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초, 세계 패권국가였던 대원제국의 세계 패권 질서가 해체되면서, 영락제는 정화의 대함대를 출병시켜 명나라의 영향력을 중동,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전역까지 확장시켜 나갔다.
그리고 그때까지 "자와 힌두교"를 국교로 삼고 만달라 체제를 정치체제로 하는 인도네시아의 해상 대제국인 "마자파힛 왕국(인도네시아어: Kemaharajaan Majapahit)"에게 괴롭힘을 받던 브루나이 왕국이 살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마자파힛 왕국이란?
한때 세계 패권국가로 등극한 대원제국(원나라)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동남아시아까지도 침략하면서 인도네시아까지 정복하였고, 인도네시아 최대의 해상 왕국인 마자파힛 왕국까지도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기후"였다.
세계적으로 칼바람이 몰아치고 동장군들이 기승을 부리는 춥디 추운 혹한의 중앙아시아 대초원지대를 군사 본부로 삼아서 세계를 정복해 나갔던 몽골제국의 후계 국가인 대원제국(원나라)은 추운 기후에는 강했지만, 반면에 자신들이 살아왔던 기후와는 완전히 정반대로 다른 무더운 열대 기후는 적응을 하지 못했다.
다만, 역시 세계 1위의 군사력을 자랑한 대원제국(원나라) 답게 동남아시아 정복까지는 성공했는데 주둔군들이 장기 주둔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원제국은 미얀마를 정복할 때도 그렇고, 마자파힛 왕국을 정복할 때도 그렇고 군사 정복하는 데는 성공했는데 장기 주둔은 하지 않고 주둔군들이 철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듯 당시 동남아시아 해양부 ~ 도서부 최대의 해양 대제국이었던 인도네시아의 마자파힛 왕국은 대원제국의 식민지배 하에서 간신히 해방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바로 "황금기"뿐이다.
인도네시아의 해양 왕국 마자파힛 왕국의 수도에 있는 석조 유적
그리고 먼 훗날, 마자파힛 왕국은 황금기를 누리며 현재의 동티모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일부 등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브루나이 왕국이 마자파힛 왕국의 먹잇감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때마침 명나라의 최전성기 황제인 "성조 영락제(永樂帝)"가 등극하고 정화의 대함대를 보내 세계 질서를 구축해 나가던 15세기 초였다.
명나라의 영락제는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영락제는 옛날 세계 패권국가였던 대원제국(원나라)처럼 한족제국인 명나라도 세계 패권국으로 올려놓고 싶어 했고 세계 질서를 구축해 나갔다. 하지만 대원제국의 세계 패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대원제국(원나라)은 오로지 군사력만으로 세계를 정복해서 세계 패권 질서를 구축했다면, 명나라는 외교적 수단이나 경제력까지 총동원해서 동시에 자신의 보호국들을 늘려나가는 방식으로 세계 질서를 구축해 나갔다. 이는 근세시대 때 명나라뿐 아니라 근대시대 때 대영제국(영국)이나 오늘날 미국도 쓰던 방식이었다.
그리고 명나라의 정화는 브루나이 왕국의 요청을 승낙해서, 정화(鄭和)의 대함대는 "제2차 남해 대원정(1407년 ~ 1409년)기간" 들 중 300여 척의 군함대, 2만 8천여 명의 군인, 군사 외교 요원들을 대동하면서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 군사력을 이끌고 사실상의 총포 외교의 원조격인 마자파힛 원정을 1408년 단행했다. 그 결과 당시 마자파힛 왕국의 국왕인 "마하랏쟈 까르낫드릿야(Maharajadhirat)"의 친아들을 인질로 포획해 명나라로 끌고 가고 마자파힛 왕국은 더 이상 브루나이 왕국에게 간섭 및 공납인 "캄포르" 요구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경고했다. 마치 오늘날 경찰국가의 역할을 수행한 "미국"처럼 말이다.
당시 영락제 치세 때 명나라의 군사력은 세계 1위로 스페인보다 강력했다. 그런 명나라의 정화의 대함대가 최첨단 대포들을 가지고 협박하는 데 당할 수가 있을까? 결국 마자파힛 왕국은 곧바로 엎드려 항복했다. 하지만 당시 영락제 때 명나라는 오늘날 미국과 비슷한 세계 질서를 지향했다. 그렇기에 마자파힛 왕국이나 브루나이 왕국을 영구 점령하거나 식민지화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명나라의 세계 질서, 영향력 확대, 조공 질서 재확립을 위한 군사, 외교적 조치였다. 이는 사실상 마자파힛 왕국에 속해있던 브루나이 왕국을 강제로 떼어낸 후, 조공 질서를 재정립시켜 명나라의 세계 질서 속에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명나라의 보호국이었던 브루나이 왕국(Kesultanan Brunei)
이제 세계 패권국은 단순히 군사력만 강해서는 안 되고, 자발적으로 세계 모든 국가들이 그 질서에 들어오게끔 해야 된다. 그러려면 다른 국가들을 강제로 침략하고 식민지배만 해서는 세계 패권국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국가는 "제국주의 국가"만 될 뿐이지, "세계 패권국"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어쨌든 그 이후, 마자파힛에 대한 종속적 관계를 탈피한 브루나이 왕국은 마자파힛 왕국은 명나라에 대한 절대 충성을 맹세했고, 정화의 대함대는 브루나이 왕실에 명나라 황제의 인장과 책봉문을 하사하면서 브루나이 왕국은 명나라의 보호국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명나라는 다시 한 번 마자파힛 왕국에게는 다시 한 번 더 이상 브루나이 왕국에게 공납을 요구하지 말라는 경고를 내렸다.
이로써 브루나이 왕국은 명나라의 "세계 질서" 안에 편입되면서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 인도네시아의 해상 왕국 마자파힛 왕국, 술루 술탄국 등 주변 해상 왕국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됐다.
그후, 쭉 계속 내리막길로 떨어진 마자파힛 왕국은 중국계 무슬림들이 실권을 잡고 있던 수많은 지역들 중 하나였던 "드막 술탄국"의 침입에 시달리다 마침내 1527년 즉 16세기 중엽에, 드막 술탄국의 새로운 국왕 트릉가나의 마지막 공세를 당해내지 못하고 결국 드막 술탄국에 흡수돼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