겨야(Porter) 했어요. 반면 고조선군이나 스페인군은 수레와 말을 이용해 물자를 보급할 수 있었어요.


잉카 문명과 아즈텍 문명은 그 거대한 피라미드와 마추픽추의 돌들을 바퀴 없이 굴림대와 인력만으로 옮겼다는 점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반증하지요.


학자들은 이를 "기술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바퀴가 필요 없었던" 환경이었다는 것입니다.


h) 가축


아시아와 유럽에는 말, 소, 돼지, 양, 염소 등 "가축화된 5대 포유류"가 모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메리카에는 라마와 알파카뿐이었고 이들은 사람을 태우거나 무거운 짐을 끌 수 없었어요. 특히 "말(Horse)"이 없는 것이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이 약해지는데 가장 결정적이었어요.


i) 철


잉카와 아즈텍은 금, 은, 구리, 청동을 보석으로 만드는 야금술이 있었으나, 철을 제련하는 기술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무기는 기껏해야 구석기 수준의 돌(흑요석)이나 청동, 나무가 전부였습니다.


철의 녹는점은 구리보다 훨씬 높아 고온의 용광로 기술이 필요합니다.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기원후 16세기까지도 아직 구석기 시대 수준에 머물러 있었거나, 금속을 실용적 도구보다는 장식과 의례용으로 주로 사용했지요.


반면에 "기원전"의 고조선만해도 "기원후" 16세기의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철검"을 제작할 줄 알았고, 스페인군의 갑옷은 원주민의 돌멩이를 무색하게 만들었지요.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의 흑요석으로 만든 마쿠아후이틀이란 것은 스페인인들의 투구와 흉갑을 부수지 못하고 깨져버렸어요. 반면 스페인인들의 활은 원주민들을 종이처럼 뚫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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