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여자 원주민 가슴 노출 "토플리스" 금지 정책

필리핀 여자 원주민 가슴 노출 토플리스(Toplessness) 금지 정책

by 바다의 역사




총, 균, 쇠라던가.. 수많은 고고학, 인류학 책들을 보면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 필리핀, 폴리네시아, 브라질이나 카리브해 같은 열대 지방들의 여자들은 알몸으로 생활하던 구석기인들이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물론 필리핀은 브라질이나 캐리브해 열대 섬 원주민들처럼 완전히 구석기인은 아니지만 위도 0도~ 20도 사이의 아열대~열대 지방의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있어서 "옷"이란 건 거추장스러운 짐일뿐이었지요.








인류의 역사를 "옷"의 관점에서 보면.. 기후와 환경이 인류의 복식 문화를 결정지었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21세기야 도덕을 기준으로 보지만 그 전까지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도덕"이 아니라 "기후"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역사적으로 가장 "강대국"이라 부르는 동북아시아(대한민국,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북유럽 등 북반구 고위도 지역은 모두 북반구의 냉대&온대 기후에만 걸쳐 있는 혹독한 추위가 지배하는 지구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들에게 옷은 생존을 위한 필수 방한복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대한민국의 기후만 봐도 매우 폭설과 눈보라, 최강 한파들이 내리치고 있는데 지금 대한민국보다 훨씬 더 추운 조선시대.. 그리고 조선시대보다 훨씬 더 추웠던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추운 "소빙하기"였던 중세 고려시대에는 하루 종일 칼바람과 동장군이 기승을 부렸기 때문에 하루종일 조금이라도 집 안에서 온돌을 쌔게 떼지 않고서는 금방 얼어 죽었다는 기록들이 속출했을 정도니까요.


그렇기에 위의 북반구 국가들에게 있어서는 옷을 두껍게 입지 않는 다는 행위는 곧 "동사", "죽음(死)"을 의미했기에 신체 노출은 죽음과 직결되는 행위였고 이것이 수천 년간 굳어져 "노출=비정상"이라는 관념이 굳게 자리 잡아 형성되었습니다. 이 북반구 국가(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북유럽)들은 생존을 위해 가죽과 털로 온몸을 감싸야만 했고, 이것이 곧 복식 문화의 발달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적도 부근의 열대~아열대 지방들" 즉, 남반구는 다릅니다. 남반구 열대 지방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남반구 열대 지방인 남아메리카의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 캐리브해,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여자들은 얘기할 필요도 없고.. 그리고 폴리네시아~멜라네시아 원주민들(타히티, 하와이, 사모아,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이스터 섬)이나 동남아의 필리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는 1년 내내 고온 다습한 기후였기에 여자들이 옷을 벗는 행위인 상의 탈의 "토플리스(Toplessness)"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존 방식이었어요.



덥고 습한 열대 기후에서 옷은 체온을 지나치게 높이고 땀을 배출하지 못하게 하여 피부병을 유발하고 활동을 저해하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었어요. 그렇기에 이 열대 지방의 알몸 원주민 여자들이 "알몸"으로 돌아다니거나(브라질&멕시꼬&칠레&볼리비아&파나마&엘살바도르&파나마&파라과이&우루과이&꼴롬비아&베네수엘라&캐리브해 열대 섬들) 혹은 젖가슴만을 노출하고 다니는 것(필리핀 등)은 성적인 의도가 아니라 열대의 습하게 찌는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선택하던 가장 효율적인 "생존 방식"이자 "생활 양식"이었던 것이지요.


특히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 필리핀이나 아마존, 캐리브해, 폴리네시아의 열대 지방, 열대 섬 지역처럼 미개하던 구석기 생활을 영위했던 곳일수록 이러한 여자 원주민들의 알몸 생활 방식이 오랫동안 유지되었지요.



그러나 약 19세기~ 20세기쯤 들어서.. 자본주의와 근대화의 물결이 닥치면서 이 "열대 기후적 합리성"은 "문명적 수치"로 격하되었어요.











하지만 다 같은 동남아시아라고 해도 옷을 벗고 알몸처럼 다니거나 젖가슴만을 노출하고 다니는 지방이나 원주민들이 있는 반면에.. 처음부터 노출을 꺼려서 옷을 입고 다닌 지역도 존재하지요.


그렇다면 아열대 지방임에도 원주민 여자들이 옷을 다닌 동남아 국가들은 어디일까요? 그 가장 대표적인 국가들은 바로 "미얀마&베트남"이에요.



동남아시아 내에서도 국가별로 복식 문화가 달랐던 이유는 식민 지배와 영향력, 문명 교류와 종교의 영향 때문입니다.


미얀마와 베트남은 근세 시기인 16세기~ 20세기 근대 시기까지 동남아시아의 패권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미얀마는 군사력에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했으며 베트남은 문명과 기술 수준에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1위였습니다.


베트남인들이 옷을 입고 다닌 이유는 바로 동남아시아에서 중국 문화권(Sinosphere)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1000년이 넘도록 오랜 기간 고대 중국의 식민 지배와 영향을 받았습니다.



1000년이 넘도록 고대 중국의 식민 지배와 영향을 받으며 유교 사상이 깊이 뿌리내리면서 신체 노출을 금기시하는 고대 중국 한족의 문화를 받아들여 일찍부터 상의를 입는 "유교적 남성우월주의와 보수주의" 문화가 베트남 사회에 깊게 정착되었습니다. 유교 성리학에서는 이슬람교나 기독교 못지 않게 여성의 신체 노출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사형에 해당하는 불경한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베트남은 기후가 더움(물론 베트남과 미얀마의 위치 자체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최북단에 위치해 있어서 동남아시아에서 그나마 시원한 편에 속하고 베트남과 미얀마의 고산 지대에는 눈이 내리는 추운 지역도 있습니다.)에도 불구하고, 아주 이른 시기부터 여성들이 "이엠(Yếm)"이라는 속옷으로 가슴을 가리고 겉옷을 걸치는 문화가 정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의 식민지로서 그 영향력을 강하게 받은 베트남의 여성 전통복인 "아오자이(Áo dài)"의 경우는 전신을 하나의 옷으로 두껍게 감싸기 때문에 노출을 할수있는 여지를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베트남의 전통복인 "아오자이(Áo dài)"입니다. 이렇듯 베트남의 옷인 아오자이는 노출을 완전히 차단했기에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건전한 옷으로 유명합니다.


미얀마 역시 인도와 국경을 접하며 불교와 보수적인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노출을 자제하는 편이었습니다. 미얀마(버마)는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영토의 상당 부분이 서늘한 고원 지대입니다. 또한 보수적인 상좌부 불교와 인도의 영향으로 남녀 모두 "롱지(Longyi)"를 입고 상체를 가리는 문화가 비교적 일찍 자리 잡았습니다.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보니 역사적으로도 갈등이 굉장히 많고 사건 사고들이 많았는데.. 특히 꼰바웅 왕조(1752~1885)의 7대 국왕인 "자가잉왕(စစ်ကိုင်းမင်း)"은 서쪽에 있던 영국의 영토를 먼저 공격할 정도로 황금기였고 미얀마의 서부 라카인주에 거주하는 이슬람계 민족인 로힝야족(Rohingya)은 불교 국가인 미얀마 내에서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핍박받아 난민이 된 처지입니다.


이렇듯 21세기에 태국이 관광업으로 뜨고, 인도네시아가 인구빨로 성장하기 이전까지 16세기~20세기까지 동남아시아는 군사력으로는 미얀마가 패권국이었고, 문명과 기술력으로는 베트남이 패권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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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달랐습니다. 이들은 덥고 습한 기후에 적응하며 앙코르 와트나 아유타야 같은 거대 문명을 만들었지만.. 일반 평민 여자들은 노동의 편의와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가슴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는 불교화되기 전에 이미 먼저 "힌두교"와 토착 신앙의 영향으로, 신체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이들 착각하는게 태국, 깜보디아는 불교 국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깜보디아, 태국이 보수적인 불교를 받아들이기 전에 개방된 힌두교를 먼저 받아들였고.. 그 이전엔 성적으로 더 개방된 원주민 사회였으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도 이슬람화되기 전에는 훨씬 성적으로 개방된 오스트로네시아 원주민 사회였기 때문이지요.













필리핀은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보다는 군사력이 훨씬 강했지만(잉카, 아즈텍, 마야는 구석기 상태라 돌을 썼는데 필리핀은 청동기를 썼으니까) 여전히 미개인들이었기에 여자들은 알몸이거나 젖가슴을 노출하는 "구석기적 미개(Paleolithic Context)"로 토플리스 패션을 하고 다녔어요. 이는 필리핀의 열대 기후가 동남아시아에서도 가장 찌고 습하고 무덥기 때문이에요.(물론 1년 내내 64도 이상이라는 브라질에 비하면 필리핀은 애교 수준이지만..)




그런데 여기서 특이 케이스가 바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깜보디아, 태국이에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깜보디아, 태국의 경우는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 필리핀 원주민들과는 비교 따위가 불가능할 정도로 군사력이 막강했고 문명과 기술 수준이 좋았으며 선진국이었으니까요.



태국(시암 문명), 캄보디아(크메르 문명), 인도네시아(해상 세력인 자바 제국&마자파힛 제국)은 방어력 좋은 왕권과 고도를 갖춘 "문명국들"이었습니다. 앙코르 와트나 아유타야 왕궁의 사원을 건설할 정도의 고도 문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인도 문화권(Indosphere)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슬람화되기 전까지 고대 인도에서 신체는 신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것이었기에 고대 로마 제국, 그리스, 스파르타, 이집트, 미노스 문명들처럼 여성 노출에 관대했습니다. 게다가 말레이시아, 깜보디아, 인도네시아, 태국은 열사병을 불러일으키는 무더위 속에서 왕족조차 상체에 얇은 숄(Sbai) 하나만 걸치거나 아예 드러내는 것이 일상이었고 평민 여성들은 당연히 토플리스 패션으로 돌아다니거나 일을 했어야 했습니다. 이는 "미개함"이 아니라 "열대 기후 적응의 결과"였습니다.



이는 마치 브라질 아마존이나 카리브해의 원주민들처럼 열대 우림 속에서 수렵과 채집, 소규모 농경에 의존하는 생활상과 유사했습니다. 거대 문명의 예법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 가까웠기에 필리핀 원주민 여성들은 스페인 식민지배 이전까지 거의 완전한 나체나 간단한 가리개만 한 상태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문명화가 덜 된 구석기적 생활 양식이 열대 기후와 만나 가장 오랫동안 보존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동남아시아에서 깜보디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토플리스와 필리핀의 토플리스는 완전히 그 개념이 달라요. 깜보디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문명국이었지만 너무 더운 기후 탓에 옷을 벗은 것이라면.. "필리핀"은 그 자체로 "옷"을 만들 경제나 기술이 없던 "석기 사회"였기에 옷을 벗었던 거니까요.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가 돌로 큰 석조 종교 건물들을 짓고 왕국 시스템을 만들면서 선진적인 문명국으로 성장하던 것에 비해.. 필리핀 열대 섬은 스페인 왕국이 들어오기 전까지 혼자서 국가는 커녕 미개하던 원주민(Barangay) 수준으로 흩어져 살았어요. 그 시절의 필리핀 원주민들의 생활상은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보다야 강했고 청동기를 쓰긴 했으나 주변 문명국들에 비해서는 한없이 "구석기(Paleolithic)" 또는 "초기 석기 사회"의 모습에 가까웠지요.



image (3).jpg 석기 수준이었던 필리핀 원주민들의 알몸 문화와 개방된 성문화를 보여주는 영화 "Banaue(1975)"에요.



이들은 직조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야자수잎이나 간단히 T팬티만 걸치고 살았으며 여자 원주민들은 거의 완벽히 "알몸(Nudity) 혹은 토플리스 패션"으로 생활했어요. 이는 잉카 문명이나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보다는 덜 구석기적인 형태로, 완전히 개방형 성문화와 복식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필리핀의 이런 "완전 알몸"에 가까운 성 문화와 알몸 문화는 기원후 16세기에 스페인 왕국과 미국, 일본 제국이 필리핀에 들어왔을 때 "가장 교화가 시급한 미개인"으로 낙인찍히는 빌미가 됩니다.








그럼 동남아에서는 가장 미개인이었던 석기 사회였기에 남녀가 죄다 알몸or젖가슴을 노출하며 살던 필리핀은 어떻게 지금은 "옷"이란 걸 입고 살았을까요? 물론 스페인 왕국, 미국, 일본 제국 같은 강국들이 필리핀을 다스리면서 문명화됐기에 가능했겠지만 "구석기 사회"에서 "문명화"된 필리핀의 그 과정을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필리핀의 사례는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와는 완전히 100% 달라요. 문명국(왕국)으로서의 체계가 미약했던 필리핀은 외세에 의해 가장 성폭력과 성적 착취를 심하게 받으면서도, 그리고 토플리스 문화는 전폭적으로 거세되었지요.


기원후 약 16~17세기쯤에 마젤란이라는 사람과 스페인 탐험가라는 사람들이 처음 필리핀의 비사야 열대 섬 등에 도달했을 때, 그들이 기록한 필리핀 원주민(Pintados)들은 온 몸에 문신을 하고, 남녀 모두 아래만 겨우 가리거나 그조차도 없는 거의 알몸 상태였어요. 그나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이 하체나 뭐라도 둘렀던 것과 달리.. 필리핀은 열대 원시림 속에서 구석기적 채집 생활에 가까운 복식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지요.


image (2).jpg 스페인의 마젤란 탐험자들이 필리핀 원주민들을 보고 놀라는 모습이에요.


스페인 선교사들은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 브라질 아마존 알몸 원주민 여자들과 캐리브해 알몸 원주민 여자들, 그리고 필리핀 원주민들의 남녀 알몸을 보고 경악했어요. 그들은 "원주민들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성욕에 지배 받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스페인 왕국의 가톨릭 교리는 원주민 여자들에게 즉각적인 상체 커버를 요구했어요. 스페인 정부는 원주민들을 교회 종소리가 들리는 곳(Pueblo)에 정착시키고 옷을 입지 않으면 미사에 참석할 수 없게 했지요. 필리핀은 완전히 "석기 사회"였기에 오히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이나 깜보디아처럼 거대한 해상 왕국 문화가 버티고 있던 것이 아니었기에.. 외세의 종교와 문화가 들어오면 속절없이 자기들의 알몸 문화가 자취를 감추고 서구화되는 경향을 보였지요. 즉.. 오히려 너무나 석기 사회니까 있는 게 없어서 스펀지처럼 서구 문화를 흡수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스페인 왕국의 2중성이 보이는데.. 스페인 왕국은 겉으로는 이렇게 필리핀 원주민 여자들을 교화시키는 것처럼 보였으나 뒤에서는 몰래 필리핀 원주민 여자들 가운데 섹시하게 생기거나 자기 마음에 들면 납치하거나 성적 착취를 하거나 성노예로 만드는 등을 끊임없이 해서 혼혈 인종을 만들었지요. 물론 남아메리카처럼 완전히 성노예로 만든 건 아니라서 인종 전체가 "메스띠쏘"가 된 남아메리카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렇게 스페인인들에게 성폭력을 당해서 태어난 혼혈인들은 여전히 필리핀 사회의 경제적 상류층으로 자리 잡고 부유하게 살고 있지요.



하지만 스페인 왕국이 필리핀을 다스렸지만 그렇게 영향은 크지 않았는지 여전히 필리핀 곳곳에는 알몸이나 젖가슴을 노출하고 다닌 원주민 여자들이 많이 살았지요.


그래서 약 20세기 초엽쯤에 미국이 필리핀을 다스리면서 "딘 우스터(Dean Worcester)" 장관은 필리핀의 이고롯뜨 원주민 같은 구석기 알몸 사진을 찍어 미국 의회에 보냈어요.


그는 "보세요, 이들(필리핀)은 아직도 알몸으로 다니는 미개인들이에요. 이들은 독립할 능력이 없어요."라며 미국이 필리핀을 다스려야 한다며 얘기했지요.


이에 쪽팔리게 되어 자극받은 필리핀의 엘리트 지식인들은 "필리핀의 쪽팔림을 숨겨야 한다"며 원주민들에게 옷 입기를 더욱 심하게 요구하게 됐으나 여전히 필리핀에는 빨라완(팔라완) 같은 일부 원주민들은 남녀가 알몸이나 젖가슴을 노출하며 석기인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태국(당시 시암)에서 이런 토플리스 문화를 금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외부의 시선 때문이었어요. 약 19세기 중~후엽쯤에 라마 4세~ 라마 5세(쭐랄롱꼰) 국왕은 중국인들과 서양인들이 태국 여자가 가슴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을 보고 미개인 취급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듣게 되고 큰 충격을 받았지요.


물론 근~현대 시기에 태국은 식민지가 되지 않았지만(하지만 21세기 학자들의 연구 결과로는 태국은 명목상으로만 안 됐을뿐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게 점점 힘을 받고 있지요).. 여튼 실질적으로는 식민지였으나 태국은 일본의 명목상으로까지 식민지로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자 스스로 근대화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던 건 사실이에요. 그 정책이 바로 "쁠랙 삐분 쏭끄람(Plaek Phibunsongkhram)" 총리의 "문화명령(Thai cultural mandates)"이에요.



친일에서 친미로 갈아탔었던 쁠랙 삐분 쏭끄람.. 블랙이 아니라 "쁠랙"이에요.


이렇듯 근현대 시기에 들어서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깜보디아, 태국은 자기들 여자들이 알몸이거나 혹은 젖가슴만 노출하는 패션으로 살아가는 걸 부끄럽게 여기면서 이는 "미개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런 "미개함"을 벗어 던지고자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깜보디아, 태국의 정부들(이나 혹은 그들을 다스리던 이방 정부나 권력) 20~21세기에 그곳에 여자 원주민들의 젖가슴 노출인 토플리스를 금지하는 정책을 정식으로 내놓기 시작했지요.



짜그리 왕국의 라마 4세&라마 5세인 "쭐랄롱꼰" 시기부터 태국은 열강(러시아, 중국, 서구 유럽)의 압박과 시선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약 1800년대 중엽쯤부터 라마 4세는 "외국 사절단이 보기에 왕궁 내에서 상의(옷)를 입지 않은 남자나 여자들은 미개인으로 보인다"며 왕궁 내 상의 착용을 지시했지요. 이걸 보더라도 태국을 비롯해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깜보디아, 필리핀 원주민 남녀들이 얼마나 알몸이나 젖가슴 노출을 많이 하고 다녔으며.. 심지어 왕궁에서까지 이렇게 가슴 노출을 하고 다녔다는 걸 알 수있지요. 하지만 이렇게 태국 왕의 지시로 왕궁에서는 서서히 여자 가슴 노출이 줄어들었다곤 하지만.. 1930년대인 현대 시기까지도 태국 시골의 여자들은 여전히 가슴을 드러내고 다녔다는 걸 수많은 증언으로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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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38년부터 집권한 군부 독재자인 "삐분 쏭끄람"은 태국을 당시 국제 열강이었던 일본 제국, 독일 제국, 이탈리아 왕국과 같은 강력한 "추축국" 라인의 근대 국가까지는 못 되더라도 태국을 근대 문명국으로 만들게 하고 싶었습니다. 삐분 쏭끄람은 태국이 근대화된 문명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모자, 신발, 양말, 그리고 상의와 치마 혹은 바지를 입어야 한다고 믿었어요. 이 정책은 국수주의와 결합하여 강력하게 시행되었는데 그러면서 국수주의가 만들어지면서 "왜곡된 역사"까지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대표적으로는 태국인들은 지금은 약소한 민족이지만 기원전의 이집트보다도 훨씬 이전.. 인류 태동기 시절에 태국인들의 조상인 타이족들은 중앙아시아의 알타이 산맥에서 기원한 튀르크족의 후예라는 이 말도 안 돼는 증거나 기록, 사료, 그 어떤 것 하나 아무 것도 없는 태국식 환빠를 만들어내어 이를 태국의 가장 자랑스러운(?) 위대한 역사라는 역사라고 말하기도 불가능한 왜곡된 오류를 가르칩니다. 엄밀히 따지면 역사 시대 훨씬 이전의 선사 시대보다도 훨씬 이전인 인류가 탄생하던 시대에 중앙아시아에 튀르크족의 후손이 타이족이라는 주장은 태국인들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기에 가설이나 루머로도 취급 받지 않는 쓰레기 허위망상이지만 그냥 이 시절에 이런 엉터리 가설, 루머가 생겨났습니다.


문화 명령(Thai cultural mandates) 제10호(1941년 1월 15일) 그 시절에 정부가 발행했던 정식 포스터


그는 "문명국가의 국민은 옷을 입는다"는 신념 하에 1939~ 1942년까지 12개의 "문화 명령(Thai cultural mandates)"이라는 정부 정책들을 12차례에 걸쳐 발표했어요.



문화 명령(Thai cultural mandates) 제10호(1941년 1월 15일)의 태국인 복장 규정


에서 가장 논란의 꽃이 되는 "문화명령 제10호(Mandate 10)"는 태국인 여자들의 가슴을 완전히 가리게 만든 법적 근거입니다.


이 정부 정책은 이렇게 써있어요. "태국 국민은 공공장소나 도시~마을 경계 내에서 부적절한 옷을 입고 다녀서는 안 된다. 부적절한 옷이란 상의를 입지 않거나(토플리스), 단순히 허리에 천만을 두르거나, 속옷만 입는 것을 포함한다."


강제 조항:


1. 태국인 여자는 반드시 어깨를 덮는 블라우스나 셔츠를 입어야 한다.


2. 태국의 쫑끄라벤(바지처럼 입는 천) 대신 서양식 치마(Skirt)를 입어야 한다.


3. 심지어 모자와 장갑을 착용할 것을 권장했다.











그 시절에 많은 시골의 원주민 여자들은 평생 해오던 알몸이나 젖가슴 노출을 버리고 덥고 불편하기 짝이없는 근현대식 옷을 입어야 하는 것에 반발하면서 이 정부 정책에 관해서는 시행 과정에서 반발이 굉장히 심했지요. "열대 지방에서 더워 죽겠는데 왜?"라는 것이에요.


열대 기후인 태국에서 밭일을 하는 여자들에게 근현대식 블라우스는 찜통이나 다름없었어요. 태국인 원주민 여자들은 "평생 이렇게 살았는데 미친 짓이다"라며 경찰이 올 때만 옷을 입고, 경찰이 가면 몰래 다시 벗어버리는 숨바꼭질을 반복했다고 경찰 기록 보고에 정식으로 써있어요.


하지만 삐분 쏭끄람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강제 집행하듯이 시장통에서 상의를 벗은 태국인 여자들을 이잡듯이 단속했고 관공서 출입까지 죄다 금지시켰습니다. 이는 "문명화"라는 명분 아래 자행된 것이지요. 이렇게 군부 독재의 심한 폭주로 인해서 결국 태국의 여자들은 젖가슴을 노출하는 문화 자체가 모습을 감춰서 현재는 볼 수가 없게 됐지요. 국가주의 교육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알몸은 부끄러운 것이라는 도덕 수치심의 주입으로 인해 토플리스 문화는 태국 도심에서 빠르게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럼 태국은 이렇게 토플리스 문화가 모습을 감췄다면 인도네시아와 발리는 어떻게 모습을 감추게 됐을까요?


인도네시아와 발리(Bali)는 "지구상 마지막 낙원"이라고도 서구 사회에 소개되곤 했지요.


인도네시아 특히 발리는 20세기 근대 시기 초엽까지도 여자들의 상의 탈의가 보편적이었어요. 원주민 문화권인 발리에서 가슴 노출은 신성한 종교 건물에서도 허용되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네덜란드 정부의 아이러니가 발생하는데.. 네덜란드 정부는 이를 "부끄럽다"고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지방에 발리를 홍보할 경우에 "아름다운 나체의 섬"이라며 토플리스 발리 원주민 여자들의 사진을 관광 엽서로 찍으며 팔아먹었고 심지어 그렇게 자기들이 욕하던 발리의 알몸 원주민 여자들과 가장 많이 섹스를 즐긴 이방인은 다름 아닌 "네덜란드인들" 본인들이었어요. 오죽하면 네덜란드인들이 너무 많이 다들 그곳 발리 원주민 여자들과 난교 행위를 즐기러 가니까 네덜란드의 인력 손실과 인구 유출.. 등 네덜란드 내부의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번지게 될 정도였지요.



멕시코계인 제시카 알바의 영화 "The Sleeping Dictionary(슬리핑 딕셔너리)"에서 말레이시아 원주민 여자로 출연해 영국인에게 섹스를 가르쳐줄 정도로 개방된 사회



그런데 웃기는 점은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와 전쟁해서 승리하여 독립한 후에 수하릇또 독재 정부는 파푸아(Papua) 뉴기니 서부 지방의 알몸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심하게 복식 개혁을 단행했지요. 인도네시아는 일본과 네덜란드의 지배의 영향으로 더운 기후임에도 옷을 입었는데 파푸아 뉴기니는 아직까지 알몸 원주민들로 생활했었고 일본이나 네덜란드가 동남아에서 빠지면서 파푸아 뉴기니를 다스리던 "주인"이 사라지자 가장 가까운 인도네시아는 빠르게 파푸아 뉴기니를 식민지처럼 먹어버리면서 그곳에 살던 알몸 원주민 여자들을 미개인으로 취급하기 시작했어요.


파푸아 원주민 남자들은 성기에 "꼬뗏까"라는 조롱박만 끼우고 여자들은 상의를 벗거나 잉카 문명처럼 아예 알몸으로 다녔어요. 수하릇또는 이를 인도네시아의 쪽팔림으로 여겨 군대를 보내 강제로 청바지나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히는 "오퍼레이션 코테카(Operation Koteka)"라는 "억지로 옷 입히기(?) 계획"을 1970년대쯤에 실행했지요.


하지만 결과는..? 현재 파푸아 뉴기니의 상태를 보면 알 수 있지요.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들 어떤가요? 아직도 알몸으로 대부분 살아가지요. 그걸 보면 인도네시아의 이 계획이 얼마나 실패작이었는지 알 수 있지요.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들은 인도네시아 군인들로부터 보급받은 청바지나 반바지들을 머리에 쓰거나(바지를 생전 처음보니까 뭐에 쓰는지 몰라서 처음에는 머리에 쓰고 다녔다고 해요).. 심지어는 이상한 악마, 마녀의 물건이라며 불태워버리는 종교 의식을 행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석기 사회에 그냥 "그것"만 준다고 그걸 곧이 곧대로 그 용도에 맞게 쓴다는 건 착각이에요. 과거에 기원후 약 16세기쯤에 스페인 탐험자들이 잉카 문명의 왕인 아따 왈빠에게 기독교 성경을 주니까 "종이(책)"란 걸 생전 처음 본 잉카 사람들과 잉카 국왕인 아따 왈빠는 그걸 냄새 맡고 만지고 씹고 하다가 땅에 버렸다는 얘기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여튼 오세아니아 지방인 파푸아 뉴기니를 볼게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경우만 해도 특히 발리 열대 섬은 약 20세기 초엽쯤까지도 여자들의 가슴 노출이 매우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행위였어요. 네덜란드 정부는 초엽에는 이를 방관했으나 나중에는 도덕을 얘기하며 이를 미개하다며 규정하고 가슴을 가리는 옷을 부탁했어요. 그러나 발리는 원주민 문화권으로 알몸 대한 관념이 개방적이었기에 저항이 심했어요. 본격적인 금지는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와 전쟁에서 승리, 독립한 후 자카르타 중앙 정부가 국가 통합과 이슬람 율법, 근대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이루어졌니다. 특히 수하릇또 정권 시절에는 파푸아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성기 가리개(꼬뗏까)만을 착용하는 문화를 금지하고 강제로 바지를 입히는 꼬뗏까 계획(Operation Koteka)을 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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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글은 "동남아시아"만을 담고 있지만 "알몸 원주민"하면 가장 대표적인게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여자들이기 때문에 이 얘기를 안할 수가 없지요.


잉카(페루), 아즈텍, 마야(중미) 왕국들과 아마존 원주민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습하고 무더운 열대 기후 탓에 알몸으로 생활했지요.


브라질 아마존, 카리브해, 그리고 잉카, 아즈텍, 마야의 여자들은 습하고 무더위 때문에 토플리스를 넘어 그냥 완전히 "알몸"으로 하고 다녔어요.


이스터 섬, 타히티, 하와이 등 폴리네시아와 남미 원주민들은 성(Sex)을 부끄러운 것이 아닌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종교적 행위로 보았지요. 이는 서구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도덕적 타락"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꼭 필요한 삶이자 공동체 행위였지요. 애초에 브라질 아마존, 카리브해, 그리고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글"이라는 개념도 없고 국가로서의 정체성, 기능, 시스템, 법률들이 없었기 때문에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섹스"를 공동체 유지 수단으로 삼았던 거지요.


그래서 잉카 문명이나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사회에서는 만약 남녀가 다툼이 벌어지면 섹스를 하거나 혹은 같은 성별일 경우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다툼을 최소화시켰다고 해요. 이는 법이나 글이 없었기에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브라질 아마존 열대 사회는 이렇게 "섹스"로 사회를 유지하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궁즘즘.. 21세기 현재까지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깜보디아, 태국에서 이렇게 남녀가 가슴을 노출하고 다니는 토플리스인들이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2026년 현재.. "문화 명령"과 근대화의 파도 속에서도 토플리스를 하고 있는 원주민들이 베트남, 미얀마를 제외한 동남아시아 곳곳에 살아있어서 다큐멘터리의 촬영지로 현재까지 많이 인기를 받고 있지요. 그럼 어떤 원주민들이 아직도 가슴 노출을 하고 다닐까요? 동남아시아에서만 알아볼게요.



필리핀의 빨라완(팔라완) 원주민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석기 사회이자 원주민 여자들이 완전히 알몸에 가깝게 지냈던 필리핀 답게 가장 먼저 필리핀이 있지요. 필리핀의 빨라완 원주민들은 현재까지 알몸에 가깝거나 혹은 가슴 노출을 하고 다니는 걸로 알려져있지요.



인도네시아의 파푸아(Papua) 꼬로왓 원주민은 나무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이들인데 인도네시아 정부의 부탁에도 여전히 완전 알몸 또는 야자수잎만 입은 채 살아가고 있다고 해요



동남아시아는 아니지만 브라질 정부(FUNAI)가 보호하는 브라질에 살아가는 "모든 원주민"들은 500년 전 대항해 시대와 똑같이 100% 죄다 알몸으로 생활하는데 이들은 "여자들이 젖가슴만을 노출하는 토플리스"라는 개념조차 없어요. 옷을 입는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지요.



현재 21세기에 들어서도 이런 여자 가슴 노출인 토플리스 문화를 유지하는 곳은 오로지 오세아니아의 폴리네시아 문화권, 필리핀, 남아프리카와 마다가스까르, 인도네시아 파푸아, 뉴기니의 다니 원주민이나 얄리 원주민 등(여전히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고수하며 상의를 입지 않고 생활합니다.) 입니다.


이들이 정부의 정책을 거부하고 알몸이나 혹은 남녀가 젖가슴을 노출하고 다니는 이유는 1째로 이 원주민 남녀들의 거주지가 열대 우림 깊숙하여 습하고 무더운 곳이라 현대 의복이 오히려 생활에 불편하고 비위생적이며 오히려 그 옷들을 입으면 열사병&피부병으로 생명이 위험할지 모르기 때문일 정도로 무겁기 때문며


2째로는 옷이라는 것이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과 종교 의식과는 다른 외부의 것이라고 여기기에 마녀&악마의 것이라는 종교 믿음 때문이에요


하지만 젊은 세대로 갈수록 외부 문물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티셔츠를 입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순수하게 토플리스 문화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는 추세에요.










image (2).jpg 이거 쓰느라 손꾸락이 너무 아프고 힘든데.. 재밌게 보셨다면 팔로워&추천 좀 클릭해줘요~~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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