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를 처음 간 흑인 탐험자(?)

남아메리카를 처음 간 흑인 탐험자(?) 에슷떼바닛꼬(Estevanico)

by 바다의 역사




"에슷떼바닛꼬(Estevanico)"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오늘날 모로코의 해변가 도시인 아제무르에서 "무스타파 아젬무리에"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북아프리카 출신의 무어인이었어요. 무어인들은 스페인을 자주 노략질해서 스페인인들을 노예로 팔기도 했고 심지어 무어인들이 스페인을 약 800년간 식민 지배했지요.



"에슷떼바닛꼬(Estevanico)"


하지만 이렇듯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을 탐내면서 그 여자들을 노예로 만들던 무어인들의 고향이 결국 참다 못해 자국을 지키고자 출동한 포르투갈 왕국의 앙갚음을 받으면서 그의 운명도 송두리째 바뀌고 말았지요. 과거에는 포르투갈인들이 무어인들의 노비였지만.. 이제는 정반대로 포르투갈인들에게 사로잡힌 노비가 된 그는 스페인 왕국으로 팔려갔고 그곳에서 "안드레쓰 똘란떼쓰 데 까란싸"라는 귀족의 노비가 되어 "에스떼빤"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지요.


이 "에슷떼바닛꼬(Estevanico)"의 삶이 본격적으로 꼬인 것은 약 1527년쯤부터였어요. 노비인 그는 주인을 따라 "빤삘로 데 나르빠에쓰"가 운영하는 탐사대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이들의 목표는 현재의 플로리다 열대 지방을 따먹고 황금과 그곳 캐리브해 원주민 미녀들을 납치하는 것이었다고 해요.


그 시절의 스페인 왕국은 남반구의 새로운 열대 섬을 먹어 황금과 미녀들을 먹으려던 성욕과 식욕, 욕망에 불타올라 있었고 그 배 속에는 "에슷떼바닛꼬" 같은 흑인 노비들뿐만 아니라 수백명의 관료와 탐험자들이 가득 차 있었어요. 하지만 자연은 이들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답니다. 아직 항해술이 발달하지 못한 스페인 왕국이었던 지라 폭풍을 만나자 배는 금방 망가져버리고 그렇게 길을 잃고 망망대해를 떠돌며 수백명이었던 스페인 탐험자들은 단 4명의 생존자만을 남기고 모두 사라져 버렸지요. 그 살아남은 4명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에슷떼바닛꼬(Estevanico)"였던 거에요.


이들은 약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텍사스 연안에서부터 멕시코까지 이르는 처절한 생존 과정을 벌였어야 했지요. 이 과정에서 "에슷떼바닛꼬(Estevanico)"는 그곳 원주민들과 소통을 잘 했던 것 같아요. 흑인이었던 그는 여러 아메리카 원주민의 언어를 빠르게 익혔고 수화로 의사를 전달하며 생존자 일행의 통역사 역할을 도맡았지요.


당시 흑인이었던 그가 만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모습은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해요. 잉카 문명&아즈텍 문명&마야 왕국 같은 중남미 열대 지방의 원주민들은 기온이 매우 높은 열대 기후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옷을 거의 입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특히 브라질 아마존이나 카리브해 열대 섬의 여러 섬에서 살던 원주민들은 성문화에 대해서도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적이었어요. 이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남녀들에게 알몸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흔한 일상이지요(현재도 그래요). "에슷떼바닛꼬(Estevanico)"와 그의 벗들이 원주민들에게 가자 원주민들은 이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신비로운 존재나 질병을 고치는 치유자로 여기기도 했다고 해요. "알빠르 누녜스 까뻬싸 데 빠까"라는 사람이 쓴 "나우쁘라히오쓰(난파기)"라는 글을 보면 원주민들이 생존자 일행에게 환대의 의미로 많은 열대 과일과 음식들을 바치고 자기들의 딸이나 자매를 성적(Sex)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아내로 바치기도 했다는 스토리가 나와요.



까베싸 데 빠까의 글에는 에슷떼바니꼬가 이 캐리브해 원주민 여자들과 매우 가깝게 지냈으며 원주민들이 에슷떼바니꼬에게 캐리브해 원주민 여자들을 바치는 일이 잦았다고 언급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흑인이었던 에슷떼바니꼬가 다른 스페인인들처럼 이 캐리브해 원주민 여자들을 강제적으로 성적 착취, 강간했다거나 번식 성노예로 삼았다는 직접적인 단어는 명시되어 있지 않아요. 다만 에슷떼바니꼬가 탐험 가운데 다른 스페인인들처럼 항상 수많은 라틴 아메리카 알몸 원주민 여자들을 데리고 다녔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로 써있어요.



에슷떼바닛꼬가 카리브해 열대 섬이나 남아메리카의 알몸 원주민 여자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가 직접 남긴 글은 아쉽게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는 노비 신분이었고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자기의 감정이나 목격을 직접 글로 남기지 못했거든요. 까베싸 데 빠까의 글에 의하면 흑인인 에슷떼바니꼬는 캐리브해나 라틴 아메리카 열대 지의 길을 안내받는 과정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알몸 원주민 여자들을 일종의 인질이나 보증인처럼 데리고 다니기도 하는데 성노예 목적으로도 쓰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페인인들이 성노예 목적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 여자들을 납치하고 데리고 다닌건 사실이에요.



"뉴욕 공립 도서관 디지털 컬렉션"에 뜬 그림은 흑인인 에슷떼바닛꼬가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처럼 알몸으로 생활하던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남녀들을 보고 놀라는 장면이에요.


대항해시대의 스페인 왕국의 탐험자들이 라틴 아메리카의 알몸 원주민 여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거나 성노예로 만든 행위는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던 아메리카의 비극적인 역사 가운데 하나예요. 에슷떼바닛꼬 역시 그런 광경들을 수없이 목격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추정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에슷떼바닛꼬가 그런 행위를 말리거나 반대했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 자기도 누군가의 소유물인 노비 신분이었기에 스페인 탐험자들의 강간을 제지하기가 그랬을을 것이라는 거에요. 오히려 에슷떼바닛꼬가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 누렸던 치유자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에슷떼바닛꼬 원주민 여자들과 섹스를 하고 자녀들을 낳았을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그 자녀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해 후속 기록은 확실하지 않아요.


에슷떼바닛꼬의 마지막 여행은 약 1539년쯤에 이루어졌어요. 멕시꼬 시티로 무사히 돌아온 그는 전설 속의 황금 도시인 "세뽈라"를 찾으라는 부탁을 받고 "마르꼬쓰 데 닛싸" 신부의 길잡이가 되어 다시 라틴 아메리카의 열대 지방으로 향했지요. 그는 신부보다 앞서 나가며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 여자들의 상황을 살폈는데 이 시절에도 그는 수많은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여자들을 데리고 다닌걸로 보여요. 그는 자기가 방문하던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움막마다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미녀들과 맛있는 음식, 귀한 물건들을 요구했다고 전해져요.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결국 그에게 돌아왔어요.


그가 현재 뉴멕시꼬 열대 지방의 쭈니 원주민 움막인 하위꾸에 도착했을 때 주니 원주민 남녀들은 그를 매우 의심스럽게 보았어요. 흑인인 그가 자기들을 구원해 줄 신적 존재라고 주장하면서도 끊임없이 미녀들과 보석을 요구하는 모습이 모순적이라고 느꼈던 것이지요. 주니 원주민 할머니들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결국 그를 살해하고 말았어요. 이 사건은 훗날 "꼬로낫또 탐험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오게되는 이유가 되지요.


이런 흑인 노비 에슷떼바닛꼬의 얘기가 스페인 왕국에 알려지게 된 이유는 생존자인 "까뻬싸 데 빠까"가 스페인 국왕에게 올린 문서 덕분이었어요. 약 1542년쯤에 쓴 "나우쁘랏히오쓰"는 스페인 왕국 사회에 엄청난 인기를 얻었지요. 이 책에는 아즈텍 마야나 마야 왕국처럼 큰 열대 도시를 이루지 못했지만 그들처럼 열대 지방과 해변에서 알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어요.


에슷떼바닛꼬는 그 사이에서 통역사로 일하며 라틴 아메리카의 개방된 성문화나 알몸 문화이나 음식, 결혼 등 각종 문화들을 가장 가까이서 체험한 흑인이었지만 정작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을지는 영원히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어요. 확실한 것은 그가 카리브해 열대 섬의 수많은 원주민 미녀들을 만났고 그녀들과 끝없이 섹스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주니 원주민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유 중 하나가 과도한 미녀 요구였다는 사실뿐이에요.(이래서 남자가 성기 단속을 잘못하면 안 된다는..)


에슷떼바닛꼬가 구체적으로 어떤 여자와 결혼을 했는지 혹은 그의 아기가 어디에서 자라고 있는지에 대한 글이 써있지 않아 확실하지 않지만 스페인 왕국은 고대 이집트 왕국처럼 피임 도구가 발달하지 않았고 특히 스페인 탐험자들이 피임을 걱정하거나 하는 따위를 하지 않았기에(그래서 스페인 탐험자들이 지나간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움막들에는 스페인 탐험자과 라틴 아메리카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수많은 여자들이 있고.. 현재도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여자들에게 스페인인들의 DNA가 남아있다고 해요. 그래서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들 가운데는 간혹 금발이나 푸른색 눈동자를 하고 태어나는 아기들이 있지요)



image (2).jpg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라는 책에 보면 실제 아마존에 여행을 하던 저자가 스페인인과 똑같이 생긴 아마존 원주민 남녀들을 봤다고 써있지요.


에슷떼바닛꼬가 거쳐 간 라틴 아메리카의 수많은 움막들에 흑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아기들이 태어났을 것이라는 점은 당시의 정황상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요. 에슷떼바닛꼬는 흑인이자 탐험자이자 노비였으며 동시에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난봉꾼의 대상이었던 복합적인 인물이었던 걸로 보여요.


에슷떼바닛꼬의 삶은 비록 안좋게 끝났지만 에슷떼바닛꼬라는 이름은 흑인으로서 아메리카 대륙을 가장 깊숙이 탐험하던 인물로 역사에 새겨졌지요. 그의 발자취는 단순히 지리적인 발견을 넘어 서로 다른 문명이 부딪칠 때 발생하는 욕망(성욕, 식욕 등)과 성적 착취나 여러 에피소드들.. 그리고 생존의 본능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포르투갈 왕국과 스페인 왕국에서 내린 사람들이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여자 알몸들을 마주쳤을 때 벌어진 그 스토리 속에서 에슷떼바닛꼬는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여름을 보냈던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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