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미국에 살고 있는 원시인? "아미쉬"

21세기 미국에 살고 있는 원시인 "아미쉬(Amish)"

by 바다의 역사



미국에 원시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바로 "아미쉬"라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해요. 과연 어떤 사정이 있을까요?


아미쉬의 뿌리를 찾으려면 우리는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그 시절 유럽은 종교적 신념 때문에 서로를 박해하던 혼란스러운 시기였지요. 그 중심에는 재세례파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들은 유아 세례를 부정하고 성인이 되어 스스로 신앙을 고백할 때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도널드 크레이빌 교수가 쓴 아미쉬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에 의하면 이들은 국가와 종교의 완전한 분리를 원했고 비폭력 평화주의를 실천하려 했어요.


하지만 당시 위정자들에게 이들의 생각은 매우 위험하게 보였답니다. 결국 수많은 재세례파 교도들이 성고문을 받거나 물에 빠뜨려지는 고문을 겪으며 서구 전역으로 흩어지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1693년 스위스에서 야꼽쁘 암만이라는 젊은 사람이 나타났어요. 그는 기존의 재세례파 무리 중 하나였던 메노나이트보다 훨씬 더 엄격한 생활 방식과 규율을 강조했지요. 세속적인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 드디어 아미쉬라는 독자적인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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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의 박해는 멈추지 않았고 아미쉬들은 더 이상 동굴이든 어디든 숨어 지낼 곳을 찾기 어려워졌어요. 그때 들려온 소식이 바로 신대륙 미국이었지요. 펜실베이니아를 세운 윌리엄 펜은 종교의 자유를 약속하며 이들을 초대했답니다. 1700년대 초엽부터 아미쉬들은 하나둘씩 짐을 싸서 대서양을 건너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펜실베이니아의 비옥한 토지에 자리를 잡고 자기들만의 숨을 공간을 일구기 시작했지요. 스티븐 놀트가 저술한 아미쉬의 역사라는 문헌을 보면 아미쉬들은 미국에 도착한 이후에도 현대 문명의 파도를 도망다니며 그들만의 고립된 섬을 유지했다고 나와요. 그들은 기술이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믿었기에 세상이 빠르게 변해갈 때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쪽을 선택한 것이에요.




많은 사람이 아미쉬를 보고 구석기 시대 사람처럼 산다고 오해하곤 해요. 하지만 그들은 무조건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아미쉬 공동체에는 오르드눙이라는 기록되지 않은 구전 율법이 존재해요. 이 규율은 각 공동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하나예요. 바로 이 기술이 우리 가족과 신앙 공동체를 결속시키는가 아니면 분열시키는가 하는 질문이지요.


예를 들어 그들이 집에 전기를 들여놓지 않는 이유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시킨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전화기도 집 안에는 두지 않지만 급한 용무를 위해 마을 공용 전화 박스는 허용하기도 하지요. 자동차 대신 마차를 타는 이유는 자동차가 있으면 사람들이 너무 멀리 떠나게 되고 결국 마을 공동체가 약해질 것을 우려해서예요. 데이비드 위버 저처의 아미쉬와 매체라는 연구 자료를 보면 이들이 현대 문명을 거부하는 것은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아주 의도적이고 철학적인 선택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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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정치에 아예 참여하지 않는 아미쉬들이 2016년과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어요. 세속적인 삶의 정점에 서 있는 화려한 기업가 출신의 트럼프와 원시인인 아미쉬가 연결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답니다.


사건의 발단은 아미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교적 자유와 규제 완화였어요. 오바마 정부 시절 시행된 건강보험 개혁안이나 각종 환경 규제들이 아미쉬의 전통적인 농경 생활과 종교적 신념에 충돌하는 지점이 생겼거든요. 그때 벤 월터스 같은 인물들이 주도한 아미쉬 팩이라는 정치후원단체가 등장했어요. 이들은 아미쉬 마을을 돌며 트럼프가 당선되어야 여러분의 종교적 자유와 농사지을 권리가 보장된다고 설득했지요.


뉴욕타임스의 2016년 대선 분석 기사와 스티븐 놀트 교수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아미쉬들이 트럼프의 도덕성을 좋아해서 지지한 것은 아니라고 해요. 오히려 그가 약속한 규제 철폐와 보수적인 가치 수호가 아미쉬들의 생존에 직결된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투표를 죄악시하던 과거와 달리 일부 젊은 아미쉬들을 중심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마차 행렬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답니다.





실제로 아미쉬의 투표 참여가 선거 결과를 뒤집을 만큼 압도적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어요. 펜실베이니아 같은 경합주에서 수천 표의 차이로 승패가 갈릴 때 아미쉬의 표심이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아미쉬 인구의 투표율은 여전히 일반 미국인들에 비해 현저히 낮았거든요. 정보가 부족하여 정확한 투표자 수를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과거에 비해 아미쉬 사회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대선 이후 아미쉬 공동체 내부에서는 적지 않은 갈등이 생기기도 했어요. 신앙적인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원로들과 세상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젊은 층 사이의 보이지 않는 균열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마차를 타고 일요일이면 이웃집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살아가고 있어요. 정치적 파동이 지나간 자리에도 그들의 오르드눙은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답니다.





오늘날 아미쉬 인구는 놀랍게도 매 2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있어요. 현대인들이 아이를 적게 낳는 것과 달리 아미쉬 가족은 보통 7명에서 10명의 자녀를 두기 때문이지요. 이들은 이제 펜실베이니아를 넘어 오하이오, 인디애나 등 미국 30여 개 주로 퍼져나가고 있어요.


하지만 이들에게도 위기는 찾아오고 있답니다. 농경지가 부족해지면서 많은 아미쉬 남성이 농사 대신 가구 제작이나 건설업에 종사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외부 세상과의 접촉이 늘어났어요. 또한 럼스프링가라고 불리는 아미쉬 청소년들의 방황 시기에 마약이나 알코올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지요. 존 호스테틀러가 쓴 아미쉬 사회라는 저서에서는 이러한 외부 문명과의 마찰이 앞으로 아미쉬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어요.


아미쉬의 삶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요. 무조건 빠르고 편리한 것이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들은 비록 불편하고 투박한 길을 걷고 있지만 그 안에서 가족의 온기와 공동체의 평화를 지켜내고 있어요. 비록 트럼프 지지라는 뜻밖의 행보로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그 본질은 결국 자신들의 소박한 삶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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