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최초의 백인 왕국 "사라왁(Sarawak)"

돈으로 성공하고, 돈으로 죽었던 어느 백인 왕국의 이야기

by 바다의 지정학
섹스.jpg


지금까지 무겁고, 역사를 전공해야만 알 수 있는 그런 주제들을 많이 다뤄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제는 다소 브런치 스토리에 맞는, 그러니까 혼자 점심이나 저녁밥을 먹으면서 뭔가 심심한데 볼 게 없나 싶을 때 볼만한 그런 재밌으면서도 너무 자극적이지 않는 담백한 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혹시 동남아시아의 해양부(도서부) 열대 지방에 속하는 말레이시아에 "백인 왕국"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그 왕국의 이름은 바로 "사라왁 왕국"입니다. 이 왕국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긴 시간 존속하긴 했지만 그다지 경제력도 없었고 그렇게 역사적으로 유명한 왕국도 아니고 어떤 업적도 없던 왕국이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은 일본군의 침공으로 비참하게 멸망까지 했으니 말이죠.


오늘은 이 사라왁 왕국의 탄생과 붕괴까지의 역사를 담백하고 재밌게 말아드리겠습니다.













A. 명나라의 보호국 "브루나이 술탄국"







섹스.jpg 명나라의 보호국 브루나이 왕국(Kesultanan Brunei)



15세기 초, 세계를 정복하면서 세계 패권 질서를 구축했던 몽골제국, 대원제국(원나라)이 구축한 세계 패권 질서가 해체되고, 호랑이가 떠난 굴에 늑대가 기승을 부리듯 명나라는 정화의 대함대를 보내 이번엔 자신이 세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그리고 정화의 대함대는 그때까지 "브루나이 왕국"을 괴롭히고 삥 뜯고 있던 "마자파힛 왕국"을 발견했다.


마자파힛 왕국은 한때 동남아시아 최대의 해양세력이었고, 세계 패권국가인 대원제국(원나라)이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면서 마자파힛 왕국을 정복한 적도 있었다. 대원제국(원나라)은 미얀마, 인도네시아를 정복하고 곧바로 마자파힛 왕국을 식민지화하려고 주둔군들을 주둔시켰으나, 동남아시아의 미칠듯한 열대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철군을 결정했다. 그렇게 마자파힛 왕국은 대원제국(원나라)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었고 먼 훗날, 대원제국(원나라)의 세계 패권 질서가 지나가고 명나라 영락제의 시대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정화의 대함대는 마자파힛 왕국에게 대포를 들이밀고 협박해서 브루나이 왕국을 강제로 떼어낸 후, 명나라의 "세계 질서" 안에 편입시켰다. 그 후 마자파힛 왕국은 오랫동안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 인도네시아의 해상 왕국 마자파힛 왕국, 술루 술탄국 등 주변 해상 왕국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명나라는 영락제 사후,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는 야망을 가진 황제들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명나라가 가진 세계 패권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호랑이(대원제국)가 떠난 굴에 늑대(명나라)가 기승을 부리듯,

늑대(명나라)가 떠난 굴에 여우들(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 영국의 동인도회사 등)이 탄생하기 시작한다.


섹스.jpg 브루나이 왕국(브루나이 술탄국)의 영토는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까지다


그리고 명나라는 더 이상 브루나이 왕국을 보호하지 않고 사실상 버려버린다. 브루나이 왕국은 이제 명나라의 보호 없이 독자적으로 생존해야 됐다. 그렇지만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명나라의 보호국으로 전락해 있으면서 브루나이 왕국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경제력을 필두로 한 국력이 높아지면서 현재 동남아시아의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까지 영토를 먹게 된다. 그리고 보르네오섬 사라왁ㄱ주의 사바주 지역까지 뻗어 나간다.


하지만 "브루나이 왕국"의 또 다른 이름은 "브루나이 술탄국(كسلطانن بروني)"이다. 즉, 이슬람 왕국인 셈이다. 필리핀 쪽을 먹은 브루나이 왕국은 마침 그곳에 진출하기 시작한 스페인(에스빠냐) 왕국과 충돌하게 됐다.


그러다가 보르네오섬 해안에 있는 브루나이가 수도나 다름없던 말레이계 술탄국인 브루나이 술탄국은 명나라가 더 이상 세계 경찰국가 같은 "천조국(天朝國)"의 역할을 하지 않자 네덜란드, 스페인 왕국 등에 밀려나다가 16세기 후엽쯤에 원거리 장비인 총과 대포를 들고 온 스페인 왕국에 수도가 장악되었다.



그 이후 17세기 쯤에 포르투갈 왕국과 손을 잡은 브루나이 왕국은 스페인 왕국과 다시 전쟁해서 이겼다. 그렇게 스페인 왕국은 헐레벌떡 도망가버렸으나, 포르투갈 왕국의 돈을 빌려서 스페인 왕국을 이긴 것이었기 때문에 브루나이 왕국은 빚을 갚아야 했고 술탄의 권력은 바닥을 쳤으며 왕국은 목숨만 이어나가는 수준으로 끊임없이 포르투갈 왕국에 빚을 계속 갚기 위해 겉보기엔 독립국이고 주권국이었으나 사실상 영향권에 종속된 상태가 되버렸다.


브루나이 왕국은 빚더미에 앉으면서 왕실 내부에서는 정치 싸움들을 일삼으니 해적들과 지방 추장들의 권한이 커져 술탄의 권력을 무시하고 맞서곤 하였다. 그렇게 근대시대에 이르러 1830년대쯤 되니까, 사라왁에서는 아예 다약계 "비다유인(Bidayuh)", "육지 다약인(Land Dayak)", "이반인(Iban)" 등의 해적들이 술탄의 억압적인 정책에 들고 일어났는데 술탄은 이를 제대로 저지하지 못하면서 그 불길은 사바 지방까지 번져갔다. 이에 말레이시아의 브루나이 술탄은 영국인인 제임스 브룩을 불렀다.














B. 사라왁 왕국의 건설자 "제임스 브룩"







현재 말레이시아의 보르네오 섬에 사라왁 왕국(Kingdom of Sarawak)을 건설한 영국인 제임스 브룩



뜬금포로 출연한 제임스 브룩은 누구일까?

당시 시대는 근대시대의 19세기 중~후엽이었다. 제임스 브룩은 동인도 회사에 다니던 회사원이었다. 아빠가 물려준 돈으로 배를 구입한 그는 1839년 8월쯤에 해적들을 저지하고 있던 브루나이레 도달하여 브루나이 술탄이 해적들을 소탕하는데 힘을 보탠다. 하지만 잠시 일순간 해적들의 준동을 막은 것일뿐 브룩은 잠시 싱가포르로 도망갔고, 곧바로 해적들이 다시 거세게 준동하기 시작하자 결국 제임스 브룩은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들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회유책을 쓰기 시작했다.


해적들에게 투항하면 술탄이 좋은 일자리를 줄 것이라고 회유하면서 그들을 사그라들게 만든 것이다. 결국 밥벌이였던 해적들은 그 얘기를 듣고 더 이상 난리를 치지 않았고 브루나이 왕국의 오마르 알리 싸이뿌띤 2세 술탄은 너무 고마워서 1841년 쯤에 제임스 브룩에게 "사라왁" 지방의 국왕을 뜻하는 "라자(Raja)"로 봉하였다. 이렇게 술탄을 도운 대가로 뜻하지 않게 제임스 브룩은 동남아시아 최초의 백인 왕국을 보상으로 받은 것이다.


사라왁 왕국의 작은 영토. 사진 출처 : 나무위키



그리고 사라왁(Raj of Sarawak, Kingdom of Sarawak)은 1850년 미국, 1864년 영국에 의해 주권 국가로 인정되었다. 근세시대 때 주권 국가로 인정받으려면 명나라 황제의 공식 승인이 있어야 됐으나, 근현대시대 때는 영국과 미국의 승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제임스 브룩은 그다지 경제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지 사라왁 왕국의 경제는 점점 더 안좋아졌고 국정도 안좋았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늘어만 갔다. 그리고 해적들은 여기 저기서 제임스 브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국 해적들과의 오랜 싸움에 지친 브룩은 말년인 1868년 쯤에 자기의 모국인 영국으로 돌아갔고, 조카였던 "챨스 앤서니 죤스 브룩(1829년 ~ 1917년)"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처음엔 큰 조카인 "존 브룩스 죤슨 브룩(1823년 ~ 1868년)"에게 양보했으나 1년도 안돼 질병으로 걸려 죽는 바람에 둘째 조카인 찰스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그해 제임스 브룩은 잉글랜드의 데본 주에 있는 자기의 집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2대 찰스는 1891년 보르네오 최초의 박물관인 "사라왁 박물관(Sarawak Museum, 나중에 Sarawak State Museum으로 열림)"을 만들었다. 사라왁 박물관은 당시 영국에서 인기를 끌던 앤 여왕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여하튼 이렇게 왕위를 물려받은 2째 조카 챨스 앤서니 죤슨 브룩은 경제 정책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는 경제부터 개선하고 정부 부채는데 애쓰고 인프라를 확충하는 등의 노력으로 백성들의 밥벌이를 살피고자 했다. 그리고 챨스 브룩이 영국에게 애걸복걸해서 결국 영국은 1888년 사라왁 왕국을 보호국으로 승인해주고 지켜주기로 했다.


그리고 챨스 앤서니 죤슨 브룩은 다양한 복지, 이주 정책을 만들고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 정책들을 펴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주를 장려하고 경제 계획을 적절히 해서 사라왁 왕국은 황금기를 뿜뿜하게 된다. 그렇게 사라왁 왕국은 석유, 천연 고무 농장의 도입 외에 후추의 생산지로도 발달했다.


이렇게 경제 왕국으로 번성하던 사라왁 왕국을 죽음에 몰고 간 결정적 사건은 바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일본제국의 침공이었다.













C. 사라왁 왕국의 최후





인도네시아의 최초 지폐 가운데 하나인 "켄 데세스 석상"이 그려진 루피아 지폐


근대시대 후엽인 1917년 쯤인 사라왁 왕국은 2대 챨스 브룩이 아들 챨스 바이너 브룩(1874년 ~ 1963년)에게 1917년 왕위를 양보하였면서 이제 3대 국왕이 사라왁 왕국을 다스리게 된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 쯤에 일본은 동남아시아 전역을 식민지화하면서 사라왁 왕국까지 침입하고, 사라왁 전역은 일본의 점령 하에 놓이게 된다.


도저히 막강한 일본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던 사라왁 왕국의 브룩 왕가 전원은 호주의 시드니로 망명하게 된다.


그리고 2차대전이 끝나면서 동남아시아 전역은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됐고 1945년 쯤에 곧바로 브룩 왕가는 다시 사라왁 왕국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다른 동남아 지역들처럼 쑥대밭이 되버린 사라왁 왕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고 결국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1946년 쯤에 사라왁 왕국은 영국에게 이양되기로 결정되면서 영국인 국왕은 폐위되고 사라왁 왕국은 영국의 경제적으로 을의 입장이 된다.


그로부터 약 70년 뒤에 브루나이의 과거 일부만이라도 독립해서 "북보르네오 연방"을 만드려는 움직임이 있었긴 했으나 이미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불발되었다.


이렇게 사라왁 왕국의 역사는 경제와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도네시아 역사상 번성한 해양세력 "마자파힛 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