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585년쯤에 스페인 왕국(에스빠냐 왕국)의 바스크 지방에서 태어난 까딸리나 데 에라우소는 어린 나이에 수녀원에 맡겨졌어요. 그 시절의 가톨릭 사회에서 스페인 여자의 삶은 결혼 아니면 창녀나 매춘부, 성노예, 수녀원뿐이었지요. 그러나 까딸리나 데 에라우소(Catalina de Erauso) 일명 "남장 수녀"는 15세가 되던 해, 수녀원 내의 규율과 자신을 괴롭히던 수녀와의 다툼을 계기로 수녀원을 도망갔지요. 그녀는 발각되지 않고자 머리를 깎고 남성복을 입었으며 "쁘란씨쓰꼬 데 로욜라"라는 가명으로 그 나이부터 남자으로서의 삶을 시작했지요. 이것이 그녀가 수많은 여자들과 연애&커플, 잠자리 섹스, 결혼하게 되는 사건의 발단이었지요.
남장을 해버린 까딸리나는 스페인 본토를 떠나 대항해시대의 물결을 타고 라틴 아메리카(21세기의 파나마, 페루, 칠레, 볼리비아 등)으로 탐험을 갔다고 해요. 그녀는 그곳에서 여자 탐험자가 되어서 잉카 여자 원주민들이나 칠레의 마뿌쩨 원주민과의 충돌에 참여했지요.
이 과정에서 그녀는 남자의 신분으로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현지의 스페인 여자들 혹은 메쓰띠쏘 여자들과 수많은 연애, 섹스 사건에 휘말렸다고 해요. 그녀는 술을 먹고 방탕하게 섹스를 하고 도박에 빠졌으며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결혼 제안을 받거나 커플 관계를 맺는게 흔했다고 해요. 취미가 섹스와 성매매였던 그녀(까딸리나 데 에라우소)는 기록에 의하면 다른 수많은 여자들과의 스킨십이나 섹스들을 즐겼으며 자기의 생물학적 성별을 철저히 숨긴 채 "남자"로서 여자와 섹스를 나눴다고 해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여자가 여자와 섹스를 했는데 들키지 않았다니..? 그래서 서양사를 배우는 사람들은 그녀가 여자이지만 트랜스젠더.. 즉 여자의 얼굴과 가슴이나 몸을 하고 있지만 남자의 성기를 달고 태어난 "양성구유"가 아니었을까 추정하고 있어요.
그녀가 레즈비언적 성향(혹은 트랜스젠더적 성향)을 드러내며 여성들과 섹스나 커플 행위를 맺게 된 결정적 사건들은 페루에서부터였지요.
1번 째는 페루의 뜨루히요라는 어떤 지방의 어떤 상점 주인의 아내와의 섹스였지요. 남편이 없는 시간을 틈 타 카운터 뒤에서 서로의 다리를 애무하거나 깊은 스킨쉽을 하다가 발각되어 이 사건으로 에라우소는 급히 도망가야 했으며 이 기록은 그가 여자와 육체적으로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었음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리고 2번 째는 칠레의 꼰셉시온이라는 지방에서 일하면서 자기의 친오빠인 미겔 데 에라우보라는 부자의 비서이자 첩이었던 "베아뜨리스 데 까르데나스"와 애정 행각 등 불륜 관계를 맺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베아트리스가 먼저 에라우소에게 사랑에 빠져 구애하며 숲으로 함께 도망가자고 간청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 부자가 까딸리나의 친오빠였는데(오빠는 까딸리나를 알아보지 못던 것으로 보여요), 오빠의 애인을 까딸리나가 빼앗거나 혹은 오빠가 좋아하는 여자와 섹스를 하여 갈등을 빚기도 했다고 해요.
뚜꾸만이라는 지방에서는 2명의 젊은 여자들과 동시에 약혼 이야기가 오갈 정도로 깊은 섹스를 했고 볼리비아의 뽄또시에서는 성욕이 높았던 어느 미망인의 딸과 결혼 직전까지 갔다고 하네요. 에라우소는 이렇듯 수많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매우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남자으로서의 매력을 보여주며 포옹과 키스 그리고 잠자리 섹스에서의 애무를 통해 커플이 됐다고 해요.
안또니오 데 에라우소가 남긴 회고록인 "약 1625년쯤"에 써진 "비다 이 쑤쎄쏘쓰 데 라 하 알뻬레쓰"에 의하면 그녀(까딸리나)는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하고 혼담이 오갔으며 성적인 접촉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녀(까달리나)는 주교에게 자기가 사실은 "처녀(수녀 출신 여자)"임을 고백해요. 그녀의 몸을 보니까 그녀가 남자가 아닌걸 보고 스페인 왕국과 가톨릭 교회는 충격에 빠졌다고 해요.
그러나 당시 스페인 왕실과 교황청은 그녀가 처녀성을 지켰다는 점(아이러니하게도 남자들과의 성관계는 없었으므로..)을 높이 사며 그녀를 미화했다고 해요. 교황 우르바노 8세는 그녀에게 "남장을 하고 살아도 좋다"는 특별 허가를 내렸지요. 이후 그녀는 멕시꼬로 건너가 "안또니오 데 에라우소"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약 1650년쯤에 멕시꼬의 베라끄루쓰라는 곳에서 눈을 감는 순간까지 여러 일을 하며 여전히 남자의 모습으로 살았으며 수많은 여자들과 섹스를 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고 해요.
그녀가 여러 차례 수많은 라틴 아메리카의 여자들과 커플 행위를 하고 섹스를 하면서 결혼 직전까지 갔던 수많은 일화들은 그녀가 남성의 성기를 가진 양성구유였던 걸 보여주고 있어요. 물론 그녀가 100% 양성구유인지 기록에 확실하게 써있지 않아서 알 순 없지만 미국의 서양사 학자들은 그녀가 양성구유였다고 보고 있지요.
오늘날 까딸리나 데 에라우소는 성소수자 역사의 중요한 인물로 재조명되고 있다고 해요. 단순히 남장을 했던 여자인걸 넘어 자기의 성 정체성을 남자로 규정하고 여자와 사랑과 섹스를 했었던 여자로 평가받고 있지요.
스페인과 멕시꼬에서는 까딸리나 데 에라우소가 수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했던 걸 담은 많은 책과 영화, 드라마들을 현재도 낳고 있으며 2026년 현재까지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 학계에서는 그녀가 후타나리(쉬메일, 딕 걸)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해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