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패권국 명나라와 유럽, 일본의 해양 진출 그리고 해양 국가였던 고대 신라와 중세 고려가 왜 근세기인 조선 시대에 이르러 폐쇄적인 국가로 변모했는지, 또 왜 "조선"만이 첨저선이 아닌 평저선을 고집했는지에 그에 대한 안타까운 역사의 발단과 개요, 계기와 그 이후의 근황까지 하나하나 짚어보며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는 대양을 건넜던 첨저선의 메커니즘과 그 발단부터 살펴보아야 됩니다.
선박의 밑바닥이 V자 형태로 뾰족하게 생긴 "첨저선"은 송나라, 명나라, 일본,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 왕국, 영국과 프랑스 등 중국, 일본, 서양 국가들의 함선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대서양과 태평양과 인도양이라는 거대한 대양을 횡단하기 위해서는 거센 파도를 가르고 나아갈 수 있는 깊은 홀수선이 필요했습니다. 이 뾰족한 밑바닥은 바다 깊숙이 잠겨 배의 중심을 굳건하게 잡아주었고 측면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배가 밀리지 않고 지그재그로 전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습니다.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로 진출한 스페인 왕국은 필리핀의 남부 현재의 민다나오 섬에는 7번이나 패배했으며 술루 술탄 왕국에게는 끝까지 대패했습니다. 그리고 막탄 전투에서 스페인 왕국의 마젤란을 쓰러뜨린 라푸라푸도 있습니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스페인 왕국은 무려 필리핀을 먹는데 7번이나 패배, 실패했으며 그것조차 전체 다 먹은게 아니라 술루 왕국에게는 끝까지 패배했습니다. 술루 술탄 왕국은 거대한 첨저선과 화승총으로 스페인 왕국과 대등하게 싸웠거든요.
이 시기에 바다를 건넌 것은 스페인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 역시 거친 바다를 향해 돛을 올렸지요. 중세와 근세 교차기의 일본의 무장 해적 조직인 왜구는 단순히 약탈과 살육만 잘 하던 거대 테러 조직이 아니라 거대한 해상 무역 세력이기도 했습니다. 도쿄대학교의 무라카이 교수가 쓴 "해적의 세계사, (2015년)"을 보면, 왜구들은 필리핀까지 진출하여 스페인 군대와 직접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일본의 정규 사절단들이 스스로 자체 건조한 원양 함선을 타고 대양을 항해하여 이미 임진왜란 전에 멕시코까지 진출했다는 사실입니다. 1582년에 출발한 텐쇼 소년 사절단은 인도양과 남아프리카의 최남단인 희망봉을 넘어 유럽에 도착했고, 1613년의 게이쵸 사절단은 일본이 자체 건조한 원양 함선을 타고 하세쿠라 츠네나가를 선두로 북태평양을 횡단하여 멕시코 아카풀코에 상륙한 뒤, 다시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과 로마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던 겁니다. 이들 역시 깊은 대양을 건너기 위해 첨저선 형태의 원양 선박을 자체 건조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당시 세계 패권국 명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패권국 명나라는 영락제 시대, 환관 정화를 해군 사령관이자 해군 장교로 삼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함대를 조직했습니다. 콜럼버스의 함대 따위는 비교도 안되게 막강했던 정화의 보선이라 불리는 이 거대한 정화의 원양 함대들은 수많은 해군들과 군 의관, 관료, 기록관, 상인들을 대동하여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양을 건너고, 마침내 아프리카 동부 연안인 현재의 케냐 말린디 지역까지 진출하는 세계사적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항해시대"인 겁니다.
에드워드 드라이어 박사가 저술한 "정화와 바다의 제국, 2007년" 논문과 서적을 살펴보면, 이 명나라의 함대는 수만 명의 선원과 수백 척의 전함대로 이루어진 바다 위의 떠다니는 대요새였으며, 이는 당시 서양의 어떤 함대보다도 압도적인 전력을 갖구초 있었다고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뭐 당시 아직까지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슬람의 식민지 상태였으니 사실상 바다에 배를 띄우기는 커녕 자유롭게 뭘 하는 게 불가능했지만요.
또한 당시 바다에는 "왕직"이라는 사악하지만 어마어마한 해적왕(왕직은 글로벌 만화 "원피스(One Piece)"에서 록스 해적단의 패권을 가진 해적왕들 중 1명으로도 등장합니다)을 위시한 수많은 해적단과 무장 상인들이 활동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도적 떼가 아니라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무역을 장악한 거대 다국적 기업과도 같았습니다.
여기서 1가지 바로잡고 싶은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명나라의 해적단이나 무장 상인들이 필리핀과 동남아시아 곳곳을 사실상 자신들의 식민지나 해적 소굴로 삼았다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필리핀의 링가옌 만 등지에 림아홍 같은 인물들이 무장 요새를 세우고 거점을 마련한 겁니다. 또 그보다 앞선 시대 송나라는 해적이 아니라 아예 국가 주도 하에 필리핀 일대에 진출하여 필리핀 여러 섬들에 자체 해상 무역 기지를 설치했습니다. 필리핀 원주민들은 처음에는 저항했으나 곧 저항이 불가능하여 송나라의 국제 무역 시스템에 편입되게 됩니다.
만화 원피스에서 오른쪽 인물이 바로 세계관 최강자 중 1명인 왕직이다.
그렇다면 송나라, 명나라, 신라, 고려,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각 시대별로 각 분야에서 각 장소에서 기염을 토해내며 자신들의 위세를 자랑하며 세계사적인 위업을 세우고 있을 때 근세 시기 한반도의 "조선"은 뭘 하고 있었을까요? 알아봅시다.
고대 신라와 중세 고려는 여러분이 생각하신 대로 거대하진 않았지만 촘촘하고 체계적인 네트워크망을 가진 해양 국가였습니다. 특히 고대 신라의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이라는 해군 기지를 설치하여 당시도 세계 패권국이었던 대당제국(당나라)와 일본, 그리고 한반도를 잇는 국제 해상 무역의 중간 기지의 역할을 하면서 이 동해에서 날뛰는 해적들을 소탕하는 해양 경찰부대의 역할도 했습니다.
중세 고려 역시 세계 무역소인 "벽란도"를 통해 중동 아라비아 상인들과 가장 가깝게, 그리고 빠르게 해상 무역하며 코리아라는 이름을 중동에 빠르게, 세계에 알린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고려에는 수많은 이슬람인들이 정착해서 생활했으며 고려에서는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신도들이 굉장히 많을 정도로 고려는 중동 아랍과 이란에서 발명되는 수많은 문물을 가장 빠르게 가져오며 굉장히 국제적인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점이 고대 신라와 중세 고려는 당연히 세계의 바다를 누볐기에 당연히 "첨저선" 형태의 원양 함대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해양 국가들이었던 고대 신라와 중세 고려가 세계 무대에서 활약했으니 당연히 명나라, 일본, 유럽의 대양 함대처럼 첨저선 형태의 원양 함대를 운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매우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이는 현재까지는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명확하게 말씀드리자면 고대 신라와 중세 고려 시대의 무역선들 역시 첨저선이 아닌 평저선, 즉 밑바닥이 평평하거나 완만한 U자 형태의 한선이 주력을 이루고 있었다고 봅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발표한 "신안선과 완도선 발굴 보고서, 2018년" 등에 따르면, 해저에서 발굴된 고려 시대와 그 이전의 함선들은 모두 밑바닥이 평평한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밑이 평평한 무역선으로 어떻게 그 장 기간에 먼 거리를 대양 무역을 하는 게 가능했을까요? "그 비밀은 바로 고대 신라부터 쌓은 수준 높은 항해술과 계절풍에 있습니다."
당시 고대 신라와 중세 고려의 무역선들은 명나라, 일본, 유럽처럼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대양 횡단이 아니라,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는 연안 항해로 먼 거리를 항해하는 방식으로 주로 먼 대양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봄과 가을에 방향이 바뀌는 강력한 계절풍을 등 뒤에서 받으며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갔습니다.
왜 우리 선조들은 명나라, 일본, 유럽처럼 대양을 가르는 첨저선이 아니라.. 평저선을 고집해야만 했을까요? 이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한반도 주변의 혹독하고 가혹한 해양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한반도의 서해와 남해 바다 "대한해협"의 혹독함 그 자체에 있습니다. "이 바다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수 간만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고", 썰물이 되면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갯벌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갯벌 지대에 스페인 왕국의 갤리언 같은 첨저선이 들어왔다고 상상해 보세요. 물이 빠져나가면 뾰족한 밑바닥을 가진 스페인의 범선 따위 같은 배는 갯벌에 박힌 채 옆으로 쓰러져 버리고, 배의 뼈대가 부러지거나 선원들이 갇혀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반면 밑바닥이 널빤지처럼 평평한 평저선은 썰물 때 물이 빠져도 갯벌 위에 장난감 블록처럼 안정적으로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었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면 다시 부력을 받아 자연스럽게 떠올라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한국해양대학교가 발표한 한국 선박사 연구 논문에서는 평저선이 한반도의 조류와 암초, 갯벌이라는 험난한 자연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진화의 산물이며, 암초에 부딪혀도 두꺼운 소나무 판재가 버텨내는 엄청난 내구성을 자랑했다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전함의 형태가 판옥선 같은 평저선으로 바뀐 것이 아닙니다. 고대 신라와 중세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한반도 특유의 평저선 구조가 조선 시대에 이르러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전투함인 판옥선으로 더욱 크고 견고하게 진화한 것입니다. 특히 판옥선의 이 평평한 밑바닥은 좁은 바다에서 제자리 선회를 가능하게 했고, 훗날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을 펼치고 쉴 새 없이 대포들을 쏘아대며 일본의 날렵하고 빠른 첨저선 형태의 원양 함대들을 격침할 수 있었던 전술적 근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큰 의문이 남습니다. 왜 송나라, 세계 패권국 명나라, 그리고 스페인 왕국이나 영국 못지않게 바다를 주름잡던 고대 신라와 중세 고려의 기상은 사라지고, 조선은 쇄국과 해금 정책으로 바다를 닫아버린 폐쇄적인 국가가 되었을까요? 이 거대한 변화의 계기와 역사는 복합적인 철학과 안보의 문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번째 이유는 이데올로기의 거대한 전환이었습니다. 중세 고려가 불교와 상업을 중시하던 국제적이고 화려한 귀족 사회였다면, 새롭게 건국된 조선은 철저한 성리학적 이상주의 국가였습니다. 조선의 건국 세력은 고대 이집트 왕국의 마아트처럼 농자천하지대본 즉 농업을 천하의 가장 큰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처럼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는 백성들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농사를 지으며 성리학적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동북아시아 역사상에서도, 대한민국 역사상에서도 유일무이한 것으로 고려시대까지 국가는 오로지 군왕, 장군, 군부, 군인, 집권층의 것이었지 백성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는 중국,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조선만이 "백성을 위한 국가"라는 뭔가 공산주의 체제 같은 시스템을 고안한 겁니다. 이는 동시대의 명나라, 일본에서는 여전히 국가는 황제나 장군, 군부, 군인들이 통치하는 국가였던 것과는 정반대였습니다.
2번째 이유는 처절한 생존과 국방의 문제였습니다. 고려 말기부터 해안들을 완전히 피로 물들게 한 일본의 무장 해적군단인 왜구들의 약탈질은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습니다. 조선 정부는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섬을 비우고 백성들을 육지 깊숙한 곳으로 이주시키는 "공도 정책"과 "해금 정책"을 강력하게 펼쳤습니다. 바다에 나가는 것을 국법으로 엄금하여 왜구들이 약탈할 거점 자체를 없애버리려 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끔찍하고 거대한 2차례의 참극은 조선의 문을 더욱 단단히 걸어 잠그게 만들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바다를 건너온 침략자들로 인해 국토가 유린당한 뼈아픈 트라우마는 바다 너머의 존재들을 교역의 대상이 아닌 잠재적인 위협과 공포로 인식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보다 비교조차 안 되게 훨씬 더 강력하고 공포적인 침략자는 바로 북방의 침략자였습니다. 북쪽의 여진족 기마군단들이 아이신기오르 누르하치라는 영웅이 등장하여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대청제국을 건국하자, 조선은 스스로를 유일하게 전세계에 남은 "소중화"라 칭하며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차단하고 사상적인 "순수성"을 수호하는 데 집착하게 되었어요.
이는 광기에 가까우며.. 마치 기독교가 청교도화되어갔듯이 유교 성리학이 점차 완전히 극단화되어가는 "교조화"가 되어갔습니다. 마치 나치 독일의 파시즘이나 일본제국이나 소련의 군국주의처럼요.
그 이후의 근황과 결과는 우리가 역사책에서 보아온 바와 같이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세계를 지배하던 동양의 대청제국(청나라), 명나라, 오스만 제국 같은 동양의 제국들이 차례대로 몰락하자.. 그 기회를 틈타 19세기 후엽에 서양의 국가들(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이 과학 혁명과 산업 혁명의 불꽃을 피우고 근대 시기의 문을 열었으며 이웃 나라 일본이 쇄국을 풀고 난학을 받아들이며 근대화의 파도에 올라타면서 순식간에 제국주의 국가로 부상할 때, 조선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남아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거대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바다를 버린 대가는 너무나도 컸고, 결국 열강들(청나라, 러시아,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탈(청일전쟁, 러일전쟁) 앞에 나약하게 무너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