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이지만.. 앤서니 앨런(anthony allen)라는 흑인은 하와이 왕국이 탄생하기 시작하던 시절 그곳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에요. 앤서니 앨런은 약 18세기 후엽인 1774년쯤 뉴욕의 스끼넥떠디 주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으며 자유민 혹은 노비 상태에서 탈출한 신분으로 추정되어요. 그는 선원이 되어 떠돌다가 약 19세기쯤인 1810년쯤 하와이의 오아후 열대 섬에 발을 내디뎠다고 해요. 당시 하와이는 카메하메하 1세가 여러 열대 섬을 다스리며 하와이 왕국을 낳던 시절이었지요. 앤서니 앨런은 건장한 체구와 뛰어난 사교성 그리고 성실함으로 카메하메하 왕이 좋아하게 되었지요.
앤서니 앨런(anthony allen)이에요.
앤서니 앨런은 하와이 열대 섬에서 단순히 머물다 가는 이방인이 아니라 그 사회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던 것 같아요. 그는 알몸으로 생활하던 구석기인인 하와이 원주민 여자와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고 가정을 꾸렸는데 기록에 의하면 그의 아내는 하와이 열대 섬의 알몸 원주민 여자였으며 그와 그녀들 사이에서는 3명의 자녀들이 태어났다고 해요. 앨런은 하와이 왕의 총애를 얻어 와이끼끼 근처의 넓은 토지를 선물받았고 그곳에 병원, 볼링장이나 유흥업소, 그리고 음식점을 만들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요. 그는 하와이 왕국의 집사로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지요.
같은 흑인이었지만 라틴 아메리카 알몸 원주민 여자들을 성노예로만 생각하고 성적 착취하던 에슷떼바닛꼬(Estevanico)라는 흑인과는 전혀 달랐지요. 오히려 앤서니 앨런는 그 시절의 하와이에 도착한 선교사들의 기록에서 매우 도덕적이고 친절한 인물로 묘사되곤 했지요. 약 19세기인 1820년쯤에 하와이 열대 섬에 도착한 하이럼 빙엄 선교사의 저널을 보면 앤서니 앨런이 선교사들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그들을 도왔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요. 앨런은 하와이 열대 섬의 원주민 남녀들의 개방적인 난교 성문화들을 목격했겠지만 본인 스스로가 성적 착취나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없으며 합법적인 결혼을 통해 가정을 유지했지요.
하지만 그 시대 하와이를 방문했던 수많은 영국인들과 미국인 선원들은 하와이 원주민 여자들이 알몸으로 생활했다고 하여 납치하거나 성적으로 착취, 강간하는 일이 매우 잦았고 오히려 하와이 열대 원주민 여자들을 보고 강간하지 않은 영국인을 찾기 더 힘들 지경이었어요. 마치 오늘날 재프리 앱스타인이 수많은 라틴 아메리카나 미국인 여자들을 성적 착취하던 것처럼요..
게다가 더 절망적인건 하와이 원주민들은 외지에서 온 이방인들이라면 손님이라고 해서 여자들이 처음 보는 손님과 섹스를 제공하는 문화가 있다고 해요. 게다가 종교 의식이나 관습 속에서 성(Sex)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를 악용한 영국인 선원들은 하와이 열대 섬의 원주민 여자들을 성노예처럼 다루거나 성병을 퍼뜨려 하와이 인구를 급감시키는 비극을 초래했지요.
앤서니 앨런이 이러한 광경을 목격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아요. 그는 와이키키 근처에서 음식점과 병원을 운영했기에 수많은 영국인 선원들이 성병에 걸려서 드나드는 모습을 직접 보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앨런이 영국인들의 강간을 적극적으로 말리거나 저지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아요. 그는 아마도 이방인으로서 자기의 지위를 지키며 가정을 유지하는 데만 집중했을 것으로 추정되어요.
워싱턴 중학교의 주차장 가장 자리에는 앤서니 D. 앨런을 기리는 국립공원관리청(NPS) 기념패가 설치되어 있어요. (2023)
앤서니 앨런의 삶이 영국에 알려진 이유는 그가 남긴 일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정식 기록 덕분이었어요. 앞서 얘기한 하이럼 빙엄의 기록이나 하와이 왕국의 토지 관련 문서, 당시 하와이 왕국을 방문했던 여행자들의 수기 속에 그의 이름이 등장하거든요. 마끄 쓰럭쓰가 쓴 앤서니 앨런 하와이의 흑인 개척자라는 연구 논문을 보면 그가 어떻게 하와이를 소유하고 어떤 사업을 했는지 잘 정리되어 있지요. 그의 장례식이 하와이 왕국에서 국장 수준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는 사실은 그가 당시에 얼마나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사랑 받은 사람이었는지를 방증해주지요.
앤서니 앨런은 이러한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아 게다가 다른 영국인들처럼 하와이 원주민 여자들을 강간하지도 않고 성공을 거문 드문 착한 사례라고 볼 수 있지요. 그는 자기의 탐험기를 직접 글로 남기지는 않았어요. 그는 학자나 작가가 아니라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의 아들들 역시 하와이 왕국 사회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며 살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의 가문은 하와이의 다인종 사회 속으로 섞여 들어가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