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의 망조는 수세기에 걸친 내부의 탐관오리 부패와 외세의 침입이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기원전에 건국된 로마제국은 고대 시대부터 약소국으로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서기 약 3세기쯤부터 로마 제국은 극심한 혼란기를 겪었습니다. 로마 제국을 완전히 약소국으로 추락시킨 군인 황제 시대라고 불리는 이 짧은 50년의 시절은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흑역사, 암흑기라고 불릴 정도로 로마 제국을 완전히 망하게 만든 시절이었어요.
로마 제국의 후기는 딱 이런 모습으로 쾌락, 방탕으로 사회 전체가 썩어가고 있었지요. 기록상에서는 로마 귀부인들은 음식을 많이 먹고자 토하고 먹고를 반복했다고 해요.
군인 황제 시대는 송나라의 후기나 명나라 후기처럼 황제가 수시로 교체되었고 경제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를 결정적인 파멸로 몰아넣은 것은 동쪽에서 나타난 기마 민족인 흉노제국의 등장이었습니다.
2) 당시 세계 1위 군사력을 가진 흉노제국의 일파였던 훈족이 로마 제국을 침략하다.
사건의 발단은 서기 370년 무렵 동북아시아~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에서 흉노제국의 일파들 중 하나인 훈족이 서쪽으로 정복을 나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세계 역사가들이 훈족이 서쪽으로 정복을 나가게 된 동기가 바로 고대 시대 내내 흉노제국vs한나라가 오랜 기간 군사적으로 전쟁, 충돌, 대립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흉노제국의 일파들 중 하나인 훈족은 새로운 땅을 정복하기 위해 서쪽으로 정복을 나갔던 겁니다.
프랑스의 세계사 학자 조제프 드 기뉴가 18세기에 흉노제국의 일파들 중 하나에 로마제국을 침략해서 멸망까지 몰고 간 훈족가 포함됐다는 것을 연구 결과 사실로 알아냈습니다.
흉노제국의 일파들 중 하나였던 훈족이 흑해 북방의 고트족을 공격했으며 피터 히더는 그의 저서 "로마 제국 쇠락사"에서 훈족의 압도적인 기동력과 복합궁의 파괴력이 당시 게르만 부족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심어주었다고 설명합니다. 훈족에게 압도적으로 대패한 동고트족은 굴복했고 서고트족은 생존을 위해 로마 제국의 국경인 다뉴브강을 침략했습니다.
3) 유럽의 패권을 가진 훈제국
서기 376년 수만 명의 서고트족 피난민들이 흉노제국의 일파들 중 하나인 훈족이 로마 영토로 들어오기를 간청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 발렌스는 이들을 받아들여 군사력으로 활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탐관오리들의 부패가 문제였습니다. 탐관오리들은 굶주린 고트족에게 개고기를 팔아 자녀를 노예로 삼는 등 가혹한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그래서 참다못한 고트족은 무장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그렇게 서기 378년 아드리아노플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발렌스 황제는 증원군을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게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결과는 로마군의 처참한 패배였습니다. 기원전의 로마 군단병(보병)은 페르시아 제국보다는 약했고 파르티아보다도 약했지만 한니발을 밀어내는 등 나름대로 약진했으나 고대 시대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망조에 접어들더니 이제 로마군은 완전히 오합지졸의 전형이 되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시대의 로마군은 전쟁하는 족족 패배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기에 로마 군주 자기도 전장터에서 전사했으며 로마군의 3분의 2가 전멸했습니다. 이 사건은 로마가 완전히 치욕스러운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흉노제국의 일파들 중 하나인 "훈족"에게 침략당해서 "도망 온" 고트족에게 마저 대패한 "로마군"이니까요.
브라이언 워드 퍼킨스는 그의 저서 "로마의 멸망과 문명의 종말(2005년)"에서 이 전쟁 이후 로마는 더 이상 외부 침입자에 저항할 능력마저 상실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합니다. 마치 조선시대 후기처럼요.
4) 로마제국의 저항
역사의 흐름은 더욱 가팔라졌습니다. 서기 406년 겨울에 라인강이 얼어붙자 수많은 게르만 부족들이 얼어붙은 강을 건너 로마 영토인 갈리아 지금의 프랑스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수에비족, 반달족, 알란족 등이 포함된 이 대이동은 로마의 방어 제도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서기 410년에는 역사적인 사건마저 발생했습니다. 서고트족의 왕인 알라리끄가 로마 시를 먹고 노략질한 것입니다. 외세를 막는 것도 불가능한데 이제는 아름답고 화려한 로마 시 마저도 이민족들에게 강간당하고 유린당한 이 사건으로 인해 전 유럽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슬픔을 목격하며 그의 저서 "신의 도시"를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었습니다.
이 시대에 훈족은 로마 제국을 약탈하던 약탈자 조직에서 강력한 대제국으로 발전했습니다. 훈족은 비록 흉노제국의 일파들 중 하나였기에 인구수가 매우 적었으나 군사력만큼은 로마 제국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막강했기 때문입니다. 서기 434년에 훈제국의 황제인 아틸라와 그의 형인 블레다가 훈제국의 공동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아틸라는 형을 제거하고 유일한 황제가 되었습니다. 아틸라는 로마로부터 막대한 양의 황금들을 조공으로 뜯어내며 로마제국을 압박, 협박, 공격했습니다.
서기 451년에는 아틸라는 갈리아 지역을 대대적으로 침공했습니다. 이에 저항하며 로마의 장군 아이티우스는 과거의 적이었던 서고트족과 뭉쳐서 카탈라우눔 평원에서 훈족의 공격으로부터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452년 아틸라는 이탈리아 본토를 직접 침공하여 밀라노를 함락시키고 로마 턱밑까지 진격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교황 레오 1세가 아틸라를 만나 설득하고 수많은 금은보화를 바쳐서 가까스로 철수시켰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훈제국 내부의 각종 전염병과 보급 문제가 이유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5) 서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의 멸망
아틸라가 453년 급사한 이후 훈제국은 후계자 다툼으로 빠르게 분열되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이미 훈족의 침략에 의해 치명상을 입고 골골대고 쑥대밭이 된 상태였습니다. 훈족의 침략에 의해 도망친 수많은 세력들 중 하나가 서기 455년 북아프리카에 왕국을 세운 "반달족"인데 그들의 왕 가이세리크가 바다를 건너와 로마 도시들을 다시 한번 노략질했습니다. 410년의 노략질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유린한 노략질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은 허무했습니다. 서기 475년 플라비우스 오레스테스는 자기의 어린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지도자로 옹립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서기 476년 게르만족 출신의 사람인 오도아케르가 봉기를 일으켜 그를 유배 보냈습니다. 요새 유행하는 영화인 "왕과 사는 남자"처럼 삼촌이 쿠데타를 일으켜 조카를 끌어내린 것과 완전히 비슷하지는 않지만 어린 왕을 끌어내렸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요. 여하튼 오도아케르는 스스로를 지도자라 칭하지 않고 동로마 제국의 왕에게 왕의 관과 의복을 보내며 서로마 제국의 종말을 알렸어요.
이렇듯..
서로마 제국이 망한 이후 유럽은 이른바 "암흑시대, 흑역사, 암흑기"라고 불리는 중세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중세 시대는 완전히 군사력, 기술력은 물론 모든 면에서 "퇴보"하면서 그야말로 지구상의 "변방"이 됐습니다. 그러면서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은 이슬람 세력인 우마이야 왕조의 식민지로 800년간 살아야 했으며 네덜란드는 약소국으로서만 살았으며 영국, 프랑스는 가난한 동네로 살았고, 그나마 경제력을 갖췄다는 신성로마제국마저도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비굴하게 생명을 해야하는 등.. 그야말로 "서구의 굴욕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오스만 제국이 해방된 후에는 "동로마 제국"마저 침략하여 멸망시키면서 서구는 완전히 충격에 빠집니다.
서로마, 동로마의 멸망으로 인해 로마의 통치 시스템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로마의 문화와 라틴어는 게르만 왕국들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물론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 문화로 인해 로마의 모든 선진적인 문화들은 죄다 "금지"되었기에 유럽 문화는 "후진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흑사병에 걸려서 기독교 문화에 환멸을 느낀 유럽은 이후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점차 다시 그리스, 로마의 것을 부활시키면서 문화가 부흥하기 시작합니다.
훈제국은 아틸라 사후 급격히 세력이 약화되어 세계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나 그들이 세운 나라는 현재 "헝가리"로 보고 있으며 그렇기에 헝가리를 유럽 속의 동양이라고도 불리우며 헝가리의 언어는 유럽 언어와는 완전히 다른 아시아 언어에 가까운 알타이 언어라고 하며 특히 헝가리는 아시아처럼 성씨가 앞에 가고 이름이 뒤에 갑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로마의 멸망을 단순한 멸망이 아닌 유럽이 완전히 망하는 순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망한 유럽이 다시 부활하기 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대항해시대"라는 사건이 터져서야 가능했습니다.
6) 이후
로마의 멸망 과정은 외세의 막강한 군사대국인 훈제국의 침략과 그로 인한 게르만 부족들의 연쇄적인 로마 진입 그리고 로마 내부의 정치적 무능이 결합된 역사적 비극이었습니다. 훈족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게르만 부족들을 로마라는 방벽 안으로 밀어 넣었고 방벽은 결국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린 셈입니다.
로마 제국은 바퀴와 글자가 있었고 체계적인 법률과 군사 조직을 꽃 피운 아름답고 화려한 문명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드리아노플의 패배 이후 군사력은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오합지졸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이민족 용병들에게 국방을 의지하게 된 시점부터 로마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상의 내용은 피터 히더의 로마 제국 멸망사(2005년)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로마 제국의 에필로그(2009년) 등의 공신력 있는 사서들을 참고했습니다.