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농업 생산량이 높지 못했던 이유

초기까지 군사력, 기술력은 높았던 조선, 그러나 농업 생산량은 낮았다.

by 바다의 지정학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대포의 모습


1. 조선의 높았던 군사, 과학, 문명 수준과는 반대로 낮았던 농업 발전



근세시대 때 15세기 조선은 태종대왕 ~ 세종대왕 ~ 문종대왕 시기에 황금기를 누리면서 군사, 과학, 천문학, 수학, 예술, 화약 기술력, 기술력, 문명 모두 엄청나게 발전한다. 태종대왕의 주도로 화약 무기들과 국방력이 다시 엄청나게 발전했으며, 세종대왕 때는 장영실, 이천 등이 활약하며 측우기, 앙부일구, 해시계, 훈민정음, 자격루 등이 발명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들을 다수 달성한 국가였었다.


이는 일본 도쿄 대학교의 이토 준타로 주도 하의 연구팀에 따르면, 근세기인 15세기 전반의 세계적인 과학기술의 성취 건수들은 조선 21건, 기타 유럽 국가 총합 19건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조선 전기는 근세시대의 대표적인 과학기술 강국이기도 했고, 군사적으로도 유럽보다 훨씬 더 먼저 화약 무기들이 발전했으며, 임진왜란기 이후에는 총기(조총) 등을 도입하며 해군력, 지상 전투 능력들을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물론 조선의 고질적인 문제인 "자금력 부족" 때문에 결국 이렇게 높은 국방력과 기술력이 있음에도 결국 국방 기술들을 유지할 "국가 재정(財政)"이 없다보니 갈수록 퇴보하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게다가 수학, 천문학, 기록, 인문 등의 문명 수준도 매우 발전했기에 전기 때 조선의 군사력과 과학 기술력, 문명 수준 총합은 당시 스페인 왕국과 막상막하였다.


한류.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의외로 "농업" 분야였다.

조선은 농업 분야에서 노동 집약적 소농 중심 구조에 머물렀고, 특히 농업 발전은 매우 큰 한계를 드러낸 적도 많았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농자천하지대본"이라 주창하며 "농본주의"를 표방한 조선이었는데 막상 전기 때 한정이지만 군사력과 과학 기술력, 수학, 천문학 등은 매우 높은데, 의외로 조선이 신경쓴 농업이 가장 취약하다니. 그런데 이는 조선이 문제라기보단 "한반도"라는 혹독한 지형 자체의 한계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대표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지형적, 인구적 한계


조선시대가 속한 한반도는 산지가 많아 경작지 비율이 제한적이었고(조선시대보다 훨씬 농사가 가능한 경작지가 많은 현대 대한민국의 경작지 비율이 한반도 전체 국토에서 약 15%에 불과하니 조선시대는 얼마나 적었는지 상상이 간다.), 게다가 가뜩이나 본래 경작지 비율이 적었던 한반도에서 갑자기 19세기에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미 모든 경작 가능한 토지가 거의 경작되었다.


쉽게 말해서 조선은 "농업 기술력" 등은 굉장히 발전했으나, 그에비해 "농업 생산량"은 엄청나게 떨어진 것이다. 더 쉽게 비유를 빗대어서 설명하자면 전쟁무기들은 엄청나게 강했는데 막상 전쟁을 하면 잘 못하는 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이해하면 알기 쉽다.


조선시대의 초기 인구수는 500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고려시대 말은 한국 역사상 가장 전쟁이 많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한반도 전체 인구수가 오히려 엄청나게 격감되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조선시대 전기 때까지도 인구수 증가는 아예 불가능했다. 세종대왕이 성군이긴 하지만 불행히도 조선시대 초기 때는 평화와는 거리가 먼 시대로 고려시대보다는 전쟁이 훨씬 적었으나 그래도 아직까지 군사 쿠데타나 내전, 반란(대표적으로 이시애 장군의 군사 반란) 등이 자주 빈번하게 발발했다. 그리고 중기 때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으로 조선 전체 인구수는 또 격감한다.


한류.jpg


게다가 조선은 늘 가난하고 굶주린 국가였기 때문에 굶어 죽는 사람이 많다보니 인구수 증가는 불가능했다. 그러다가 해외에서 가져온 "고구마""감자"의 도입이 조선의 인구수를 갑자기 증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고구마, 감자의 도움으로 더 이상 굶주린 백성이 없어졌기에 조선의 인구수는 갑자기 1000만명으로 늘어났고 그렇게 대한민국까지 인구수는 계속 늘어난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뿐 아니라 근대시대의 거의 모든 국가들에 다 일어나는 현상이다. 근대시대 이전에는 동서고금하고 중국이나 일본이나 중동, 중앙아시아(몽골과 튀르크), 유럽 할 것 없이 전부 다 전쟁이나 기근 등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인구수는 오히려 계속 격감했는데 "고구마" "감자" 같은 구황작물의 등장으로 더 이상 밥 굶을 걱정이 없어졌고 그러면서 지구의 인구수가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19세기까지 인구 증가에 대응하여 모내기, 갱답, 언전(제방 농법) 등으로 논면적을 확장했으나, 갑작스레 인구증가율이 정체되고 1개의 농가당 평균 경작지 규모가 줄어드는 영세화가 진행되면서 농업 발전의 한계점을 맞았다.


2. 계급제 사회구조와 제도적 한계


한류.jpg


조선은 강력한 유교적 계급제 사회로 양반(군인, 문관), 대지주 같은 집권층들이 사유지의 대부분들을 소유했고, 백성들도 사유재산이 가능한 조선이었으나 현실은 농민 다수는 고율의 전세(田稅) 때문에 사유지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았고, 게다가 요역 등 각종 부역 부담에 시달렸기에 제대로 농사에만 집중하기 힘들었다. 애초에 죽을 힘을 다해 농사를 지어봤자 땅의 주인인 대지주들이 다 가져가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해서 대지주들이 전지(田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대규모 상업 농장이나 자본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던 셈이다. 또, 해외 식민지 개척, 교역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농업대국처럼 방대한 해외 농지와 노동력을 흡수할 수 없었다.


사실 조선시대가 속한 한반도라던가 일본 열도의 경우는 땅도 척박한 데다가 농사 짓기가 쉽지 않은 척박한 땅이기 때문에 자력으로만 국가를 유지할 수가 없는 땅이었다. 그렇기에 조선이나 일본이 정상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해외 식민지 개척이나 교역이 반드시 필요했다.


중국의 경우도 북부가 시베리아 혹한이기 때문에 농사가 아예 불가능했다(중국 북부는 겨울에 영하 50도 밑에까지 떨어질 정도), 그렇기에 중국은 끊임없이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들을 정복하면서 그런 한계점을 극복했다. 이런 영토 정복뿐 아니라 중국의 역대 한족제국들 중에 한나라, 송나라, 대당제국, 명나라는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설치하고 운영하면서 중국의 상인들이 중동, 아프리카, 유럽까지 진출하면서 제국에 막대한 이득을 가져왔다.


한류.jpg 고려인 상인들과 중동 아랍 상인들의 해상 무역 장면 Ai 그림


그리고 고구려의 경우도 정복활동을 통해 국가를 발전시켰고, 고려의 경우도 활발한 해상 무역으로 국가 발전을 이뤄왔다. 이는 고대 ~ 중세 일본도 마찬가지로 해상 무역을 통해 국가 발전을 해왔다. 오스만 제국도 조선과 국내적 상황은 마찬가지였는데, 오스만 제국이 농업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오로지 큰 영토와 교역 덕분이었다.


즉, 각국마다 자국이 가진 지형적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한 길은 뚜렷했던 것이다. 고대~중세 중국 역대 한족제국들은 영토 정복을 통해, 오스만 제국이나 고려나 일본은 해상 무역을 통해 말이다.


그런데 조선은 뭔가? 고구려처럼 과도한 영토 정복을 한 것도 아니었고, 고려나 일본처럼 해상 무역을 통해 국가 발전을 이룬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농업"을 통해서만 경제 발전을 시도해왔는데 문제는 한반도 지형 자체가 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21세기 현대시대인 대한민국에서조차 농사가 쉽지 않아 대한민국은 IT, 각종 예술 산업(게임, 케이팝, 영화, 드라마 등), 반도체, 무기 방산 산업, 자동차 산업, 2차 제조 가공, 각종 제조업 등으로 돈을 벌어 먹고 살지 뭔가 한반도 자체에서 농사를 해서 수출을 해서 막대한 수입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 일본은 쌀 수출은 커녕 자국민이 먹을 쌀조차 없어서 이대로면 주식을 "밀"로 바꿔야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조차 이럴진대 대한민국보다 훨씬 농업 기술력이 떨어진 조선은 말해 뭐하겠는가?


그렇기에 조선은 고려가 해상 무역을 통해 쌓아놓은 국가 재정을 소비해가면서 초기 때까지는 눈부신 군사력, 과학 기술력, 수학, 천문학, 문명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외침, 전쟁, 내전, 기근, 반란 등을 당할 때마다 국가 재정은 빠르게 고갈되었는데 그 고갈된 재정을 회복하지를 못해서 결국 후기 때 구한말에 와서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3. 농업 기술 혁신의 한계


조선시대 말기 때 고구마, 감자 같은 신작물 도입과 이앙법 확산(18세기)이 있었지만, 당시 근대시대 19세기 후기~20세기 쯤에 영국에서 이루어진 농기계화, 비료공업, 종자개량 같은 근대식 농업혁명은 거의 수용하지 못했다. 예컨대 영국은 18세기 후기부터 윤작법, 개량종, 증산용 도구 등을 만들었지만, 조선에서는 오스만 제국과 똑같이 국가 정부 주도 농정과 소작제 구조의 한계점으로 인해 그러한 농업혁명이 발생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조선시대 초기까지를 "군란의 세기"라고 본다면, 말기인 19세기는 "민란의 세기"였기에 홍경래의 난(1812년), 임술민란(1862년), 동학농민전쟁(1894년) 등 대규모 민중 반란들이 각종 세금 정책에 반발하면서 발발했고, 이 반란들은 세금이 가장 큰 원인이긴 했으나 토지생산성 한계도 근본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즉 18세기에 이룬 소농민 주도의 경작지 확대에도 불구하고, 19세기에는 고구마, 감자의 도입으로 갑작스런 인구 증가를 겪었으나 그에 대비해 농업 발전이 이뤄지지 못해 더 이상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여지가 없었고 다수 농민의 삶은 나아지긴커녕 점점 최악으로 치달았기에 불만들이 폭발한 셈이다.


이처럼 조선은 초기 때 세종대왕 당시의 높은 국방력과 과학기술, 수학, 천문학, 예술, 문명 수준에도 불구하고, 큰 영토나 노동력 동원, 해상 무역, 자본 축적이 부족했기에 농업 생산과 시장 확대에도 구조적 한계를 지녔다. 영국은 아메리카 개척과 근대식 산업화, 농업 발전을 통해 많은 곡식들을 생산해내며 농업패권을 마련했으나, 조선은 오스만 제국처럼 전통적 농경 경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조선은 오스만 제국은 정치적 보수화, 확고한 신분제 계층 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농업 강대국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오스만 제국도 조선처럼 정치적 폐쇄성, 확고한 신분제 계층 구조라는 공통점을 겪고는 있었으나 오스만 제국은 큰 영토와 교역 덕분에 농업 강대국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의 농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해외 식민지 개척, 해상 무역을 해야했다.




4. 중국, 한국, 일본은 밀 농사에 오히려 더 적합한 지형


중국 대륙, 한반도, 일본 열도는 세계적으로도 어마어마하게 추운 혹한의 북반구 지역이고, 한반도의 경우는 아무리 농사 짓기 적합한 농번기 때도 0.5모작에 불과하다.


이는 중국 대륙, 일본 열도도 비슷해서 중국, 한국, 일본을 비롯해 튀르키예, 중동, 러시아, 유럽 등등등 같은 같은 위도의 아시아, 유럽 국가들은 농사가 불가능한 농한기와, 농사가 가능한 농번기가 따로 정해져있다.


하지만 농사로 따지면 "축복받은 땅"이라 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이나 남아프리카 지역, 아메리카 지역의 경우는 1년 365일 무더운 날씨를 가졌기 때문에 농한기가 존재하지 않고, 농번기만이 존재하는데 그 농번기도 기본 3~4모작이 가능하다고 한다.


게다가 여름에만 있는 강수량 차이로 토양 유기물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는 데다가, 토질까지도 안좋지만, 앞서 말했듯 조선은 기술력은 좋아서 그것들을 극복할 퇴비농법 이양법을 발명해서 한계점들을 극복해냈다.


한류.jpg


하지만 조선은 워낙 춥다보니 온돌을 건설하기 위해 산에 나무들을 전부 벌목해서 후기 때에는 전국에 나무 한 그루도 없는 민둥산이 되면서 조선 전역이 굉장히 건조한 기후가 된다. 조선 전역이 벌목으로 인해 아예 민둥산이 되면서 건조한 기후로 됐고 그로 인해 더 추워져서 땔감을 위해 그나마 남아있는 나무들까지도 벌목했기에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농업 용수 소비가 높은 쌀 농사를 주력으로 했으니 농사가 잘될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즉, 조선은 차라리 쌀 농사를 포기하고 밀 농사에 주력했어야 됐다. 조선이나 중국, 일본은 오히려 밀 농사에 더 적합한 지리와 지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까지 보자면 비가 올때 이 물을 저장할 시스템이 필요했는데 벌목으로 자연스럽게 담수 시스템까지 박살냈기에, 툭하면 가뭄이 찾아온 것이다. 이럴 때는 산에 나무들을 무지하게 많이 심고 저수지와 보 등을 건설해서 증축해야 됐는데, 조선의 혹한 추위는 현재 대한민국의 겨울 추위와는 비교도 안되게 엄청나게 추웠다. 그때는 지구상에 지구온난화라는게 발생하기 전인데다가, 조선은 원래 지독하게 추운 겨울을 가진 국가였기에 이 미친듯한 혹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 나무들을 마구잡이로 벌목했기에 아무리 국가 정책 사업으로 산에 나무들을 계속해서 심어봤자 그 즉시 작살났던 것이고, 고구마나 감자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워낙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수리 시설까지 들어내고 사유지, 경작지로 만든 데다가 화전민까지 매우 많았기에 후기 때 조선은 마치 인류멸망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라는 게 딱 들어맞을 정도로 스스로 파멸을 향해 고속질주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 세계 최강의 기병대인 팔기군을 앞세워 조선을 초토화시킨 청 제국(청나라)의 경우도 조선을 완전히 식민지화 시키지 않고 군사적 개입만 한 이유도 조선이 워낙 가난하기 때문에 식민지배 해봤자 손해만 더 막심했기 때문이라는 사학계의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이 말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닌게, 식민지배를 하려면 어찌됐든 세금을 정기적으로 바칠정도로 국가가 돌아가야 됐기 때문에 아예 죽음의 땅이나 다름없는 조선을 식민지배하려면 정상적인 경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됐고 그러려면 오히려 식민지배국인 청 제국이 더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다.


또, 러시아나 일본이 굳이 후기 때 구한말 조선을 공격하거나, 일제강점기가 들어서지 않더라도 "이미" 조선은 사실 죽은 국가였던 것이다. 일제강점기는 "이미 스스로 죽은 조선"에 마지막 한 방을 날린 것일뿐, 후기 때 조선은 강성하던 초기 조선을 생각하면 안 된다. 물론 이 문제는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2공화국 시절까지도 그랬다. 가뭄 때문에 용수의 지속을 위해서 산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주장과 추운 북반구 한반도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서 나무를 벌목해야 된다는 주장이 항상 논쟁 대상이었고 용수의 문제는 연료의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연탄의 도입으로 인해 드디어 이 추운 한반도 겨울을 극복하는 데 성공하면서 그때서야 농업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TS. "미국 패권"의 근간은 "농업"


세계 역사적으로 "세계 패권국"들은 대부분 탄탄한 농업 기반 위에 성립됐다. 농업은 인구를 부양하는 식량 공급과 세금을 통한 자본 축적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대 중국 한나라, 당 제국은 동북아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영토들을 정복했고 그 중 한나라, 당 제국이 정복한 동남아시아 영토들을 통해서는 농업 발전을 시도했으며, 로마 제국은 지중해 연안의 곡물밭(특히 이집트, 아프리카 곡창지대)에서 곡물을 조달하여 거대한 인구수를 먹였고, 근대의 영국과 같은 유럽 왕국들은 남아메리카 해상 식민지에 면화, 설탕, 곡물 농사를 지어서 부를 축적했다. 농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하여 경작할 수 있는 농사는 곧 국가의 경제력과 직결된다. 농업이 발달하면 잉여생산물이 발생해 도시와 공업 노동력으로 이전하고 상업, 금융 자본으로 확장할 수 있다.


세계사에서 세계 패권국들 중에 유일하게 "농업"이 아닌 제국은 대원제국(원나라) 뿐이다. 중세시대의 세계 패권국이었던 대원제국(원나라)는 세계 정복을 통한 오로지 "군사력"만으로 세계 패권국이 된 세계사에서 유일한 케이스로, 이는 대원제국이 농업이 아닌 군사력이 기반이 된 세계 패권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정복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만으로 할 순 있어도, 제국 운영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만으로는 할 수 없었다. 결국 대원제국(원나라)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인해 세계 정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농업" 기반이 아니다보니 "농업" 기반의 다른 제국들보다는 오랫동안 존속하지는 않았다. 뭐, 물론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도 엄밀히 따지면 팍스 브리타니카 시절로만 보면 존속 기간이 짧긴 하지만 말이다..


g.jpg


오늘날의 패권국인 미국은 건설 초기부터 농업을 미국 발전의 근간으로 삼아 막대한 경제 발달을 이루었다.

18세기 후반 독립전쟁 당시의 신대륙인 북아메리카는 따뜻하고 무더운 기후였으며, 농사를 지을 농지가 풍부했고, 초기 미국인의 인구수들 중 약 "90%"가 농업에 종사했을 정도였다. 애초에 처음 미국은 군대란 것도 없었기에 알아서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키는 자경단이 생겨났고 그래서 미국인들이 지금까지도 총을 늘 휴대하는 전통을 가진 이유도 그때문이었다. 원래 군대가 존재하지 않았던 오합지졸이었던 미국은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지켜야했기에 개인이 총을 늘 소지하고 다녔던 것이다.


최초 이민자 대부분이 식량 자급을 위해 작은 농장들을 일구었고, 신생국가인 미국은 외국 농산물보다 자국산을 중심으로 경제를 꾸려나갔다. 면화, 담배, 옥수수 등 작물 생산은 인구 급증과 맞물려 꾸준히 증가했으며, 여기에 기반한 식료품 판매는 초기 미국 경제의 중요한 축이었다.


19세기에는 농업 혁신이 미국 발전을 견인했다. 이렇게 농사로 인해 경제를 발달시킨 미국은 부유해졌고 그로 인해 1803년에는 루이지애나를 매입해서 싸움을 하지 않고 공짜로 땅을 먹었고, 1848년에는 완전히 오합지졸이 된 멕시코와 전쟁(미국이 경제력이 넘사벽으로 발달했고 스페인은 내전으로 인해 경제력이 완전히 추락하면서 당시 스페인 군대는 오합지졸의 대명사로 불렸기에 미국이 일부러 스페인과 전쟁하려고 사건을 조작했다는 음모론까지 나왔었다)을 해서 서부 지역이 미국에 편입되면서 수백만 헥타르의 농지가 개척되었다.


이런 서부 개척은 호민관법(Homestead Act, 1862년) 등 정착 지원 정책으로 더 촉진되어 수많은 농가가 세워졌다.


미국의 농가 수는 1850년 약 140만에 불과했으나, 1880년 400만, 1910년 640만까지 폭증했다. 농가 수 증가는 땅 개간과 생산력 증가를 반영한다.


그리고 2차대전 때 일본제국이 미국을 선제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군보다 압도적으로 실전 경험이 훨씬 더 높은 일본군은 초반에는 해군력, 공군력에서도 미군보다 약간 더 우세했었다. 미국에서도 자신들이 그동안 너무 평화에만 찌들어있었기에 일본군에게 번번히 패배한 것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상황은 금새 역전된다. 왜 일까? 바로 오히려 이런 평화가 미국의 진짜 "무기"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수많은 농가들이 공장을 지원했고, 미국의 공장들은 방산품들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반에 일본군이 미군을 아무리 죽여도 미군은 계속해서 증원되서 왔다. 이 때 일본군이 느꼈을 공포는 마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느꼈을 나치 독일군의 공포와 비슷했으리라. 아무리 미군을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몰려오는 미군들에 일본군은 압도적인 공포를 느낀 것이다. 그렇다. 미국의 진짜 무서움은 국방력이 아니라 바로 평화로 인해 그동안 쌓아 올린 "농업 생산력"과 끝없는 "자본력" 그로 인해 발달한 "생산력"이었다. 코끼리는 개미 1마리를 쉽게 이길 수 있지만, 개미가 100마리.. 아니 1000마리가 모이면 코끼리도 이길 수 있다. 이렇듯 근대시대로 오면서 평화와 농업은 단순한 개념을 넘어 "국방"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2차대전 후에 아시아, 유럽은 전쟁 때문에 전국토가 전쟁터가 되어 가난해진 반면에 미국은 싸우지 않고 오랫동안 평화를 누리며 농업 생산력를 늘린 덕분에 혼자서 막대한 부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자연스럽게 "경제 패권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든 미국의 패권 유지에도 농업은 근본적 기여를 했다. 미국은 자국내 풍부한 농업 생산 덕분에 국제적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혼자서 안정적으로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외교, 전략 수단으로서도 좋았다. 미국은 식량 원조(푸드 포 피스, 국제 식량계획 등)를 통해 우방국과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며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케네디, 존슨 행정부 시절의 PL 480 법안(1954년)을 통해 미국 정부는 농업 잉여를 공여국 및 우방국에 식량 지원하고, 이를 소련vs미국의 세계패권충돌이었던 대(對)냉전 외교 전략의 일환들 중 하나로 활용했던 적이 있었다. 이처럼 식량 원조는 상대국의 정책에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고, 경제 발전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시장과 규범 설정에서도 미국 농업은 역할을 했다. 미국은 주요 농산물 가격 형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국제농업기구 등을 통해 품질, 안전 규격을 주도했다. 가령 미국산 콩, 옥수수는 시장에서 거래 기준이 되며, 미국의 GMO 정책과 지재권(IP) 제도는 다수의 개발도상국 농업에도 파급된다. 미국의 유엔 식량기구(FAO) 기여도는 1위로, 미국은 국제식량안보 회의 등을 통해 "자유무역 기반 식량체계"를 주장하며 농식품 패권을 간접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ERS)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도 세계 최대 규모의 농본주의 국가로, 2023년 미국 곡식 수출액은 1,740억 달러로 1998년(573억 달러)의 3배 이상 성장했다. (미국은 현재 유럽연합에 이어 세계 2위의 농업 무역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건설 이래 미 농업은 국내의 부(富) 축적과 인구 부양, 그리고 농업 혁신의 토대로 작용하여 미국을 국제적 농업부국으로 키웠다. 21세기에도 미국은 국제 최대 곡식 수출국 중 하나이며, 풍요롭고 부유한 좋은 농업 기반은 공급 안정과 물가 통제에 기여해 경제 측면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말레이시아 최초의 백인 왕국 "사라왁(Saraw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