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미노스, 잉카&아즈텍의 여자들은 가슴을 노출

이집트, 미노스, 잉카, 아즈텍 문명은 여자들이 젖가슴을 노출하던 이유?

by 바다의 역사






a) 미노스 문명(크레타 문명): "퇴폐미의 억눌린 관능이 아닌 노출하는 신성"


기원전의 미노스 문명(기원전 2700~1400년경쯤)의 여자 옷은 기원전에서도 가장 파격적이고 독특하지요. 이곳의 여자들은 단순히 더워서 옷을 벗은 것이 아니에요. 그녀들은 "패션"으로서 가슴을 노출했습니다.


미노스 여자들의 옷을 자세히 보면 상체에 꼭 끼는 조끼나 코르셋 형태의 상의를 입었어요. 이 옷은 소매가 있고 허리를 잘록하게 조여주지만 젖가슴 부분만 정교하게 도려내어 젖가슴을 밖으로 완전히 드러내고 받쳐주는 구조였지요. 즉, "어쩌다 보니 보인 것"이나 "가난해서 찣어진 옷"이 아니라 "가장 자랑스럽게 보여줘야 할 곳"으로 "패션"의 의미로 처음부터 젖가슴을 노출하게 디자인된 것이지요.


크레타 섬의 유명한 "뱀의 여신상"을 떠올려 보면 양손에 뱀을 쥐고 젖가슴을 드러낸 그녀의 모습은 공포가 아닌 풍요와 생명력을 상징하지요. 기원전의 미노스 사회는 모계 중심적인 성향의 왕국이었어요. 젖가슴은 남성을 유혹하는 성적 기표가 아니라 생명을 먹여 살리는 "젖과 꿀"으로 숭배받았지요.


해양성 기후의 쾌락적 성문화도 한몫했지요. 크레타 섬은 지중해의 쾌적하지만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곳이에요. 실내 왕궁(끄노소스)은 통풍이 잘 되는 구조였는데 여자들은 답답한 천으로 몸을 감싸기보다 중요 부위(자궁이 있는 하체)는 층층 치마로 보호하되, 호흡과 젖동냥을 담당하는 상체는 바람에 맡기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럭셔리"였을 것이지요.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sex.jpg 미노스 문명의 여자이지만 고증에 맞게 젖가슴을 노출하면 정지가 되니 ai로 이렇게 가슴은 가렸어요; 하지만 실제 미노스 문명의 여자들은 젖가슴은 노출하는게 기본이었어요.


미노스 문명의 여자들의 옷이 젖가슴을 노출하는 독특한 옷이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결정적인 건 20세기 초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Arthur Evans) 경에 의한 끄노소스 왕궁(Palace of Knossos) 발굴이었지요.


발굴팀은 왕궁 벽면에서 찬란한 색채의 쁘레스꼬 벽화들을 발견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라 빠리지엥(La Parisienne)"이라 불리는 젊은 여자의 초상이었어요. 그녀는 짙고 퇴폐미스러운 화장과 세련된 헤어스타일, 그리고 무엇보다 어깨를 감싸면서도 앞부분이 완전히 개방되어 젖가슴이 노출된 형태의 옷을 입고 있었지요.


이 발견은 당시 보수적이었던 동북아시아나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지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선구자 격인 미노스 여자들이 이토록 선정적이면서도 파격적이고 21세기의 아메리카의 깐에 웨스트의 아내인 Bianca Censori(비앙까 셍소리)나 레이디 가가 같은 할리우드 여배우들이나 입을 것 같은 "토플리스(Topless)" 스타일을 했다는 사실은 복식사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사건이 되었지요.


게다가 이는 단순히 옷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문명(미노스)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의도적인 여자의 알몸 노출"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니 더 충격이었던 것이지요.


미노스 여자들의 패션은 한마디로 "관능과 섹시함의 조화"라고 얘기할 수 있지요. 그들녀의 옷은 크게 상의와 하의로 나뉘는데 구조는 다음과 같아요.


상의(Bolero Style)는 소매는 팔꿈치까지 내려오고 어깨를 꽉 조이는 형태이지만 가슴 앞부분은 완전히 도려낸 듯 열려 있는데 이를 "오픈 코르셋" 또는 "볼레로 상의"라고 불러요. 이 디자인은 가슴을 아래에서 위로 받쳐 올려 더욱 강조하는 형태를 띠었지요.


하의(Flounced Skirt) 상의의 과감한 노출과 대조적으로 하의는 매우 풍성했어요. 여러 층의 가로 주름(티어드 스타일)이 잡힌 긴 치마를 입었으며 화려하게 자수와 기하학적 무늬가 들어갔어요.


허리띠(Girdle)는 개미허리처럼 보일 정도로 허리를 아주 단단하고 가늘게 조이는 금속이나 가죽 벨트를 착용했어요. 이는 가슴의 볼륨감을 극대화하는 시각적 장치였어요.

이러한 옷은 미노스 문명의 모든 시눕ㄴ에서 나타나며 특히 의례를 주관하는 여사제나 귀부인 여자들에게서 더욱 화려하게 나타나요.


어째서 미노스 여자들은 가슴을 노출하고 다녔을까요?


미노스 여자들이 가슴을 노출하고 다닌 이유는 단순히 기후가 더워서가 아니에요. 여기에는 깊은 종교적, 사회적 함의가 담겨 있지요.


모계 사회적 성격과 여신 숭배 문화로 인해 미노스 문명은 "대지모신(Great Mother Goddess)"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지요. 여자의 가슴은 생명력을 공급하면서도 다산(Fertility)과 풍요의 상징이었지요. 따라서 여자가 가슴을 노출하는 것은 신성한 생명력을 드러내고 찬미하는 종교적 행위였지요.


해양&열대 섬 문명들은 성과 신체 노출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어요. 미노스 여자들에게 가슴 노출은 수치심의 대상이 아니라 여자로서의 섹시함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지요.


정교하게 제작된 볼레로 상의와 화려한 치마는 그 문명의 경제적 여유를 증명했어요. 노출된 가슴 위에는 값비싼 보석 목걸이들을 걸쳐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도 했지요.


이런 미노스 문명의 젖가슴을 노출하는 여성 옷은 기원전 2700~1450년까지 무려 약 1,200년 동안 유지되며 발전했지요. 이는 고대 로마시대의 전체 존속 기간보다 200년이나 더 긴 기간을 여자들이 젖가슴을 노출하고 다닌 거에요.


전기 미노스(기원전 2700~2000)의 초엽에는 단순히 천을 몸에 감는 형태였으나, 서서히 신체 윤곽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지요.


중기 미노스(기원전 2000~1700)에는 소위 "왕궁 시대"로 불리며 옷이 급격히 화려해졌지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여자들이 젖가슴을 완전히 노출하는 "오픈 코르셋" 스타일이 정착되었지. 유명한 "뱀을 든 여신상"이 이 시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후기 미노스(기원전 1700~1450)에는 여자 옷의 디테일이 더욱 정교해지고 자수 기법이 발달해요. 하지만 기원전 1450년쯤 미케네 문명의 침입과 테라 화산 폭발 등으로 미노스 문명이 쇠퇴하면서, 이 독특한 여자 젖가슴을 노출하는 토플리스 문화도 점차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지요.


21세기 미노스 문명의 이런 여자 가슴 노출 옷은 역사적 고증을 넘어 21세기 예술과 특히 아메리카의 헐리우드 여배우들의 패션에 끊임없는 영감을 주고 있지요.


최근의 3D 복원 기술을 통해 미노스 여인들이 입었던 옷의 질감과 색상이 더욱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는데 학자들은 이 옷들이 리넨(아마포)이나 양모로 만들어졌으며, 보라색(고급 염료)과 황금색으로 장식되었음을 확인했지요. 샤넬, 디올 등 유명 명품 브랜드들은 크레타 섬의 미노스 벽화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어요. 특히 가슴 라인을 강조하거나 층층이 쌓인 치마 디자인은 "미노안 룩"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게임(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 등)이나 영화에서 미노스 문명을 다룰 때, 이들의 독특한 복식은 문명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핵심 요소로 등장하기도 해요.






b) 기원전~고대 이집트 왕국: "태양신 라(Ra) 아래, 린넨 사이로 비치는 관능미 몸매"


기원전~고대이집트의 여자 노출은 미노스와는 결이 달라요. 이곳은 뜨겁운 햇빛과 나일강의 습기가 지배하는 땅이에요.


이집트 벽화들을 보면 귀부인 여자들은 "라시리스(Kalasiris)"라 불리는 속살이 비취는 선정적인 린넨 옷을 입는 경우가 많았지요. 즉, 옷을 입지만 입지 않는 것과 똑같았어요. 하지만 이집트의 직조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좋아서 고급 린넨은 마치 거미줄처럼 투명했어요. 옷을 입었으나 실루엣과 여자의 젖꼭지까지 비쳐 보이는 "시스루"였기에 사실상 이 깔라시리스를 입어도 "벌거벗은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였지요. 그런데 이집트에서는 이렇게 알몸(?)으로 돌아디는게 상류층의 특권이었어요. 이는 몸을 가리는 용도가 아니라 작열하는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피부가 타는 것을 막으면서도 극도로 실용적이면서도 남자를 유혹하는 관능적인 옷이었지요.



sex.jpg 이집트 문명의 여자이지만 고증에 맞게 젖가슴을 노출하면 정지가 되니 ai로 이렇게 가슴은 가렸어요; 하지만 실제 이집트 문명의 여자들은 젖가슴은 노출하는게 기본이었어요.


정반대로 이집트에서 논밭을 갈거나 물을 긷는 평민, 무희, 시녀들은 아예 가슴을 완전히 드러내는 경우가 흔했어요. 나일강의 끈적한 진흙 속에서 노동할 때 거추장스러운 상의는 방해물일 뿐이에요. 땀이 흐르면 닦아내고 강물에 바로 몸을 식힐 수 있는 "알몸"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작업복이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기원전~고대 이집트 여자들은 자기의 몸을 가꾸는 데 집착했어요. 향유를 바르고 화장을 하고 가발을 썼지요. 그녀들에게 탄력 있는 젖가슴과 건강한 육체는 태양신이 주신 선물이었어요. 그것을 감추는 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었지요. 이집트 벽화 속 남녀가 연회에서 젖가슴을 드러내고 꽃향기를 맡는 장면은 음란함이 아니라 삶의 환희(Joy of Life) 그 자체였지요.







c) 마야 문명&아즈텍 문명&잉카 문명: "열대 처녀림의 고온 다습"


여기는 상황은 가장 원초적이에요. 중남미의 열대 정글은 동남아, 남아프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보다도 훨씬 더 무덥고 습할 정도로 숨이 턱 막히는 고온다습함 그 자체에요. 그래서 그 때문에 브라질에 사는 모든 원주민 여자들은 죄다 "알몸"이며, 라틴 아메리카나 캐리브해 열대 섬들의 모든 원주민들은 여자들도 죄다 "알몸"으로 생활했던 것이지요.



sex.jpg 잉카,아즈텍,마야 문명의 여자이지만 고증에 맞게 젖가슴을 노출하면 정지가 되니 ai로 이렇게 가슴은 가렸어요; 하지만 실제 잉카,아즈텍,마야 여자들은 알몸 노출하는게 기본이었어요.


이렇게 지구상에서 가장 무덥고 습한 열대 우림인 마야 문명에서 옷은 곰팡이가 피기 쉽고, 땀에 젖으면 무거워져 피부병을 유발해요. 그래서 마야 문명의 평민 여자들에게 상반신 노출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였지요. 이 마야 문명에서는 젖가슴을 노출하는 걸 넘어서 아예 마야 문명 여자들이 "알몸"으로 생활했지요. 그래야 통풍이 잘 돼서 살결을 스치고 지나가야 체온이 조절되기 때문입니다.


아즈텍 문명도 비슷해요. 아즈텍 문명은 마야 문명보다는 덜 더웠지만.. 그래도 미노스 문명이나 이집트 문명보다 훨씬 습하고 무더웠던건 마찬가지에요. 역시 아즈텍 평민 여자들은 상체를 드러내거나 아예 알몸으로 생활하여 허리에 간단히 띠만 두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풍요의 여신을 기리는 종교 파티에서 여자의 젖가슴은 논밭의 젖줄과 동일시되었지요. 옥수수가 논밭에서 탄생하듯 젖가슴은 아기를 길러내는 숭고한 자궁이었지요.


잉카 문명도 해변가나 아마존 인근 저지대의 여자들은 항상 1년 365일 내내 젖가슴을 노출하고 다니는 토플리스 패션으로 다니거나 "알몸"으로 생활했어요.


잉카 문명에서는 종교 의례적 노출도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잉카 문명에서도 특정 종교 의식이나 선택된 여자들(Aclla, 태양의 처녀)이 목욕 의식을 행할 때의 노출은 신성하게 여겨졌지요.


흥미로운 점은 이들 열대 구석기 문명들(잉카,아즈텍,마야)은 옷을 아예 안 입는 벌거 벗은 알몸으로 생활하긴 했지만 온 몸에 "바디 페인팅’과 "타투", "조개껍질 같은 장신구"를 했다는 것이에요. 젖가슴을 알몸으로 노출했지만 목에는 무거운 조개껍질이나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고 젖꼭지 주변에 바디 페인팅을 칠하기도 했지요. 이것은 맨살 자체가 캔버스였던 셈이에요.




이건 요즘 기준으로 보면 좀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당시 기준으로 보면 꼭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렇듯 우선 기후 영향은 꽤 컸던 걸로 보입니다. 미노스 문명이나 이집트 문명은 고온 건조하고, 중남미 쪽 문명들 다 공통적으로 덥고 고온다습한 열대 환경이었지요. 지금처럼 기능성 의류나 냉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실용적인 옷차림이 우선이었을 가능성이 커요. 실제로 이집트 벽화 보면 남녀 모두 옷이 굉장히 단순하고 얇은 경우가 많고요.


그리고 중요한 건 당시엔 여자의 가슴 노출 자체가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성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문화적으로 “숨겨야 할 신체”라는 인식이 약했던 거지요. 미노스 문명의 조각이나 벽화에서도 가슴을 드러낸 여성상이 꽤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이게 성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종교적·상징적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도 많지요.


"가니까 야한 것"이 되어버린 거지요. 하지만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 같은 열대 지방에서 여자 가슴은 "배(Stomach)"나 "팔(Arm)"과 비슷한 레벨의 신체 부위였어요. 잉카 문명, 아즈텍, 마야 문명에서 여자의 젖가슴은 아기에게 밥을 주고, 장신구를 거는 곳일뿐이었지, 숨겨서 남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시절 기원전의 이집트 문명이나 미노스 문명이나 기원후 16~17세기 후엽의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에 살던 남자들이 여자의 젖가슴을 보고 성적 흥분을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그 흥분은 "훔쳐보는 맛"이 아니라 건강한 번식력에 대한 본능적 끌림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학자들은 추정해요.


21세기의 포르노그래피적 시선(관음증)과는 질감이 다른 거지요. 그녀들에게 젖가슴 노출은 은밀한 침실의 영역이 아니라 광장과 논밭, 신전이라는 일상이었지요.


그 시절 이집트, 미노스,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여자들에게 젖가슴에 흐르는 것은 남자들의 음흉한 시선이 아니라 뜨거운 햇볕과 흐르는 흠뻑 젖은 땀방울, 그리고 아기에게 줄 젖뿐이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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