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후 약 16~17세기쯤에 스페인 탐험자들이 남아메리카에 도달하던 날에 그들이 가진 조총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무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바로 천연두였어요.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이 스페인 소수의 병력에게 무너진 것은 스페인 왕국의 원거리 화력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스페인 왕국군이 도달하기도 전이나 전투 직전에 천연두가 먼저 퍼져 사회 기반을 송두리째 먹어버린 매우 큰 불운 탓이 커요. 당시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구대륙의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는 처녀지(Virgin Soil Epidemic) 상태였기에 치사율은 상상을 초월했지요.
아즈텍 문명이 죽는 과정은 천연두가 어떻게 승패를 갈랐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에요. 약 1520년쯤에 에르난 꼬르떼쓰가 데려온 스페인 탐험자들은 아즈텍의 수도 떼노찌띠뜰란에서 원주민들의 큰 저항에 부딪혀 슬픈 밤(La Noche Triste)이라 불리는 대패를 하고 쫓겨났어요. 그러나 코르테스가 재정비를 위해 물러나 있는 동안 스페인군과 함께 온 흑인 노비 등을 통해 유입된 천연두가 떼노찌띠뜰란을 덮쳤지요.
이 질병은 당시 아즈텍의 국왕이었던 뀌뜰라 우악을 포함해 수많은 귀부인과 부유층, 일반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해요. 앨프리드 크로스비가 쓴 책 콜럼버스가 바꾼 장소(The Columbian Exchange, 1972)에 의하면 천연두는 아즈텍 인구의 3분의 1에서 절반 가량을 사망케 했으며 방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지요. 꼬르떼스가 다시 돌아왔던 날에 보니까 도시는 이미 시체로 뒤덮여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기에 토벌은 손쉬운 일이 되었지요.
잉카 문명의 경우 스페인 탐험자 쁘란씨쓰꼬 삐사로가 약 1532년쯤에 도달하기 전부터 이미 천연두가 문명을 휩쓸고 지나갔다고 해요. 중앙아메리카에서 육로를 통해 전파된 천연두는 약 1520년대의 후엽쯤 잉카 문명에 도달하여 국왕인 와이나 까빡과 그의 딸들을 연달아 눈을 감게 했지요.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책인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 1997)"에 의하면 국왕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두 아들인 아따 왈빠와 우아쓰까 사이의 치열한 아웅다웅을 하게 만들었다고 해요. 삐사로가 겨우 168명의 졸병들을 데리고 잉카에 도달했던 날에 잉카 문명은 이미 전염병으로 인구가 급감하고 아웅 다웅하느라 경제력과 국력이 쪼개져 죽기 직전의 상태였지요. 삐사로는 이러한 슬픔을 틈타 아따 왈빠를 납치할 수 있었으므로 이는 전적으로 전염병이 만들어준 "운"이었지요.
마야 문명 지방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는데. 마야는 단일 문명이 아닌 여러 기원전 그리스처럼 여러 도시 국가로 이루어져 있어 토벌에 시간이 더 걸렸으나 천연두와 홍역 같은 전염병은 인구가 밀집된 열대 지방의 도시들을 먹어버렸어요. 윌리엄 맥닐의 책인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Plagues and Peoples, 1976)"에서는 스페인인들이 가져온 질병이 원주민들의 신체적 저항력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신이 지켜주지 못했다는 심리적 저항 의지까지 꺾어놓았다고 분석합니다.
결국 스페인 왕국이 이들 문명을 쉽게 토벌할 수 있었던 것은 총이나 대포의 화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스페인의 총은 장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명중률이 낮아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점한 원주민 전사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찰스 만의 저서 "1491(1491: New Revelations of the Americas Before Columbus, 2005)"은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가 전염병으로 인해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소멸하는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서술합니다. 즉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은 스페인의 원거리 화력이 아니라 스페인인들이 의도치 않게 가져온 천연두라는 생물학적 재앙이 먼저 도착해 문명을 내부에서부터 무너졌기 때문에 무너진 것이에요. 게다가 더 골때리는건 이들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식인종들이었기에 인육을 하고 시체를 먹고 장례를 하지 않고 버렸는데 게다가 습하고 무더운 열대 기후인 탓에 천연두가 어마어마하게 퍼졌던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