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패권"이라는 개념은 정의하기 진짜 힘든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학자들마다, 그리고 학계마다, 역사 학자, 고고학자, 정치학자마다 "패권"의 의미를 다르게 보고, "패권"을 각각 다르게 정의한다.
물론 지구상의 대부분 학자들은 "패권"의 개념과 정의를 "경제"나 "교역"을 기준으로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오늘날의 패권국이 미국이고 그 이전에 영국인 것은 합의했지만
영국 이전의 패권국은 분야에 따라서...
군사력을 기준으로 세계 패권국을 정의한다면 중세시대 때의 세계 패권국은 몽골제국이었다. 그래서 세계 최강국인 몽골제국이 세계 패권을 누릴 때를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라고 세계 사학계에서 정의했다.
무역을 기준으로 정의해보면 세계 패권국은 고대시대때는 한나라, 당나라가 될 수 있고, 근세시대 때는 명나라, 근대시대 때는 영국, 오늘날에는 미국이 될 수 있다.
경제력과 문명 수준으로 정의하면 고대시대 때는 로마도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계 최강국"과 "세계 패권국"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세계 최강국이라고 세계 패권국이 되는 건 아니고, 세계 패권국이라고 세계 최강국이 되는 건 절대 아니다.
세계 최강국이란건 단순히 군사력만 1위가 되면 되니까 전쟁만 미치도록 잘하면 되지만, 세계 패권국은 다른 모든 국가들이 그 국가를 "인정"해야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그렇기에 군사력이 엄청나게 강한 소련이 세계 패권국이 되지 못했고, 오늘날 중국이 아무리 군사력, 기술력, 경제력이 강해도 세계 패권국이 되는게 불가능하다는 게 이런 의미가 있다. 분명 오늘날 중국이 군사력, 기술력, 경제력으로는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패권국"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중국은 세계 깡패 국가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이미지가 너무 안좋다보니 중국이 세계 패권국이 되려고 할때 세계의 다른 모든 국가들이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발악을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게다가 중국이 세계 패권국가가 될 때 중국을 제국주의 국가라고 맹비난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오늘날 중국이 세계 패권국이 되기 힘들다.
그래서 서양사학자들은 대부분 대항해시대의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를 패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패권국의 지위에만 부여되는 "팍스 어쩌고"도 이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에는 부여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는 분명 괄목한만큼의 성적을 냈는데 패권국의 지위에 오르지는 못했을까? 다 하면 너무 기니까 스페인 왕국을 기준으로 설명하겠다. 어차피 포르투갈, 네덜란드도 비슷하니까 스페인의 예를 들어서 대충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세시대때까지 스페인 왕국은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의 식민지배를 500년이나 받았던 약소국이자 후진국, 빈민국이었다. 그 흔적은 아직도 스페인 곳곳에 남아있다. 그러다가 "레꽁끼스따(Reconquèsta)"를 통해 이베리아 반도까지 진출해있던 무슬림 세력들을 축출하고 쫓아내는데 성공한다. 이 성공을 통해 그동안 약소국이었던 스페인은 해방되었고, 그때 돌궐족이 세운 오스만 투르크가 유럽보다 강한 군사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이나 무굴제국과의 중개무역을 하면서 유럽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갑질을 일삼고 있었다.
이에 참다 못한 스페인 왕국은 생존을 위해 인도로 가기 위해 배를 띄우다가 로또 복권처럼 신대륙에 당첨된 것이다.
그렇게 총을 들고 간 스페인인들은 아직도 16세기까지 구~신석기시대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던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과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들을 질병을 전염시켜서 먹은 후 신대륙에서 생산되는 금, 은과 열대 과일 같은 상품들을 수출하면서 막대한 이득을 챙겼고 경제력이 올라가면서 결국 후진국, 약소국에서 순식간에 문명국, 선진국으로 급부상했다.
그동안 동양이 세계 패권을 차지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스페인 왕국은 동양의 세계 패권의 반기를 든 서구 국가라는 점에서 괄목할 만하지만, 그러나 그동안 동양에게 뒤쳐져 있던 서구였기에 스페인 왕국은 국가 운영에 있어서 굉장히 미숙한 국가였다. 막상 신대륙이라는 큰 덩어리를 먹기는 했으나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부려 노예로 부리거나 하면서 향신료나 금과 은을 채굴해서 그 부는 오로지 스페인 왕실에게로만 갔고, 합스부르크 집안에게도 갔다.
게다가 스페인 왕국은 16세기 남아메리카에서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확보했지만 이는 일시적으로만 스페인 왕국을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왕국으로 만들었을뿐, 그 이상의 역량을 보여주진 못했다. 게다가 이는 스페인 왕국내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갑작스러운 금과 은 유입은 심각한 인플레이션들을 초래했던 것이다. 이에 스페인의 물가도 폭등하여 일반 백성의 삶은 오히려 어려워졌고, 국내 제조업 경쟁력은 약화되는 악영향을 낳기도 했다.
게다가 스페인 왕국은 자기들이 다스리는 속국(식민지)들이 행여나 독립을 하거나 스페인 왕국보다 더 부강해질까봐 두려워서 그 어떤 인프라나 경제적인 상업, 산업시설들도 식민지에 건설하지 않았고 식민지들은 오로지 착취와 강간의 장소로만 여겼다.
그리고 수많은 스페인인들이 남아메리카 곳곳에서 잉카인, 아즈텍인, 그리고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여자들을 강간하고 성폭행하기 일쑤였고, 그렇게 불만이 커지면 그들을 진압하는데 막대한 돈을 쓰면서 이렇듯 식민지 유지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갔다. 이로 인해 식민지에서 얻는 수입보다 유지 비용이 더 큰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도 스페인 왕국이 다스렸던 속국(식민지)들인 필리핀이나 남반구인 남아메리카 지역은 굉장히 못사는 후진국, 약소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스페인 왕국이 그 지역들을 크게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하루 착취하는 데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영국이 속국(식민지) 경영에 성공했던 이유는 영국은 나름대로 속국들에 투자를 해왔기 때문이다. 무인도는 개척하고, 못사는 국가는 일정 부분 잘살게끔 투자를 하면서 인프라를 만들고 한 후에 착취를 했다. 그리고 영국은 무식하게 무력으로 대놓고 지배하지 않고 현지인들과 타협하면서 지배하는 방식을 취했다. 물론 봉기를 일으키는 경우에는 진압을 하긴 했으나 영국의 지배 방식은 이이제이, 이간질, 그리고 속국(식민지)의 집권층을 구워 삶아서 영국의 편으로 만들어서 그들을 허수아비로 세운 후에 지배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영국이 지배하는 것을 보면 영국은 보이지 않고 같은 민족이 같은 민족을 지배하는 것만 보인다. 그 배후에 영국이 몰래 숨어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쉽게 영국을 찾아내기는 힘들었다.
어쨌든 스페인 왕국은 이렇게 영국처럼 효율적으로 지배하지 못하고 오로지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서 비효율적으로 지배했으니 반발도 심했고 독립운동도 자주 발생한 것이다.
이렇듯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경제 규모가 커진 스페인 왕국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관료주의가 팽배했고,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도 심각해졌다. 이는 효율적인 자원 배분과 정책 집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같은 스페인인이라도 스페인 본토에서 태어나지 않고 속국(필리핀, 남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스페인인은 차별하는 식으로 차별정책을 펼치다 보니 왕국이 하나로 단결하기 힘들었고 부정부패, 분열은 커져만 갔다.
그렇다 보니 스페인 왕국은 점점 더 안정적인 경제 운용이 불가능해졌고 낮은 상업 자율성과 채권 발행 불가 등이 복합되어 효율적인 글로벌 교역망을 운영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포르투갈 왕국이 급성장하고 1648년에는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네덜란드 왕국이 독립을 하면서 서유럽, 남유럽의 해상권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가뜩이나 망해가던 스페인 왕국은 크나큰 타격을 입게 된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좋은 조선술과 항해술, 금융 시스템을 바탕으로 교역을 발달시켰다.
하지만,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 왕국도 결과적으로 패권국이 되는 데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스페인 왕국이 곧장 망하고 포르투갈 왕국이 급성장했으나 포르투갈 왕국도 곧장 망하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그나마 좀 오래 유지했으나 그렇게 크게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후에 생겨난 "영국"은 결과적으로 세계 패권을 명나라에게서 이어받게 되면서 패권국으로 올라서게 된다. 그 징조는 16세기 후반인 1588년 때부터 나타났는데, 당시 스페인의 유일하게 자랑이던 "무적함대(Armada Invencible)"가 영국 해군에게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무적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고, 망해가던 스페인 왕국은 해상력을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이후 영국은 점차 해상권을 장악하며 스페인의 영향력을 잠식해 들어갔다.
훗날 프랑스 왕국 역시 지속적으로 영국의 패권에 도전하며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으나 프랑스는 패권국에 이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