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역사적 유래는 고대 국가의 제천 행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부식 장군이 1145년에 편찬한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유리왕 시대에 이미 국가적인 제례와 축제가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나온다. 고대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와 당서의 신라전에는 신라인들이 정월 초하루에 서로 하례하며 국왕이 잔치를 베풀고 일월신에게 절했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설날은 방어 체계의 허점을 노리는 기습의 시점이자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시기였다. 1637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설날을 남한산성 성곽 안에서 치뤘다.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1637년 기록에 따르면 당시 조선군은 극심한 혹독한 추위와 식량 부족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한 청나라 군대의 압박을 견디며 명절을 보내야 했다. 이는 전쟁 중 명절이 군인들에게는 심리적 고통과 사기 저하의 요인이 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추석은 가배라고도 불리며 고대 신라 시대의 전통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 제2권 신라본기 유리왕 9년 기사에는 왕이 육부의 여인들을 두 편으로 진영을 나누어 길쌈 내기를 하게 하고 8월 15일에 승부를 가려 전리품으로 승자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게임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가배라 불렀으며 오늘날 추석의 기원이 되었다.
추석은 군량미 확보와 물자 보급의 핵심적인 시기로 평가받는다. 전근대 전쟁에서 수확기는 군사적 동원 능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2년 8월 15일의 기록을 보면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매복을 살피며 전선을 지켰던 긴박한 상황을 남겼다. 당시 해군에게 추석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다가올 장기전을 대비해 보급품을 점검하고 전력을 재정비하는 전략적 분기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