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서구와 조선. 정반대로 목욕 많이했던 잉카 문명

강했으나 더러웠던 초기 조선과 서구. 그리고 약했으나 깨끗했던 잉카 문명

by 바다의 역사


(위생의 역설: 문명, 권력, 그리고 청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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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발전된 문명"이라 하면 깨끗하고 정돈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물론 그런 경우가 더러 있긴 합니다(이집트, 그리스, 로마 문명).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훨씬 더 많았어요. 대포와 함선을 앞세워 남아메리카의 잉카 문명과 아즈텍 문명을 정벌했던 유럽의 왕국들과 유교적 질서를 확립하며 초기 때까지는 유럽 못지 않게 군사력이 강력했던 조선은 악취 속에 살았고, 오히려 그들에게 "미개하다"고 미개인 취급 받으며 정벌되었던 문화권(잉카, 아즈텍)들은 놀라울 정도로 청결한 삶을 영위했습니다.


Part 1) 악취 진동하는 유럽(스페인 왕, 포르투갈 왕국, 영국, 프랑스 왕국)과 조선


(a) 대항해시대와 르네상스 시기, 유럽의 위생 상태는 인류 역사상 최악에 가까웠습니다. 여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몽골제국이 서유럽을 침략할때 흑사병을 전 유럽에 퍼트리면서 그로 인해 중세 흑사병(페스트)으로 유럽인들이 거의 모두 죽고난 이후, 유럽 의학계는 "물로 목욕을 하면 피부의 모공이 열리고, 그 틈으로 나쁜 공기(Miasma)와 질병이 침투한다"는 신앙적 미신에 시달렸습니다. 따라서 "목욕을 하는 것은 자살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게다가 중세와 근세의 유럽 교회는 공중목욕탕을 "타락과 매춘의 온상"으로 규정하고 폐쇄했습니다. 육체를 씻는 행위보다 영혼을 씻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으며, 씻지 않아 나는 냄새를 "거룩한 향기"로 포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표적인 사례들 중 하나가 스페인 왕국의 이사벨 1세 여왕이 평생 단 2번(태어날 때, 결혼할 때) 씻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사례가 있습니다. 프랑스 왕국의 루이 14세 역시 평생 목욕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악취를 가리기 위해 향수 산업이 기형적으로 발달했던 것도 있고 먼 훗날까지 이어지는 프랑스의 악취를 바탕으로 소설&영화 "향수"가 만들어진 것도 있지요.


그렇기에 상하수도 시설이 사실상 거의 전무했던 런던, 파리, 마드리드의 2층 집에서는 요강에 모인 배설물을 창문 밖 거리로 투척했습니다. 웃픈 에피소드로.. 지나가는 행인이 맞지 않도록 "물 조심!(Gardyloo!)"이라고 외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래서 길거리는 사람과 짐승의 배설물로 뒤덮여 똥통, 똥물, 진흙탕이었습니다. 이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해 굽이 높은 "하이힐"이 발명되었고, 위에서 쏟아지는 오물을 피하기 위해 "양산"과 "망토"가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b) 조선의 예법과 환경적 제약


그렇다면 조선은 과연 깨끗했느냐? 그건 또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 역시 위생 관념이 현대와는 달랐습니다. 다만 유럽처럼 "씻는 것을 혐오"한 것은 아니었으나, 조선의 경우는 환경적, 문화적 제약이 컸습니다. 물론 조선도 초기까지는 어느정도 청결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나 점점 국가와 경제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이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유교적 신체발부 수지부모 사상 역시 이에 한몫했습니다. 조선은 당시 세계적으로도 성(性)을 억압하고 탄압하고 죄악시하고 금욕주의가 심했고 남성우월주의와 남녀 차별이 극심했고, 신체(몸)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따라서 벌거벗고 하는 전신 목욕은 천박하다고 생각하여, 의관을 정제한 채 손, 발, 얼굴만 씻는 부분 세신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거의 대야에 물을 받아 씻는 수준.)


게다가 18세기 조선 후기 이후 한양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개천(청계천)은 오물과 토사로 자주 막혔습니다. 장마철에는 오물이 역류하여 위생 상태가 심각해졌고, 마치 동시기의 영국처럼 길거리 곳곳에 인분 냄새가 진동했다는 기록이 구한말 선교사들의 기록에 자주 등장합니다.


Part 2) 미개인들로 여겨져왔던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그리고 동남아시아 문명들의 남녀 혼탕 시스템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인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이 "미개인"이라 불렀던 신대륙과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의 열대 지방 사람들의 위생 상태는 충격적인 수준으로 깨끗했지요.


(a)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 성스러운 물과 남녀 혼탕 목욕 시스템


스페인의 탐험자 에르난 꼬르떼쓰(Hernán Cortés)의 기록에 의하면, 아즈떽의 수도는 유럽의 그 어떤 도시보다 깨끗했다고 해요. 그곳에는 1,000명 이상의 여자들이 매일 거리를 쓸고 닦았다고 해요. 게다가 깨끗한 상하수도 시스템으로 인해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는 이중 수로가 있었으며, 배설물은 카누를 통해 수거되어 비료로 사용되거나 멀리 버려졌다네요.


게다가 아즈떽 문명의 왕인 목떼쑤마는 하루에 무려 2번이나 목욕했다는데 이는 당시는 물론 현재도 이렇게 깨끗하게 목욕을 했던 인물이나 사례를 거의 찾기 힘들다고 하네요. 게다가 아즈떽 문명의 모든 남녀들이 벌거벗고 "떼마쓰깔(Temazcal)"이라 불리는 증기 혼탕 목욕을 즐겼다고 해요. 그래서 당시 잉카나 아즈텍 원주민들은 향을 피워주기도 했으며 항시 스페인 탐험자들이나 병사들을 만날 때마다 그 악취에 코를 막거나 괴로워했다는 기록이 자주 써있어요. 이렇게 아즈텍 문명이 목욕을 자주 했던 이유는 워낙 습하고 무더운 열대 지방이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잉카 문명의 수로도 깨끗하고 좋았어요. 안데스 산맥의 잉카 문명은 석조 기술을 이용해 물을 끌어왔어요. 흐르는 물은 신성시되었으며, 도시 전체가 거대한 수세식 시스템처럼 작동했습니다.


(b) 동남아시아와 크메르 문명


이는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문명이나 원주민들(필리핀, 캄보디아 등)도 마찬가지였지요. 특히 동남아시아의 필리핀은 남아메리카의 아마존처럼 1년 내내 지구상에서 가장 습하고 무더운 고온다습한 기후로 인해 그곳 원주민들은 여자도 알몸으로 생활해야했으며 목욕이 생존이자 문화였어요.


이렇게 잉카 문명이나 아즈텍 문명, 아마존처럼 습하고 무더운 기후 탓에 필리핀이나 동남아는 하루 3~4번의 목욕이 필수였어요. 더위와 땀, 벌레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남녀노소 불문하고 강과 시내에서 수시로 씻었습니다. 이는 종교적 정화 의식과도 연결되었습니다.


앙코르 와트로 인기 있는(현재는 범죄단지 때문에 아무도 안가지만..) 크메르 문명의 경우도 거대한 저수지(바라이)와 수로 시스템은 농업뿐만 아니라 도시의 온도를 낮추고 청결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Part 3) 그렇다면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필리핀은 어째서 남녀 혼탕과 알몸에 오픈 마인드였을까?


"남녀 혼탕", "개방적인 남녀 알몸 문화", "손님 접대 목욕"은 당시 이들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필리핀 원주민 사회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이는 구석기(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적 순수함과 기후의 영향(필리핀)과 기후적 필연성 때문으로.. 잉카 문명과 아즈텍 문명, 아마존 원주민 사회나 동남아의 열대 기후에서 옷은 땀에 젖어 피부병을 유발하기 쉬웠어요. 따라서 옷을 최소화하거나 남녀들은 항시 벌거벗고 물에 들어가는 것은 생존을 위한 가장 위생적인 선택이었지요.


그래서 열대 지방에서 열대 강(River)물은 거대한 남녀 공용 욕실이었지요. 별도의 욕실을 짓기보다, 흐르는 강물 자체가 최고의 남녀 혼욕, 목욕탕이었지요. 아마존이나 잉카, 아즈텍, 필리핀 원주민 공동체가 남녀들이 함께 강물에서 씻는 것은 사교의 장이자, 하루의 피로를 씻는 일상이었지요. 여기서 남녀를 구분하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이었습니다.


Part 4) 성(性)에 대한 다른 관념


유럽/유교의 시선: 유럽과 조선은 나체를 "수치", "도덕적으로 해선 안될 짓", "눈치 보임", "음란함", "죄"로 규정했습니다. 남녀가 함께 씻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패륜이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필리핀의 시선: 하지만 이와는 달리 당시 라틴 아메리카나 필리핀, 폴리네시아 사회에서 남녀의 알몸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잉카, 아즈텍, 아마존 원주민, 필리핀 원주민들에게 남녀가 함께 혼욕하는 것은 성적인 행위가 아니라, 밥을 같이 먹는 것과 같은 "일상 생활"이었습니다.


대항해시대에 스페인 왕국이나 포르투갈 왕국의 일부 기록에 등장하는 "잉카나 아즈텍, 아마존 원주민 여자가 손님과 함께하는 목욕"은 극진한 환대의 표시였습니다. 먼 길을 온 손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원한 물로 씻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성적 타락으로 해석한 것은 오로지 서구 탐험자들의 왜곡된 시선 때문이었습니다.


Part 5. 왜 선진국(초기까지 조선, 유럽)은 더러웠고, 약소국(잉카, 아즈텍 문명, 필리핀 원주민 사회)은 깨끗했을까?


이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낸 핵심 이유는 4가지 섹터로 볼 수 있지요.


(a) 기후


추운 조선과 유럽: 한반도나 유럽은 북반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겨울이 춥고 건조합니다. 옷을 벗으면 체온을 뺏겨 생명이 위험하고, 물을 데우려면 막대한 땔감이 필요합니다. 자연스럽게 덜 씻게 되었습니다.


무더운 열대&아열대 지방인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아마존, 필리핀: 땀을 씻지 않으면 피부병으로 힘듭니다. 물이 풍부하고 따뜻하여 언제든 씻을 수 있었습니다.


(b) 인구 밀도와 도시화의 부작용


유럽은 산업화 이전, 영국의 런던이나 프랑스의 파리는 인구밀도가 높아서 좁은 성벽 속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살았어요. 하수 처리 기술이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도시는 거대한 화장실이 되었지요.

잉카 문명&아즈텍 문명&크메르 문명: 이 셋은 계획도시였지요. 처음부터 풍요로운 먹거리와 식량과 물, 수로와 배수를 고려하여 도시를 설계하던 아즈텍 문명, 크메르 문명, 잉카 문명은 물이 풍부한 지역에 넓게 퍼져 살았지요.


c) 질병에 대한 이해(패러다임의 차이)


유럽: "물은 병을 부른다"는 잘못된 의학 지식이 위생을 망가졌어요.


라틴 아메리카&동남아: 경험적으로 "씻어야 병에 안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나, 물을 신성시하는 종교 의식 덕분에 청결을 유지했지요.


d) 가축 사육의 유무


구대륙(유럽/아시아): 소, 돼지, 말, 개, 닭, 오리 등 전세계 모든 가축들과 함께 살며 인수공통감염병과 분뇨 문제에 시달렸습니다.


신대륙(아메리카): 사실상 가축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도시 내 오물 오염도가 훨씬 낮았습니다.


Part 6) 그 이후의 아이러니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깨끗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알몸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의 "더러움(지저분함)" 때문에 죽었습니다.


평생 가축의 분뇨와 오물 속에서 살아남은 유럽인들은 온갖 병균에 내성이 있었습니다. 정반대로 청결한 환경에서 항시 알몸 목욕을 하며 살던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 남녀들은 이런 병균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었지요. 유럽인(스페인 등)이 가져온 병균은 총보다 더 무섭게 잉카 문명과 아즈텍 문명의 인구의 90%를 죽였어요.


Part 7) 경제력, 기술력, 국방력 ≠ 문명의 완성도


이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조선이나 서구처럼 총과 대포를 잘 만든다고 해서, 농사를 잘 짓는다고 해서, 경제력이나 기술력이 발전됐다고 해서 화장실을 잘 만들거나 삶의 질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문명의 발전은 불균형하게 이루어집니다.


대항해시대의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헐벗고 남녀가 혼탕으로 같이 씻는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을 미개하다고 비웃었지만, 위생학적으로는 잉카 문명이나 아즈텍 문명,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이 훨씬 선진적이었습니다. "미개함"의 기준은 누가 권력을 잡고 기록하느냐에 따라 왜곡되었습니다.


아시아나 유럽같은 강대국이 모든 면에서 우월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비록 아시아나 유럽은 신대륙이나 열대 지방보다 군사력은 훨씬 더 강했지만, 군사력이 약했던 신대륙이나 더운 열대 지방의 문명들이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과 행복함, 쾌적함(위생) 측면에서는 훨씬 더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이룩했음을 역사는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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