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기원전 326년쯤 알렉산더 대왕은 동쪽 바다를 보기 위해 인도로 진입합니다. 그러다가 펀자브 지방의 히다스페스 강(오늘날의 젤룸 강)에서 2미터가 넘는 거구의 힘쌘 왕, 포루스가 이끄는 병졸들과 마주칩니다.
포루스는 약 200마리 쯤으로 추정되는 코끼리들을 보냅니다. 마케도니아 병졸들은 페르시아전에서 코끼리를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많은 숫자의 코끼리들은 처음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짓밟혔습니다. 게다가 당시 인도는 몬순(우기) 시즌이었습니다. 폭우가 쏟아져 진흙탕이 된 싸움터에서 알렉산더 대왕의 주력인 보병들은 진흙에 빠졌습니다. 알렉산더는 가까스로 처절하게 대응하여 결국 포루스를 제압했지만, 아군 피해가 매우 막심했습니다. 이 전투는 마치 임진왜란의 조선처럼 "이겨도 이긴 게 아닌" 상처뿐인 영광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병사들은 여기서 처음으로 "인도인은 페르시아인보다 훨씬 강하고 독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ㄴ) 히파시스 강에서의 봉기 (회군의 결정적 계기)
포루스를 꺾었으니 더 가자는 알렉산더와, 도저히 겁이나서 못 가겠다는 알렉산더 병졸들 사이의 옥신각신하는 실랑이가 발생합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8년 동안 18,000km 이상을 걸으며 싸웠습니다. 신발과 옷은 거의 다 나체 상태처럼 해져서 인도 현지 옷을 입고 다녔고, 무기는 이미 다 녹슬었습니다. 게다가 몬순 기후로 70일 동안 비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갑옷은 거의 녹슬고 부서지고, 발은 썩어 들어갔으며, 뱀과 독충에 물려 죽는 병사들이 속출했습니다.
히파시스 강(비아스 강) 건너편, 갠지스 강 유역에는 "난다 왕조(Nanda Empire)" 또는 "강가리다이(Gangaridai)"라는 거대 왕국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포루스와의 싸움도 죽을 뻔했는데, 정보에 따르면 난다 왕조는 보병 20만 명 (알렉산더 군의 4~5배), 전차 8천 대, 전투 코끼리 6,000마리 (포루스는 고작 200마리였는데!) 물론 이 소문이 진짜 사실인지는 알 순 없지만 이 풍문을 들은 마케도니아 병졸들은 공포에 질려버렸습니다. 그들은 알렉산더가 얘기해도 절대로 미동하지 않고 통곡하며 울면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히파시스 봉기 사건(Hyphasis Mutiny)"입니다.
알렉산더는 3일 동안 텐트에 틀어박혀 설득을 했지만, 충직한 신하인 코이노스(Coenus)마저 "왕이시여, 이제 그만 돌아갑시다. 우리가 너무 지쳤습니다"라고 간청하자 결국 알렉산더 대왕은 왔던 길을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ㄷ) 인더스 강 유역 정벌과 말리족 싸움 (치명상의 원인)
그렇게 알렉산더 왕과 그의 병졸들은 왔던 길로 얌전히 돌아가지 않고, 인더스 강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바다를 통해 돌아가려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싸움이 벌어집니다.
인더스 강 하류의 부족인 말리족의 성을 공격할 때였습니다. 병졸들이 사다리를 타기 주저하자, 화가 난 알렉산더가 혼자서 성벽 위로 올라가 성 안으로 내렸습니다. 왕을 구하기 위해 신하 몇 명이 따라 뛰어내렸지만, 알렉산더는 이미 부족원들에게 포위되어 맹공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때, 거대한 화살이 알렉산더의 갑옷을 뚫고 폐(허파)에 박히는 치명상을 입습니다. 피와 공기가 섞여 나오는 기흉 상태가 되었고, 알렉산더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결국 마케도니아 군은 성안의 모든 사람(여자, 아이 포함)을 쓰러뜨립니다.
하지만 왕(알렉산더)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져 병졸들이 봉기를 할 뻔했으나, 알렉산더는 며칠 뒤 창백한 얼굴로 배 위에 서서 손을 흔들어 생존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 부상은 그의 건강을 영구적으로 망가뜨렸습니다.
ㄹ) 게드로시아 사막 횡단
알렉산더는 수군과 육군(보병)을 나누어 귀환했는데, 본인이 이끄는 육군(보병)은 "게드로시아 사막(오늘날의 파키스탄과 이란 남부)을 통과하는 짓을 감행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으나, 추론을 해보자면 자신의 병졸들이 반항(회군 요구)한 것에 대한 괴롭힘이었다는 설과, 수군에게 물자를 보급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은 싸움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작열하는 무더운 태양, 물 부족, 길 잃음으로 인해 60일 만에 병력의 3/4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습니다. 같이 동행했던 여자와 아이들, 상인들은 거의 다 죽었습니다.
ㅁ) 알렉산더 대왕의 붕어와 왕국의 망함
약 기원전 324년쯤 돌아온 알렉산더는 동, 서 화합을 위해 마케도니아 병졸 1만 여명과 페르시아 여성을 결혼시키는 합동 결혼식을 올립니다. 하지만 병졸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오피스 난).
그리고 기원전 약 323년 6월쯤 그는 아라비아 정벌을 준비하던 중, 바빌론에서 큰 연회를 열고 술을 마신 뒤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약 10일간 앓다가 33세의 나이로 붕어했습니다. 갑자기 붕어한 이유는 아무래도 말리족과의 싸움에서 입은 폐 부상의 후유증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와 말라리아 감염(또는 장티푸스)이 유력하게 보입니다. 간혹 학자들은 부하들에 의한 독살설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ㅂ) 알렉산더의 사후
알렉산더가 붕어하면서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유언을 남기는 바람에, 그의 왕국은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알렉산더의 신하들이 서로 왕이 되겠다고 싸우며 왕국은 크게 셋으로 쪼개집니다.
마케도니아 지방과 그리스 지방은 안티고노스 왕조가 들어섰고, 이집트 지방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클레오파트라의 조상)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더가 붕어한 뒤, 인도 쪽의 권력 공백을 틈타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인도 최초의 통일 제국인 마우리아 왕조를 세웁니다. 알렉산더의 병졸들이 겁먹었던 그 난다 왕조를 무너뜨린 것도 찬드라굽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